선현, 선밀-선을 두루 살피다

소계 전산 지음/ 운주사

禪 향한 천착이자 탐구여정

선의 군더더기 없는 핵심요체와

과학 역사 예술 접목한 ‘禪담론’

“수행은 심플하다”고 말하는 스님이 있다. 어렵고 힘겹고 버거운 수행이 심플하다? 스님 설명을 들어보자. “수행은 정신과 육체에 대한 탐구이며 몸과 마음에 대한 실천적 궁구이다. 생로병사하는 육체는 영생불사가 꿈이고, 무지와 번뇌망상에 사로잡히는 마음은 무지를 걷는 깨달음과 고요가 이상향이다. 몸의 장생불사의 꿈을 향해 매진해온 인류는 이 어려운 꿈을 이룰 수 있는 문턱까지 왔다. 마음길도 마찬가지다. 붓다는 2500년 전 자각과 적멸의 심해탈(心解脫)을 설파했다. 인간의 신체 아래에는 영생궁이 있고 머리에는 적멸궁이 숨어있다. 그리고 가슴에는 지복과 조화의 화엄 무애궁인 통화궁이 깃들어 있다. 수행은 이들을 일깨우는 것이다.” 지나치게 외부일만 좇다가 자신 스스로의 전원인 몸과 마음을 돌보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인생사를 스님은 아쉬워하며 수행을 권한다. “이제라도 마음을 조금 돌려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적멸궁과 영생궁 속에 들게 함이 좋고, 그것도 어려운 여건이면 틈을 내서 조금이나마 그 향기를 맡아보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한다. “인간은 그동안 남녀의 사랑으로 생을 이어가고, 번뇌망상과 더불어 깨어나 좌충우돌하며 살아왔다. 좌선이란 이러한 삶의 방식이 아니라 더 진화한 삶의 방식이다. 관조란 가운데로 돌아가고 중심에 안착하는 집중이다.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모두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방식에 좌선의 방식을 더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최고의 축복이며 가피이다.”

선수행의 요체와 해설을 한 저자는 “수행자는 코의 숨바람을 안으로 흐르게 하며 내부의 냄새를 맡아야 한다”며 “아예 코가 안으로 돌려졌다고 생각하고 내부가 국토라 여기고 바깥을 잃어버린 채 열심히 킁킁거려야 한다. 이것이 수행이다”라고 강조했다. 불교신문자료사진.

불교의 선(禪)사상을 과학과 역사, 정치와 경제, 문화·예술적 담론과 접목시켜 현대적 의미의 선을 다시한번 환기시킨 이 스님은 대학서 물리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스물여덟에 출가해 20년 넘게 선수행에 전념해온 도후스님이다. 스님은 필명 ‘소계(素溪) 전산(前山)’이란 이름으로 선에 대한 천착이자 탐구여정의 기록을 담아 두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놨다. <선현(禪現)>과 <선밀(禪密)-선을 두루 살피다>이다. “선(禪)은 해방과 해탈이다. 몸과 현상과 현실과 조건에 묶인 마음의 해방이요, 해탈이다. 그래서 오직 마음을 문제삼는다. 마음은 자기에게 묶이고 집단에 묶인다. 따라서 자기로부터의 해탈, 집단으로부터의 해방이 요점이다. 선의 지난한 역사는 이러함의 끝없는 과정이다. 마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생각이라는 것이다. 결국 생각, 의식에 대한 탐구인 셈이다.” 선을 바라보는 스님의 시선에 힘입어 두 책은 이른바 뼈와 살의 관계로 비쳐진다. <선현>은 선의 요체만을 군더더기 없이 일관되게 드러내어 밝힌 것이고, <선밀>은 선을 척추로 삼아 살을 입힌 것이다. <선현>은 본지풍광의 자리를 간결하게 설명한 반면, <선밀>은 본지풍광이란 진풍경에다 인간사회의 정치 경제 역사 과학들을 입힌 것이다. <선밀>에는 선의 골수가 육체속에 척추같이 들어있어 많이 숨겨지고 가려졌지만, <선밀>을 정독하면 선의 골수를 더 단단히 잡을 수 있다. 스님은 “두 책은 비록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가다 보면 쇠가 불과 물에서 연단되듯 자신의 정신이 연단됨을 느낄 수 있고, 마침내는 지혜의 명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은 스님 말처럼 ‘인내심을 가져야’ 할 법도 한데, 막상 원고를 쓰는데는 한달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스님은 “시중에 수행핵심서가 없고 말만 많은 현실이 안타까웠고, 수행의 목적을 제대로 알지 못한채 헤매고 꿰뚫음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대인들은 바깥으로 항하며 이상한 외계인이 되어 지구를 정복하기에만 급급하지, 내면으로 들어와 자신의 신비한 마법을 사용하여 자신안에 신성으로 나가는 새로운 문을 만들거나 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선수행은 물론 선의 요체와 대의에 관해 스님이 쏟아놓은 ‘명대사’를 체크하는 것도 책읽기의 또다른 즐거움이다. “수행자는 동물과 반대로 코의 숨바람을 안으로 흐르게 하며 내부의 냄새를 맡아야 한다. 아예 코가 안으로 돌려졌다고 생각하고 내부가 국토라 여기고 바깥을 잃어버린 채 열심히 킁킁거려야 한다. 이것이 수행이다. 자신 내면의 상태를 살피고 조절하기에 급급해야 한다.” 두 권의 책을 천천히 넘나들다보면 여태까지 감지해온 수행과 좌선에 대한 온도가 한결 낮아져 선선한 바람을 맞는다. “수행은 자아라는 왕이 귀환하여 하루를 통일하는 대서사극이요”, “고요히 좌선하는 건 마치 무쇠솥에 누룽지가 눌러붙어 잘 안 떨어질 때 물을 부어놓고 가만히 두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세계를 바꾸려고 하고, 지혜로운 이는 자신을 바꾸고자 한다.”…. 한여름, 전도몽상에서 벗어나는 행복한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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