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암사의 큰 웃음

법념스님 지음·그림 서주스님/ 답게

향곡스님 곁에서 3년여 시봉한

흥륜사 법념스님의 시봉이야기

소박한 일상 통해 대도인 면모

살필 수 있는 다양한 일화 담겨

“큰스님의 가르침 깨달았을 때

이미 가신 뒤, 너무 안타까워”

성철스님과 절친한 도반이며 진제 종정예하에게 법을 전한 선사로 유명한 근현대 한국불교의 고승 향곡스님(1912~1978). 법호는 향곡(香谷)이며 법명은 혜림(蕙林)이다. 향곡스님은 선암사, 불국사, 동화사, 선학원 등 여러 선방의 조실로 20여 년간 주석하며 종풍을 드높였다. 특히 스님은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성철스님, 청담스님, 자운, 월산스님, 혜암스님, 법전스님 등과 함께 ‘봉암사 결사’로 수행 정진했다. 향곡스님은 봉암사 결사를 함께 한 성철스님과 세납이 같을 뿐만 아니라 평생을 함께 한 도반이었다. 성철스님은 1978년 향곡스님이 세수 67세, 법납 50세로 열반에 들자 ‘곡향곡형(哭香谷兄)’이란 글을 지을 만큼 막역한 사이였다.

이런 가운데 향곡스님을 곁에서 3년여 동안 시봉한 경주 흥륜사 법념스님이 큰 어른에 관한 일화를 생생하게 엮은 <봉암사의 큰 웃음>을 펴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이 책은 법념스님이 지난 2015년부터 최근까지 불교신문에 연재한 ‘향곡 큰스님 일화’를 모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진제 종정예하는 추천사를 통해 “법념수좌가 향곡 대선사를 시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가르침을 시봉일화로 엮어 내니 어제 일인 듯 생생하고 향곡 대선사를 직접 뵙는 듯 함이라”면서 “이는 부처님을 시봉한 아난과도 같은 총명함으로 향곡 대선사의 세세한 일상에서부터 살활종탈의 고불가풍(古佛家風)까지 오롯이 재현한 살아있는 글”이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어 “향곡 대선사를 흠모하는 모든 분들이나 오늘의 후학에게도 임제선풍의 본체(本體)를 엿보는 좋은 인연이 될 듯하다”고 의미를 설했다.

이 책에는 많은 이들의 그리움 속에 남아 있는 향곡스님의 소박한 일상을 통해 대도인의 인간적인 모습을 살필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큰스님은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공양물을 받으셨다. ‘우리가 시주의 은혜를 갚는 길을 정진밖에는 없다. 그러니까 공부하는 것만이 그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길이다”라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공양을 올리려거든 수행을 잘한 도인에게 공양하는 것이 제일 공덕이 많다’고 하시고, 따라서 ‘공부 잘하는 수좌들에게 공양하는 것도 똑같이 무량복을 받게 된다’고 하셨다.”

팔공총림 동화사가 지난 2016년 10월 개최한 ‘한국 근·현대 선사 진영전’에서 선보인 홍나연 작가의 작품. 향곡스님(오른쪽)과 성철스님이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

향곡스님은 16세 때 둘째 형을 따라 양산 내원사에 입산해 18세 때 성월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1930년 부산 범어사에서 운봉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조선시대 500년간 숭유억불정책으로 위축된 선(禪)불교 중흥의 기틀을 다진 경허스님의 법맥을 잇게 된다. 즉 경허 혜월 운봉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이어 선풍을 크게 진작시킨 선지식이다. 향곡스님의 법맥은 이후 법제자인 진제 종정예하를 통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법념스님이 기억하는 향곡스님은 소탈한 성격에 호방하며 섬세한 면도 갖췄다. 장신에 골격도 커서 보기만 해도 사자후를 날릴 것 같은 인상을 지녔으나 의외로 어린애 같은 순수한 감성을 지녔다고 한다. “코끼리가 나오는 영화라고 하니 큰스님은 보기 전부터 기대를 잔뜩 하시고 정말 좋아하셨다. 어린애 같은 감성을 지니고 있어 소풍 가는 애들 마냥 들떠 있었다. 월내서 완행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신상’은 인도영화로 사람과 코끼리와의 우정을 그린 아름다운 줄거리를 가진 영화다. 큰스님은 주인공이 부르는 노래도 흥겨웠고 내용도 재미있었다고 기뻐하셨다.”

향곡스님은 그러면서도 자연을 사랑해 꽃과 나무를 도량에 많이 심고 가꾸어 스님이 주석했던 월내 묘관음사는 사철 푸른 잎과 꽃이 가득한 선경이 됐다. 법념스님은 “모시고 살 적에는 큰스님의 웅대한 면모를 잘 알지 못했는데, 열반하신 뒤 날이 갈수록 큰스님의 가르침이 속속들이 파고들었다”면서 “큰스님이 알게 모르게 늘 가르침을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가시고 난 뒤여서 그 애석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더불어 이 책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부록으로 ‘전법(傳法)의 원류(原流)’와 ‘불조정전법맥(佛祖正傳法脈)’을 함께 실었다. 또한 법념스님의 상좌로 지난해 3월 열린 서울국제불교박람회 붓다아트페스티벌에서 그룹전으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던 서주스님의 삽화도 눈여겨 볼만하다.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