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본성은 본래해탈이다

 

독경 기도 참선…수행을 하는데도 

업장이 계속되면 수행이 약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

“다시 또 수보리여, 자질이 뛰어난 남자나 여인이 이 경(經)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는 데도 혹시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천대를 받으면, 이 사람은 지난 세상에 지은 죄업으로 악도(나쁜 세상-지옥·아귀·축생)에 떨어져야 마땅한데도, 금생에 남으로부터 무시되고 천대 받음으로써 전생의 죄업이 곧 소멸되고 반드시 가장 높고 바르며 원만한 깨달음을 이루리라. 수보리여, 내가 과거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을 생각컨대, 연등부처님을 만나기 전 팔백사천만억 나유타 부처님을 만나서 모두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어 그냥 지나친 분이 없었느니라.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이다음 말법(末法)세상에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 그 얻은 공덕은 내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한 공덕으로는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천만억분이나 나아가 숫자로 헤아리는 비유로도 능히 미치지 못하느니라. 수보리여, 만약 자질이 뛰어난 남자나 여인이 다음 말법 세상에서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 그 얻게 될 공덕을 내가 자세하게 설명한다면 이 말을 듣는 사람은 마음이 미치고 어지러워 의심하고 믿지 않으리라. 수보리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경은 뜻도 생각할 수 없지만 과보로도 또한 생각할 수 없느니라.”

제16분에서는 업(業)의 장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공덕에 대해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기에 이 고통을 받을까?”하며 한탄한다. 업이란 일정한 방향성을 갖는 생각과 언행을 가리킨다. 세상과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방향성일 경우 선업(善業)이라고 하고, 반대의 경우를 악업(惡業)이라고 한다. 삶에 여러 가지 장애를 일으키는 것은 악업이지만, 수행에 장애를 일으키는 것은 선업과 악업이 모두 포함된다. 선업의 좋은 과보로 복이 많아지기에 수행할 마음을 내지 않아 선업도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금강경>을 독송하면 업장(業障)이 소멸된다는 말은 <금강경>을 통해 부처님의 말씀을 만나고(듣고) 그 가르침대로 실천하면 지혜로워져서 업으로부터 해탈하게 된다는 뜻이다. <금강경>의 뜻도 모른 채로 종일 독경만 한다고 업장이 소멸되지는 않는다. 수행으로 인한 업장 소멸에도 차이가 있다. 신심과 용기가 부족한 사람은 조금씩 자신을 변화시키기에 업장 또한 아주 천천히 소멸된다. 이 경우 괴로움이 약해지긴 하지만 오래 지속된다. 하지만 굳건한 신심과 큰 용기를 가진 사람은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흡수하여 순식간에 자신을 변화시키는데, 이 경우는 업장도 순식간에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만일 독경이나 기도 참선 등의 수행을 하는데도 업장이 계속된다면 자신의 수행정도가 약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과거 무량한 생에 걸쳐 생명(여기서는 부처)을 존중하고 만나는 이들(여기서는 부처)을 공양했다고 여러 곳에서 밝힌 바 있는데, 그 공덕보다 <금강경> 공부하는 공덕이 훨씬 크다고 밝히셨다. 무슨 까닭일까? 앞의 무수한 선행은 성불하기 전의 선업이다. 하지만 <금강경>은 부처님께서 최고의 깨달음으로 체득하신 해탈의 비법을 가르치신 것이다. 선업의 복덕을 쌓는 것과 업장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비교할 수 있겠는가.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타인을 위해 설명한다(受持讀誦爲他人說)’는 이 구절은 스스로 수행하여 최고의 깨달음에 도달한 이의 보살행을 뜻한다. 

요즘 같은 혼돈의 시기(말법시대)에 ‘깨달으면 업장도 소멸되고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한다’는 말을 들으면 대개 놀라거나 의심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믿고 수행하며 깨닫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도달한 경지를 말로 설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나병환자였던 40대의 한 남자가 혜가(慧可)대사를 만나 업장을 소멸시켜 달라고 간청했다. 혜가대사는 업을 찾아서 내어 놓으면 없애주겠노라고 했고, 사내는 찾을 수가 없다고 했다. 혜가대사는 업을 다 없앴노라 했고, 사내는 곧바로 본래 청정한 본성을 보았다(見性). 사내는 혜가대사의 제자가 되어 몇 년 후 나병도 깨끗이 나았다. 그가 바로 중국 선종의 3조 승찬대사(僧璨大師)이다. 

<금강경>의 핵심은 청정본성이고, 청정본성은 본래해탈이다. 하지만 청정본성은 인식과 이해 정도로는 볼 수 없다.

[불교신문3308호/2017년6월24일자] 

송강스님 서울 개화사 주지 삽화 박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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