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숲길서 감동과 애잔함이 겹치다

밖에서 본 관방제림은 여백을 찾기 힘들 정도로 울창함을 자랑한다. 더불어 그 안에 담고 있는 역사적 가치도 뛰어나다.

지난 8일 전국적으로 단비가 내린 다음날이다. 오랜 가뭄으로 먼지만 풀풀 날리던 황톳길이 새롭게 보인다. 검붉은 황토 본연의 기운을 되찾은 것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농촌풍경도 모내기를 마친 들녘마다 이른 아침부터 농부들의 부산한 움직임으로 활기차다. 비를 머금은 대지는 오랜만에 본연의 짙은 색을 토해내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곳은 담양의 관방제림이다. 관방제는 전라북도와의 경계를 따라 서쪽으로 추월산, 북으로는 용추봉, 동쪽으로는 광덕산, 남쪽으로는 덕진봉으로 이어지는 광활한 유역에 걸쳐 있는 담양천 변의 제방이다. 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숲이 관방제림(천연기념물 제366호)이다. 

주변에 전봇대와 전선이 지나고 있는 석당간. 왼쪽 작게 보이는 것이 오층석탑이다. 화면에 함께 담길 만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그 시작은 조선 인조 26년 해마다 홍수로 민가의 피해가 속출하자 제방을 쌓고 이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나무를 심은데서 유래한다. 이후 철종 5년 연간 3만여명을 동원해 제방과 숲을 다시 정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1.2km 구간에는 200년 넘은 팽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개서어나무, 푸조나무 등이 신묘한 기운을 뿜으며 장관을 이루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 푸조나무는 남부지방의 낮은 지역에서 자라는 수종으로 강바람이나 바닷바람에 잘 견뎌 방풍림이나 방재림으로 매우 유용하다. 

가장 경관이 좋은 곳에 빨리 가고 싶은 욕심에 척 봐도 편안한 복장의 주민에게 어느 구간이 제일 멋지냐고 물었다. “아름드리도 아름드리지만 서로 다른 신기한 모양의 나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어 한곳을 꼭 집어 말하긴 어렵다”며 자부심이 가득한 답변을 내놓았다. 하지만 “여기서 뛰어놀던 어린 시절에는 그저 그늘이 풍성한 제방 길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언제 부터인지 이 길이 멋지다며 외지인들이 찾아드니 다시 보게 되고,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며 칭찬을 이어갔다. 

담양 곳곳에서 터널처럼 이어지는 메타세쿼이아 길을 볼 수 있다. 사진은 그 가운데에서도 담양군청 동쪽 학동교차로에서 금월교에 이르는 옛 24번 국도로 현재는 차량진입을 금지하고 도로 포장을 걷어내 걷기 좋은 가로수길이 되었다.

이어서 발길은 옮긴 곳은 담양의 또 다른 명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이다. 이 길은 1970년대 초반 정부 방침으로 전국적으로 가로수 조성사업이 한창일 때 담양군은 메타세쿼이아 수종을 가로수로 선정해 담양읍을 정점으로 12개 읍면으로 연결되는 국도와 지방도 등에 식재했다. 이후 곧게 뻗은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한 것이다. 하지만 2000년 국도 확장사업이 시작되면서 178그루에 갑자기 하얀 페인트가 칠해지고 베어질 운명에 처해졌다. 이에 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키운 훌륭한 자연자원을 지키겠다며 나섰다. 결국 지역민과 사회단체가 협력하여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지키기에 성공한다. 도로를 선형변경시켜 훼손을 줄인 것이다. 이후 메타세쿼이아를 주제로 다양한 음악회와 문화공연 등을 개최하며 더욱 유명해져 전국에서 손에 꼽히는 가로수길로 이름을 알렸다. 그 가운데 옛 24번 국도 일부 구간은 차량진입을 금지하고 도로 포장을 걷어내 걷기 좋은 가로수 길로 정평이 났다. 하지만 관방제림과 메타세쿼이아길 지근거리에는 국가지정 문화재임에도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문화재 2점이 덩그러니 서있다. 바로 담양 석당간(보물 제505호)과 오층석탑(보물 제506호)이다. 

관방제림의 속살이다. 아름드리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려 제방을 움켜쥐고 있다.

석당간은 주변에 전봇대와 전선이 지나고 있어 얼핏 보면 숨은그림찾기를 연상케 할 만큼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당간의 높이는 15m 정도이며 꼭대기에는 쇠로 만든 둥근 보륜이 있고 장식물도 달려있어 수려한 생김새를 자랑한다. 바로 옆에 세워져 있는 석비의 내용으로 미루어, 현재의 이 석당간은 조선 헌종 5년(1839)에 중건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성 시기는 고려시대이다.

여기서 직선거리 50m에 오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을 닮은 백제계 석탑으로 조성 시기는 석당간과 같다. 조성시기가 비슷하고 이웃해 있으며 주변이 사찰을 세우기 좋은 넓은 평지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일대가 가람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하지만 도로가 문화재 사이를 가르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든다. 

석당간과 오층석탑 사이에 도로가 있어 두 문화재를 더욱 단절 시킨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에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구가 있다. 대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존재로 다가온다. 관방제림이나 메타세쿼이아 길처럼 담양 석당간과 오층석탑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오층석탑은 고려시대에 조성되었지만 담양이 옛 백제 지역인 만큼 백제양식을 따르고 있다.

[불교신문3307호/2017년6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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