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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세세생생 누릴 수 있는 최고로 행복한 길”영축총림 통도사 율원장 덕문스님
  • 통도사=이경민 기자 사진=신재호 기자
  • 승인 2017.06.1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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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수행자의 길을 ‘고행의 길이 아니라 세세생생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길’이라 말하는 덕문스님의 진심이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벼랑 끝에서 건져 올린 삶

부처님 따르는 수행자 길

‘고행 아니라 행복의 길’

 

불편하고 강요만 하는 게

계율이라 생각하면 안 돼

지난 5월24일, 안개 자욱 내려앉은 통도사 취운암에서 만난 덕문스님은 “부처님 법을 만나면 세세생생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며 “출가는 고행의 길이 아닌 최고로 행복한 길”이라고 또렷이 말했다. 벼랑 끝에서 건져 올린 삶, 온전히 삼보에 귀의하던 그날의 이야기를 덕문스님이 어렵게 꺼냈다.

푸르다 못해 서슬 퍼렇던 스물 무렵, 운명처럼 받아들인 출가자의 길이었다.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선 이 길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생은 물론이고 다음 생, 그 다음 생까지 정성껏 모아 바치기로 한 삶이었다. 각오는 다부졌고 행자생활은 꼭 그만큼 혹독했다. 스스로 모든 걸 버리고 시작했으니 두려울 것은 없었다. 이 악물고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은사 스님이 불러 한마디 했다. “공부 그렇게 하는 거 아니다.”

그래도 몰랐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 열심히 수행하다 죽으면 되지”라는 생각이 먼저였다. 혹독한 수행은 몸이 먼저 알았다. 의사는 “사정은 알지만 병이 깊어 독한 약을 먹어야하니 동물성 지방을 먹어야 한다”고 강권했다. 고민은 했지만 오래하진 않았다. “부처님 자식이 돼서 몸이 아프다고 약 한 봉지에 연연할 일인가”, “내 몸 하나 살리자고 살아있는 것을 잡아서야 될 일인가”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남해 보리암에서 100일 수행길에 들었다.

70일 정도 지나니 폐부를 찌르던 통증이 한층 가벼워졌다. 목숨은 건졌구나 싶었다. “불보살님 가피를 받았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에 대한 걱정은 그때부터 지웠다. “선지식과 좋은 인연을 맺게 해달라”, “나 자신이 불보살님 가피와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원을 새로 세우고 오롯이 정진 또 정진했다.

“보편적인 것들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저는 불보살님 가피 때문에 병이 차도를 보였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이 신심으로 작용한 것일 수도 있구요.”

불교와 인연이 깊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자랐던 덕문스님에게 출가는 별스런 일이 아니었다. 초중학교 9년 동안 봄가을 소풍 18번 중 딱 두 번을 빼고 선암사로 소풍을 갔다. 친구들과 뛰놀며 사찰과도 자연스레 친해졌다. 가까운 친인척은 어린 덕문스님을 보러 올 때마다 조선 숙종 때의 상월스님 수행일화를 종종 들려줬다.

출가에 확신을 가진 것은 열두 살 때였다. <법구경>을 읽다가 소름 돋는 경험을 했다. “세상을 이런 방식으로 볼 수 있구나”, “이런 원리로 돌아가는 구나” 감탄만 나왔다. “출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그 때 처음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발길이 저절로 산문으로 향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건장한 청년을 사지까지 몰고 갔던 혹독한 행자생활, 병마와 싸웠던 보리암에서의 100일 수행, 기도 올릴 법당 하나 없었던 군대에서의 3년,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타지 법당에서 두문불출 보냈던 8년의 시간, 그리고 그 끝에 다시 찾은 곳은 승가대(강원)였다.

“강원에서 나와 군대에서, 타지 법당에서 11년 동안을 전전하다 다시 들어가니 도반들이 의아해했죠. ‘그 정도 법랍이면 국장 소임도 보고, 절 주지도 할텐데 왜 다시 들어왔냐’는 반응들이었어요.”

스님은 장자의 ‘소요유’ 편으로 답을 대신했다. “소요유 편을 보면 구만리 장천을 오르는 붕새 이야기가 나옵니다. 북쪽 바다에 곤이라는 큰 물고기가 있었는데 이 물고기가 붕이라는 새로 변해 남쪽 바다를 향해요. 여섯달 동안 구만리를 날아간 뒤에야 비로소 바다에 도착하죠. 출가 수행자에게 대중생활은 반드시 필요해요. 그런데 가늘어선 안됩니다. 두터워야 해요. 대중 속에서 혼자 튀지 않고 잘 지내려면 스스로를 그만큼 철저히 갈무리해야 하죠. 그게 먼저입니다. 강원에 들어가 대중생활을 다시 시작한 것은 그런 것들을 시험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마음은 모든 세상 그려내

내 마음 하나 바꿀 때

보는 눈, 세상도 달라져

출가 수행자의 기본이 되는 생활 규범, 계율을 철저히 지키고 실천하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문스님에게 ‘꼼수’, ‘편법’, ‘대충’은 없다. 스님의 지난 삶들이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대중생활을 다시 한번 갈무리 하고 나서는 남양주 봉선사로 가 <화엄경> 하나만 5년을 팠다. 파계사에 가서는 어른 스님들 아래 수학하며 계율 공부를 이었다. 선택지는 없었다. 이 좋은 부처님 말씀, 직접 몸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받은 감동을 어떻게 하면 잘 전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했다.

“출가 수행자의 길을 ‘고행의 길’이라고들 하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세세생생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이에요. 마음 하나 다스리면 내가 먼저 바뀌고,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져요. 그러면 결국 세상도 바뀌거든요.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공부를 하고자하는 마음, 또 이를 철저히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출가자 급감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 ‘대중생활’에 대해서 덕문스님은 “철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대중생활을 지키는 것은 단지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고 뭐 그런 것들이 아니에요. 출가 이전에 구축해놨던 그 습을 깨지 않으면 신심, 깨달음, 깨달은 것을 회향하는 그런 것들을 알 수가 없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대중생활 속에서 이를 직접 체험하며 알아가려고 노력해야 하고, 또 공유해야 해요. 조금 불편하다고 잔소리로 취급하고 귀찮은 것들로 치부해버리면 정작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려요.”

그간 수없이 많은 출가자 앞에 서 온 스님은 대중생활에 대한 세간의 시선에 대해 적잖은 온도차를 느낀다고 했다. “공부를 시작한 지 2년 정도 지난 스님들에게 어땠냐고 물으면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 나와요. 다들 ‘오해했던 것들이 있었다’고 하거든요. 막상 대중생활을 하고 또 공부를 하다보면 느껴지는 것들이 있어요. 다만 엉성하게 해선 안됩니다. 무조건 믿고 철저하게 해야합니다”

덕문스님 방 한 쪽에는 스님이 직접 그린 그림 하나가 놓여있다. 부처님 당시를 그대로 살린 계율근본도량. 대중생활을 하며 법문을 듣고, 부처님 법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와서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곳이다.

“기본 교육, 전문 교육, 연구 등을 마치고 나면 막상 공부를 더 하고 싶어도 장소가 마땅치 않아요. 부처님 법 알려면 글보다는 그림이 더 낫고, 그림보다는 직접 체험하는 것, 이런 것들이 사실 제일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계율근본도량 하나 마련하는 것이 제 원입니다.”

스님은 <화엄경>에 나오는 ‘심여공화사 능화제세간(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을 마음에 늘 새긴단다.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아서 능히 모든 세상을 다 그린다”는 의미다. “부처님 법 한번 만나기 정말이지 어렵습니다. 그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말길 바랍니다. 청정지계 가풍 확립하느라 “입에서 쓴 내가 날 정도”라던 덕문스님 표정이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밝았다.

덕문스님은...

통도사에서 성파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82년 범어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96년 통도사에서 청하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통도사 승가대학, 봉선사 능엄학림, 파계사 영산율원 연구원과정을 마치고 파계사 승가대학 강사, 통도사 율원 교수사를 역임했다.

봉선사 조실 월운스님에게 전강, 파계사 철우스님과 통도사 율주 혜남스님에게 전계하고 현재 조계종 단일계단 교수사·갈마사, 사미계 수계교육 유나, 계단위원회 계단위원, 영축총림 통도사 영축율학승가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2015년 8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약 2년간 본지에 ‘덕문스님 계율이야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통도사=이경민 기자 사진=신재호 기자  kylee@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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