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스님 등 당대 최고 선승 동참 조성

 

조선시대 불교조각 다수 소장

존상복장 완전하게 보존 주목

17세기 불교 조각 귀중한 자료

효사상 영향 명부전 건립 활발 

불갑사 지장보살삼존상. 왼쪽부터 무독귀왕상, 지장보살상, 도명존자상. 조성 발원문.

불갑사는 9월이면 상사화의 일종인 꽃무릇이 한창이어서 상사화 축제가 열리는 사찰로 유명하다. 고불총림 백양사 말사인 불갑사의 창건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인도의 마라난타 스님이 영광 법성포로 들어와 처음으로 불법을 편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불갑(佛甲)’은 ‘불사(佛寺)의 으뜸이요 시작이다’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어서 마라난타와 깊은 관련이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1741년에 쓰여진 <불갑사고적기>에 따르면 백제시대에 창건된 후 785년에 중창되었고, 고려 충렬왕 때 왕사 각진스님(1270~1355)에 의해 3창 되었으며, 정유재란 이후 4창 되었고, 1694년에 5창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후 1762년 화재로 대웅전, 일광당, 팔상전, 나한전, 진영각 등이 소실되어 1763년부터 1765년까지 청봉 대선사에 의해 6창 불사가 이루어졌다. 

불갑사는 조선시대 불교조각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데, 각 존상의 복장은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어 주목되는 절이다. 1635년에 조성된 대웅전 삼세불상, 1654년에 조성된 명부전 지장삼존상과 명부 권속들, 1706년에 조성된 팔상전 석가삼존상과 16나한상에서는 각 상에서 대부분 조성 발원문이 발견되었다. 이 외에도 천왕문의 사천왕은 1869년 설두대사(1824~1889)가 중창불사를 할 때 고창 연기사 터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1998년 태풍으로 불갑사는 천왕문과 사천왕상이 피해를 입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사천왕 복장 조사와 함께 명부전 존상도 복장 조사가 이루어졌다. 2006년에는 보물 제1470-2호로 지장보살상, 시왕상 복장 전적 83종 112점이 지정되었는데, 이 가운데 국내 전적은 60종 88점이고, 중국 전적은 8종 9점이며, 조성 발원문은 16점이었다.

사후세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장신앙은 조선시대에 도교의 명부신앙과 결부되어 유행했다. 명부전의 지장보살, 무독귀왕, 도명존자는 불교 색채를 띤 존상이라면, 염라대왕을 비롯한 시왕 등은 도교 색채가 강하다. 17세기부터 가장 많이 조성된 불교조각이 지장삼존상과 명부 권속들이다. 조선시대 중요시했던 효 사상과 결부시켜 명부전 건립이 활발해졌던 것으로 짐작된다. 

올해도 음력 5월에 윤달이 들었다. 윤달의 사찰 행사로는 생전예수재와 세 곳의 사찰을 방문하는 삼사순례가 있다. 생전예수재는 <예수시왕생칠경>에 배경을 둔 것으로 살아있는 사람이 미리 사후를 위해 공덕을 쌓는 의식을 말한다. 일반인들도 윤달에는 조상들의 묘를 이장하는 풍습이 있다.

불갑사 명부전 존상은 지장보살, 도명존자상, 무독귀왕으로 구성된 지장삼존상 3구, 제1진광대왕부터 제10오도전륜대왕까지 시왕상 10구, 판관상 2구, 귀왕상 2구, 사자상 2구, 동자상 6구, 장군상 2구 등 모두 27구의 존상이 1654년에 제작되었다. 이 가운데 6구의 동자상은 별도로 불갑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명부전 중앙 불단에는 지옥 중생 구제를 발원한 지장보살 좌우로 스님 형상의 도명존자와 왕 모습의 무독귀왕이 서 있다. 지장보살은 지물인 광명주나 육환장을 들고 있지 않으며, 도명존자 역시 스님 모습인데 현재 손 상태로 보아 지장보살의 지물인 육환장을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왕 모습의 무독귀왕은 두 손을 합장하고 서 있다. 

지장보살삼존상 좌우로는 죽은 지 7일째부터 재판을 시작하는 제1 진광대왕을 비롯해 3년 째에 최종 판결을 내리는 제10 오도전륜대왕 등이 배치되어 있다. 향우측에는 제1 진광대왕, 제3 송제대왕, 제5 염라대왕, 제7 태산대왕, 제9 도시대왕 등 홀수의 시왕이 의자에 앉아 있다. 향좌측에는 제2 초강대왕, 제4 오관대왕, 제6 변성대왕, 제8 평등대왕, 제10 오도전륜대왕 등 짝수의 시왕이 봉안되어 있다.

시왕은 용두와 봉황으로 장식된 등받이가 있는 봉황좌에 앉아 있어 왕의 모습과 유사하다. 죽은 자의 첫 번째 재판을 담당하는 제1 진광대왕은 높은 원유관을 쓰고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긴 수염을 오른손으로 잡고 왼손으로는 임금 앞에 나갈 때 관복에 맞추어 홀(笏)을 든 모습은, 재판관이라기 보다는 도교의 신선과 같은 이미지다. 제5 염라대왕은 가장 많이 알려진 왕으로 두 손을 포개 높이 올려 홀을 들었고, 머리에는 금강경을 이고 있어 다른 시왕들과 쉽게 구분된다. 

불갑사 명부전의 명부 권속. 왼쪽부터 제1 진광대왕상, 제5 염라대왕상, 판관상, 귀왕상, 사자상, 장군상.

시왕상 옆에는 시왕상보다 조금 작은 판관상과 귀왕상이 서 있다. 판관(判官)은 시왕의 재판을 돕는 존재로 검은 복두를 쓰고 두 손으로 홀을 잡고 있다. 신하가 왕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죽은 자를 위해 후손들이 쌓은 공덕을 시왕에게 보고하는 모습이다.

귀왕(鬼王)은 여러 시왕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명부의 권속으로 그 모습은 무독귀왕과 유사하다. 판관과 달리 원유관을 쓰고 있으며 가슴에는 흉배가 달린 관복을 입고 두 손으로 홀을 잡고 서 있다. 

사자(使者)는 여러 대왕들이 망자(亡者)에게 보내는 전령 같은 존재로 바지를 입고 각반을 한 전령의 모습으로, 머리에는 양쪽으로 뿔이 솟은 것 같은 복두를 쓰고 있다. 신속함을 알리는 듯 소맷자락은 뒤로 휘날리고 있고, 손에는 두루마리와 횃불같은 지물을 들고 있다. 

명부전 입구를 지키는 무장을 한 장군(將軍)은 지옥의 장군인 삼원장군이라고도 한다. 갑옷을 입은 장군상은 눈을 위로 치켜 떠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주먹을 쥐고 치켜 올린 오른손은 방해자를 금방이라도 칠 자세다. 유난히 큰 주먹코와 꾹 다문 입의 표현에서 강인함이 느껴진다. 갑옷을 입은 모습은 천왕문의 사천왕과 유사하지만, 머리 스타일과 권법 자세는 금강문의 금강역사와 닮았다. 사천왕과 금강역사의 절충형으로 명부전 안 입구에 장군상이 배치되었다. 

발원문이 발견된 상들은 지장보살, 도명존자, 무독귀왕, 제1진광대왕, 제2초강대왕, 제3송제대왕, 제4오관대왕, 제5염라대왕, 제6변성대왕, 제7태산대왕, 제8평등대왕, 제10오도전륜대왕, 좌우 판관, 좌우 사자상 등이다. 각 존상의 조성발원문의 형식은 유사하지만, 오른쪽 편의 판관상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불갑사 명부전 존상의 명칭과 시주자가 모두 기록되어 있다.

명부전 존상은 대웅전 목조삼세불좌상(1635년)을 조성한 조각승 무염(無染)과, 그의 제자인 해심(海心) 등에 의해 1654년에 조성되었다. 주도적인 역할은 조각승 해심이 했을 것이며, 스승 무염과 사형(師兄) 정현이 지도하고 있음을 명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조각승 무염은 1635년에 불갑사 대웅전 목조삼세불상을 조성한 이후 1654년에 명부전 존상 조성에 참여했다. 조각승 해심은 불갑사 명부전 존상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데, 1653년 고창 문수사 명부전 존상도 조성했기 때문에 두 사찰의 조각들은 거의 같은 양식을 띠고 있다.

1654년이라는 확실한 조성 연도와 무염을 비롯한 해심 등 17명의 조각승이 참여하고 있는 점, 벽암각성과 당대 최고 선승들이 동참했다는 사실, 그리고 각 존상의 시주자들과 다양한 시주물의 종류 등을 자세히 기록한 조성발원문이 남아 있는 불갑사 명부전 존상들은 17세기 불교조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발원문의 내용은 조각승 무염 일파와 불사를 주도한 벽암각성 스님을 비롯한 선사들이 그룹을 형성해 각 지역의 불사를 이끈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이런 구체적 사실은 속초 신흥사와 영암 도갑사에서 찾을 수 있다. 불갑사 명부전 상을 조성하기 3년 전인 1651년에는 속초 신흥사 아미타삼존상과 명부전 존상 조성에 참여했고, 1년 전인 1653년에는 ‘도갑사 도선 수미 양대사비(道岬寺道詵守眉兩大師碑)’ 건립에 동참했다. 불교조각을 통해 조선후기 스님들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써 불갑사 명부전 존상들은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다.  

[불교신문3305호/2017년6월14일자] 

유근자 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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