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성사 법안스님, "용성 큰스님 계율 근본 삼아"

1935년 발간된 <대각교관정사유헌> 표지. 자료제공=서울 대성사 주지 법안스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민족불교 수호에 헌신한 백용성 스님의 수행 기조와 가르침을 담은 자료가 세상에 나왔다. 백용성 스님 탄신 153주년(6월2일, 음력 5월8일)을 앞두고 서울 우면산 대성사 주지 법안스님이 본지를 통해 <대각교관정사유헌(大覺敎灌頂師遺憲)>을 공개했다.

1935년 여름 ‘경성 대각교 중앙본부’가 발행한 <대각교관정사유헌>은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로 8페이지 분량이다. 본문 21조와 세칙 9조 등 총 30개 항목으로 구성됐다. 일제강점기 친일불교에 맞서 ‘신(新) 불교 운동’을 제창한 용성스님의 대각교 사상과 수행 방침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백용성 스님

‘정수리에 물을 뿌리는 스승’이란 사전적 뜻을 지닌 관정사(灌頂師)는 계율을 전하는 수계사(授戒師)또는 전법사(傳法師)와 같다. ‘대각교 관정사’는 백용성 스님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 책은 용성스님이 후학들에게 남긴 가르침과 같다.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로 활약한 용성스님은 그동안 독립운동 등에 대한 연구는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수행 분야는 부각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법안스님이 공개한 <대각교관정사유헌>은 수행자로서 용성스님이 후학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남겼는지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우면선 대성사는 칠불암 조실로 납자들을 인도하던 용성스님이 상경하여 오랜 기간 주석하면서 대각사 설립을 준비하고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등 인연 깊은 도량이다. 용성스님 문도(증손좌)인 법안스님은 평소에도 관련 자료를 수입하고 논문을 집필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각교관정사유헌>도 그동안 수집한 많은 자료 가운데 하나를 용성스님 탄신일을 맞아 공개한 것이다. 

<대각교관정사유헌> 첫 페이지.

<대각교관정사유헌>에는 본교경전(本敎經典, 소의경전)은 원각경(圓覺經)으로 하고, 계율은 범망경(梵網經)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대각교) 교리를 선포(宣布, 선양, 포교)하기 위해 교수사(敎授師), 훈교사(訓敎師), 정교사(正敎師) 등 삼사(三師)를 둔다고 적시했다. 제16조에는 “출가 수행하는 정사(正士)에게는 교중(敎中)에서 자량(資糧, 비용과 식량)을 공급 ᄒᆞᆷ”이라고 규정해 출가자들이 안정적인 여건에서 수행에 전념하도록 했다. 세칙에는 부처님오신날(음 4월8일), 성도절(음 12월8일), 열반절(음 12월15일) 등 3대 기념일에 남녀교인총회(男女敎人總會)를 개최하게끔 하는 등 구체적인 신행활동도 담았다.

대성사 주지 법안스님은 “큰스님이 (대각교관정사유헌을 통해) 후학들에게 남긴 가르침은 계율을 근본사상으로 하라는 것”이라면서 “광도중생(廣度衆生)을 위해 사상을 정립하고 수행을 당부한 큰스님의 뜻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고 밝혔다.

<대각교관정사유헌> 마지막 페이지. 불기 2965년, 을해년 맹하 6월 발간 표기가 분명하다.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는 불교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런 책자가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처음 보는 자료”라면서 “1936년 즈음에 일제에 의해 대각교가 해체되기 직전에 발간됐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김광식 교수는 “용성스님이 어떤 기조와 취지로 대각교를 운영했는지 구체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라면서 “앞으로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법안스님이 공개한 <대각교관정사유헌>은 1864년에 태어나 1940년 원적에 들 때 까지 평생 독립운동과 일제의 대처승 합리화에 맞서 대각교를 설립하는 등 불교혁신운동을 펼친 용성스님의 수행정신을 재조명하는 귀중한 자료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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