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가? 억울한가?…다만 “부지런히 정진하라”

 

데바닷타의 숱한 암살 시도

교단 파괴행위로 가시밭길

친족의 멸망 지켜보며

통한의 눈물…

모든 것은 쉴 새 없이 변해니

결코 집착하지 말라 ‘유언’

자기 자신과 진리에 의지해

실존적 고통 초극하라 ‘감동’  

부처님도 우리와 같이 비바람 불고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갖은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자비에 대한 원력을 잃지 않아 끝내 깨달은 자로서의 원상(圓相)을 지킬 수 있었다. 사진은 인도 아잔타석굴에 있는 부처님 열반상. 불교신문 자료사진

붓다께서 열반에 들기 두 세해 전 교단에도 세상에도 큰 풍파가 몰아쳤다. 그 시작은 데바닷타였다. 붓다의 사촌동생인 데바닷타는 32상 가운데 30상을 갖추었다고 전할 정도로 비범한 인물이다. 데바닷타는 붓다에게 “교단의 차기 지도자 역할을 자신에게 맡겨 달라고 한다. 붓다는 말했다. “나 스스로 이 교단의 지도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사리불이나 목건련과 같은 덕 높은 벗들에게도 넘길 권한이 없다. 하물며 아직 수행이 덜 준비된 너에게 넘길 권한이 어디 있겠는가?” 몇 차례 간청을 하였지만, 붓다는 그때마다 거절하였다. 

그러자 데바닷타는 앙심을 품고 붓다를 세 차례 시해하려 하였다. 모두 무위로 돌아가자 바이샬리 출신의 동조자 500명을 규합하여 별도의 공동체를 구성하였다. 그는 철저한 걸식 등 근본적인 구호를 내걸어 지지자들을 모아 나가지만, 목건련과 사리불이 찾아가 500명 대부분을 설득해 다시 데려옴으로써 실패하고 만다. 

비슷한 시기 밧지국 의회가 붓다를 비난하는 결의를 하였다. 이 결의는 밧지국 출신으로 붓다의 시자까지 했던 수낙캇타라는 이가 주도하였다. 그는 “붓다는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다. 그는 어떠한 신통력도 없다”고 음해하여 밧지국 의회가 백성들에게 시주하지 말 것을 권유하는 결정을 하게 하였다. 아난다가 이 소식을 전하자 붓다는 담담하게 “수낙캇타의 말은 사실 나를 칭찬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넘긴다. 신비체험이나 신통력을 배격하였던 붓다에게 ‘신통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말은 비난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붓다의 열성적 후원자였던 빔비사라왕이 아들 아자타삿투에게 살해되고, 얼마 안 있어 코살라국에서도 정변이 일어났다. 파세나디 왕이 변방으로 출정을 간 사이 아들 위두다바(한역은 비유리)가 왕위를 찬탈하였다. 위두다바의 어머니는 석가족의 노예출신이었는데, 어릴적 어머니의 고향을 방문했다가 노예자식이라는 비웃음을 받고 품었던 원한을 갚고자 석가족 정벌에 나섰다. 

위두다바가 군사를 이끌고 카필라를 향하는 데 길가의 작고 앙상한 나무 밑에 붓다가 앉아 있었다. 왕은 앞으로 나아가 정중히 절하고 나서 말하였다. “사문이시여, 햇볕이 뜨거운데, 저 옆의 무성한 나무그늘을 두고 왜 앙상한 나무 밑에 앉아 계십니까?” 그러자 붓다는 조용히 왕을 올려다보며 “대왕이시여, 남의 숲 그늘이 아무리 번성하고 시원하다고 해도, 비록 헐벗었지만 친족의 그늘이 시원한 법입니다” 이렇게 하여 붓다는 위두다바의 정복군을 두 번이나 막았다. 하지만 왕은 결국 세 번째 군대를 출동시켜 석가족을 멸망시킨다.<육도집경> 석가족이 멸망하는 참상은 경전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때 붓다가 매우 슬퍼하며 위두다바왕이 과보로 불에 타죽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참혹한 광경을 보며, 붓다조차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세수 80이 다 된 붓다는 이제 기력이 크게 쇠퇴해짐을 느끼고 아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난이여! 내 육신은 이미 늙어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 끈에 의하여 겨우 움직이고 있는 것과 같이 방편의 힘으로 이 고통을 참고 있다.” 열반을 예감한 붓다는 오랫동안 머물던 왕사성 영취산을 떠나 고국 사키야를 향한 길에 나섰다. 첫번째 여행지는 나란다의 암발라티카 숲, 이곳에서 붓다는 상수제자인 사리불을 만났다. 붓다보다 여덟살 많았던 이 노제자는 친구인 목건련을 이교도들의 폭력에 먼저 떠나보내고 붓다를 찾은 참이었다. 

오랜만에 붓다를 만난 사리불이 감격에 겨워 말했다. “붓다이시여, 저는 당신보다 더 훌륭한 깨달음을 얻은 이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현재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제자는 스승과 함께 보낸 세월을 회고하며 최고의 찬사를 보냅니다만 붓다의 답이 의외였다. 고마움을 표시하는 정도의 덕담 대신 이렇게 사리불에게 되묻는다. 

“사리불이여, 과거 오래전에 붓다의 삶을 이룬 분들이 어떤 깨달음을 얻었고, 어떤 지혜가 있었는지 그대는 잘 알고 있는가?” 

사리불이 답한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 사리불이여, 미래 오랜 시간 뒤의 붓다의 삶을 이룰 분들이 어떤 깨달음을 얻을 것인지, 어떤 지혜가 있었는지 그대는 잘 알고 있는가?”

“알지 못합니다.”

“지금 붓다가 어떤 깨달음의 삶을 이루었는지, 어떤 지혜가 있는지 그대는 잘 알고 있는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대는 왜 그런 사자후를 토하는 것인가?”

“붓다시여. 저는 마음의 모습을 아는 지혜가 없습니다.. 다만 추론해서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열반 길을 걸으며 최후에 만난 상수제자 사리불, 온갖 교단의 굳은 일을 마다 않았던 이 노제자에게 붓다는 마지막까지 추상같은 가르침을 베풀었다. 사리불은 절친한 도반 목건련의 피살 소식을 전한 후 자신도 곧 입적할 것이라고 아뢰고 이별을 고했다. 붓다와 헤어진 후 2주 뒤에 사리불은 열반에 들었고, 그의 제자들이 화장을 한 후 수습한 사리를 붓다에게 전했다. 붓다는 제자의 사리탑을 잘 세우라고 부탁한 후 열반 길을 이어갔다. 

붓다는 가는 길목 곳곳에 흩어져 있던 제자들의 공동체에 들러 평소처럼 가르침을 설했다. 열반경에는 암바팔리의 공양, 악비구 찬타카에 대한 유언, 붓다의 마지막 제자 수바따와의 일화 등 많은 에피소드들이 기록되어 있다. 북인도 파바성에 이르렀을 때 대장장이 춘다의 공양을 받은 후 붓다는 죽음을 맞이한다. 원인은 심각한 식중독이었다. 큰 고통을 겪으면서도 붓다는 제자들을 춘다가 사는 마을로 보내 춘다의 마지막 공양이 성도 때와 마찬가지로 공덕이 크다고 전하게 하였다. 음식을 잘못 대접하여 자신을 죽게 만든 이조차 배려하는 붓다의 자비심이 코끝을 찡하게 하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붓다는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들기 직전 한 늙은 바라문을 마지막 제자로 거두었다. 아난의 반대를 물리치고 맞은 그 바라문이 장황하게 묻자 붓다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요점을 설하겠다”며 8정도를 설하였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붓다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붓다의 입멸이 다가오자 가장 슬퍼한 이는 아난이었다. 아난이 울자 붓다는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하였다. “울지 마라, 아난다여! 그대에게 항상 말하지 않았더냐. 아무리 사랑하고 마음에 맞는 사람일지라도, 이별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태어나고 생겨나는 모든 것은 변할 수밖에 없고, 사멸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내 죽음을 슬퍼 말고, 부디 정진하여라.” 붓다는 슬퍼하는 아난에게 “아난다여, 자신을 의지처로 삼고, 진리를 의지처로 삼아야 한다.”며 곧 깨달음의 삶을 이룰 것이라고 아난을 격려하였다. 

그리고는 함께 유행 중이던 제자들을 불러 모아 마지막 법을 설했다. “…비구들이여, 모든 것은 쉴 사이 없이 변해가니 부디 마음속의 분별과 망상과 밖의 여러 가지 대상을 버리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부지런히 정진하면 어려운 일이 없을 것이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방일함을 원수와 도둑 멀리하듯이 하라. 나는 방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깨달음의 삶을 완성할 수 있었다. 마치 낙숫물이 떨어져 돌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이 끊임없이 정진하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의 최후의 설법이니라.”<대반열반경>

법을 설한 후 붓다는 아난에게 말했다. “아난다여, 피곤하다. 눕고 싶구나.” 그리고는 평소처럼 옆구리를 땅에 대고, 고요히 누워 입멸에 들었다. 입멸하기 직전까지도 붓다는 진리를 전했다. 마지막까지도 혼신의 힘을 다해 법을 설하는 그 치열한 삶을 필설로 형언키 어렵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붓다라는 사람을 표현할 길을 찾지 못해 그저 ‘그렇게 오신 이(如來)’, ‘잘 가신 이(善逝)’라고 하였다. 

[불교신문3301호/2017년5월31일자] 

도법스님 조계종 화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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