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삼은 온통 불구멍…밤새도록 무념무상

눈 밝은 스승 만나 오랫동안

모시고 싶은 수행자의 마음…

짧은 인연 아쉬움에 불똥이

온몸에 상처 내는지 모르고

밤새 다비장을 지키던 수좌

인각스님은 현재 범어사 총림 금어선원(金魚禪院)의 수좌다. 스님은 향곡 큰스님이 열반하신 그해, 길상선원에서 동안거를 났다. 그전에도 인각스님은 월내 큰스님 회상에서 몇 번이나 안거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큰스님을 뵈러 올 때마다 비구니 스님들의 시봉을 받는 모습이 마음에 걸려 다시 돌아가기를 예닐곱 번을 반복하였다. 그 때만 해도 꼿꼿한 수좌의 성격이 살아있어 조금만 거슬리는 것이 있어도 참지 못할 때였다. 왜 비구 처소에 비구니들이 와서 시봉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한 생각 접고 살아도 되는 것을. 그땐 그런 일들이 왜 그리 마음에 걸렸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본래 동안거는 팔공산 금당선원에 방부를 드렸다. 결제가 임박해 동화사 주지인 서운스님의 부탁을 받은 인각스님은 큰스님을 동화사 조실로 모시고 가려고 월내로 왔다. 큰스님께서 가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거부하는 통에 기다리다가 결제 전날이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길상선원에서 용상방을 짜는 자리에 큰스님과 함께 참석하게 되어 한 철을 엉겁결에 나게 된 것이다. 할 수 없이 입고 온 그대로 살았다.

동화사 사중에서는 큰스님도 조실로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못마땅한데다가 인각스님 조차 안 오니 미운 털이 박혀버렸다. 결제 걸망도 부쳐주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한 철 내내 겉옷은 누비 하나로 버텼으니 오죽했으랴 싶다.

그해 동안거 중에 향곡 큰스님이 열반에 드셨다. 누구도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인각스님은 금방이라도 공부가 터질 듯해서 온 힘을 쏟아 정진에 매진할 때였다. 그러니 너무나도 기가 막혔다. 그저 큰스님을 따라 같이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그때를 회고했다.

월내 묘관음사 염화실 뒤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밭을 해먹던 빈 터가 있다. 전에는 콩도 심고 다른 작물도 심었으나 공을 들인 만큼 수확이 나지 않아 묵혀둔 밭이다. 현재 종정으로 계시는 진제 큰스님의 토굴이 있었던 자리이기도 하다. 그 토굴에서 진제 큰스님이 한 소식을 했으니 정말로 명당자리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 자리에서 내려다보면 동해바다가 훤히 내다보인다. 그곳을 다비장으로 정한 것이다.

다비식이 있던 날, 대중이 모두 다비장으로 향했다. 다비의식이 시작되고 거화(擧火)를 하자 처음에는 불길이 약했다. 나중에 불길이 점점 강해지자 불티도 나르고 불똥도 튀어 올랐다. 그러자 대중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아래로 다 내려 가버렸다. 단 한 사람, 인각스님만이 섰던 자리에 꼼짝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 대중들이 습골을 한다고 모두 다비장으로 올라왔다. 그때서야 인각스님이 무념무상으로 밤새 지켰다는 걸 대중들이 알게 되었다. 대중들이 웅성거려도 그대로 장승처럼 꼼짝 않고 서있었으니까.

습골이 다 끝나고 내려와 보니, 인각스님이 입고 있던 장삼은 온통 불 구멍투성이였다. 그 뿐만 아니라 머리에 썼던 모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불똥이 튀어 머리까지 불에 데어 상처가 여러 군데 나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모르고 서있었다니. 자기 자신도 놀랐다고 한다. 참말로 그냥 그대로 큰스님과 함께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는 말을 거듭했다. 공부가 익을 대로 익어 가는 지점에서 열반하셨으니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 아쉬운 마음을 어디에다 비할 수 있으랴.

인각스님은 ‘왜 진작 큰스님 회상에서 살지 않았는지 후회스러웠다’고 말했다. ‘길이 눈 밝은 선지식을 만나고 싶다’는 발원은 ‘이산혜연선사발원문(怡山慧然禪師發願文)’에도 나와 있다. ‘장우명사(長遇明師)’라는 구절이다. 다시 말하면 눈 밝은 스승을 만나 오랫동안 모시고 싶다는 뜻도 된다. 그만큼 선지식을 만나 오래토록 바른 가르침을 배운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조석으로 발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인각스님을 찾아뵈었다. 마침 범어사선원은 새로 증축하는 중이었다. 몇 번이나 전화를 드려도 아무도 받지 않아 포기할까 하다가 한 번 더 걸어보니 인각스님이 전화를 받았다. 스님들이 정진할 선원을 짓기 때문에 내내 밖에 서서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튼 어렵게 얻어낸 자리였다. 그만큼 얻은 것은 더 많았다.

두 번째 스님을 뵈러 간 날도 선원 큰방에 까는 닥종이장판을 정하느라 손님이 와서 바빴다. 그런 와중에도 손님은 뒤로 미루고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대화를 하는 도중에도 한 점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를 보인다. 일생을 꼿꼿하게 사신 분이라, 그런 품격이 인각스님의 온 몸에서 저절로 풍겨 나오는 듯하다. 건강은 어떠시냐고 물었다. 다리가 편치 않으나 선방에서 좌선하는 것은 불편하지 않다고 한다. 정진의 힘으로 참고 견디어내는 것 같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두고 금어선원을 나왔다.

[불교신문 3299호/2017년5월24일자]

법념스님 경주 흥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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