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가를 하겠다는 초심자가 찾아 왔다.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두런두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며, 요즘 젊은이들의 어려운 취업 문제며, 그동안 살아온 일을 통해 경험한 것들을 풀어 놓았다. 

기독교 전통 안에서 살아온 그 젊은이가 자기 종교는 불교라고 가족들에게 종교를 강요하지 말아 달라고 공개적으로 공표하기까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교회보다 사찰 법당이 더 편하고, 사찰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는 젊은이였다. 그러나 삶의 현장으로 돌아오면 부대끼는 일과 인간관계는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는 그녀의 말 저변에 열심히 살아온 열정만큼 고달픈 흔적도 보였다. 그녀의 모습에서 요즘 젊은이들의 자화상을 보는 듯 해 마음이 무겁기도 했지만, 사람을 만나며 풋풋하고 신선한 느낌을 가져본지 언제인가 싶어 나의 귀를 즐겁게 열게 했다.

출가의 뜻을 품고 마음을 정리 중인 초심자의 모습에서 나는 긴 시간의 흐름 속 타성에 깊숙이 가두고 있었던 자신을 본다. 순간순간 깨어있으며 묵은 나무에 돋아나는 새잎처럼 그렇게 피어나야 할 수행자의 삶에서 타성에 젖어 녹슨다는 것은 죽음이다. 우리 수행자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실상 육신의 죽음이 아니다. 타성에 젖어 그 정신이 녹슬어 가는 것 그것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대상일 것이다. 

초심의 마음으로 운문사를 찾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기성세대가 돼 초심자의 마음을 가늠하고 있다. 몇 십 년 전만해도 사찰이나 스승에 대한 정보를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 인연 닿는 사찰로 출가해 상황에 따라 은사를 정하곤 했다. 그러나 요즘 최첨단의 정보화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출가 전 사찰과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는 스님에 대한 정보를 포털사이트를 통해 많이 얻고 행자생활 기간까지 계산해서 출가를 결정한다고 한다. 

출가를 준비하는 풋풋한 젊은이에게 나는 이렇게 조언한다. 피부에 난 종기와 오장육부 깊숙이에서 자라고 있는 암덩이까지도 자신의 몸이라면 사랑해야 하듯 승가 곳곳에 있는 종기까지도 사랑할 자세가 되어 있다면 출가를 결정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새롭게 태어나기를.

[불교신문3298호/2017년5월20일자] 

진명스님 논설위원·시흥 법련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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