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이에게 당장 내 밥 퍼주는 게 진짜 법문”

 

부처님 가르침은 당대의 혁명

기득권의 비방과 음해 시달려 

사람들 고통 해결하는 삶으로

보살로서의 진정성 확립 ‘의의’

낙담과 절망의 연속에서도

잊지 않은 ‘인간이 곧 부처’

만나는 사람들을 진리로 이끌려

끊임없이 소통한 붓다의 하루 

몸의 중심은 머리도 심장도 아닌

지금 내 몸에서 가장 아픈 곳 

순간순간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전체를 헌신하는 게 붓다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단단한 아집, 아집으로 뭉친 자아를 떠나 자연스레 남을 진심으로 보살필 수 있다. 사진은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2015년 10월 어느 빈민촌을 찾아 주민에게 단주를 채워주며 격려하고 있는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사람들은 성도 후 붓다가 일생동안 특별한 존재로 대접받고, 좋은 일만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는데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성도 당시 붓다는 약관을 갓 넘긴 35세의 청년에 불과했다. 더구나 붓다는 기성 종교관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파격적인 가르침을 펼쳤다. 기성종교인들의 비방과 음해가 적지 않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 지켜보았다. 

탁발을 갔다가 비난 받고, 밥을 못 얻는 경우도 많았다. 농사를 짓던 ‘바라드바자’라는 브라만은 늘 동네사람들에게 탁발하는 붓다와 수행자들을 비난하였다고 한다. 붓다께서는 어느 날 아침 그의 마을로 탁발을 갔다. 바라드바자는 “나는 농사를 지어 먹고 산다. 그대는 왜 건강한 몸을 갖고도 밥을 빌어먹고 천박하게 사는가”라고 힐책합니다. 그러자 붓다께서는 “나도 농사를 짓고 있다”라고 답한다. 

“나에게는 신앙이 씨앗이요, 고행은 비다. 그리고 지혜는 내 멍에며 쟁기요, 잘못을 반성하는 마음이 그 쟁기의 자루다. 또 곧은 마음은 쟁기를 매는 밧줄이요, 매사에 생각이 깊은 것은 쟁기의 보습이다. 몸을 삼가고, 말을 삼가고, 음식을 절제하는 것, 그리고 말없이 진실을 지키는 것, 이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소를 멍에에서 메어놓는 일이다. 노력하는 것이 내 멍에를 맨 소이며, 이 소가 마침내는 니르바나의 저 언덕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물러서지 않고 굳게 나아가서 니르바나, 저 언덕에 이르게 되면 근심과 걱정은 더이상 없게 된다. 나는 이렇게 농사를 지어서 마침내는 저 불멸의 과일을 열매 맺게 하나니 나처럼 농사를 짓게 되면 그대도 이 모든 고뇌로 부터 해방되리니.”(숫타니파타 ‘바라드바자경’)

이 법을 들은 바라드바자가 붓다를 진정한 경작자라고 칭송하며, 기꺼이 공양을 올렸다고 한다. 어디 이런 성공사례만 있었을까? <아함경>에는 탁발을 갔다가 밥 한톨 얻지 못한 붓다에게 마라가 나타나 다시 마을로 가자고 유혹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상적으로 밥 한그릇 얻어먹는 일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때로는 폭언과 폭력, 음해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특히 교단이 어느 정도 성장하자 위협감을 느낀 이교도들의 공격이 많았다. 그들은 건달을 시켜 붓다를 쫓아다니며 폭언과 폭력을 일삼거나, 독살하려 하였고, 심지어는 기녀를 살해한 후 그 시신을 붓다의 초막 부근에 묻어 살인죄를 덮어씌우기도 하였다. 

초기 경전에 보면 붓다의 인간적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기록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제자들을 불러다 엄하게 꾸짖기도 하고, 제자의 열정어린 법문에 기분 좋아하며 농담을 하는 모습도 있다. 소박한 붓다, 겸손한 붓다, 눈물 흘리는 붓다, 화내고 야단치는 붓다, 실패하여 낙담하거나 좌절하는 등 붓다의 인간적 삶의 편린들을 볼 수 있다. 

붓다는 스스로 바느질도 하고, 병자도 돌봤다. <증일아함경>에 있는 일화다. 천안제일 아니룻다(아나율)는 어느날 붓다의 설법을 듣다가 깜박 졸아 붓다의 질책을 받았다. 크게 뉘우친 아니룻다는 밤낮없이 잠 자지 않고 정진하다가 그만 눈이 멀고 말았다. 어느 날 그가 바느질을 하는데 좀처럼 바늘귀가 꿰어지지 않았다. 아니룻다는 혼자말로 “누군가 복을 지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위해 바늘귀를 꿰어주면 좋겠네” 라고 말하였다. 그 때 누군가 나타나 아니룻다의 낡고 해진 옷을 기워주었다. 아니룻다는 그가 붓다인 것을 알고 매우 감격스러워 한다. 

언젠가 병든 비구가 침상에서 똥 범벅이 된 채 굶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붓다는 그를 씻어주고, 자리를 갈아준 후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 붓다는 주변의 수행자들을 불러 물었다. “그대들은 왜 아픈 도반을 보살피지 않았는가?” 그들은 “처음에는 돌봤는데, 스스로가 더 이상 폐를 끼치기 싫다고 하여 놔두었다”고 답했다. 붓다는 “아픈 도반을 돌보는 것이 곧 나 여래를 돌보는 것이다”고 하며 수행자들이 서로 돌보고 살도록 하였다. 

붓다는 전법을 함에 있어 어려운 교리를 설하기보다는 철저히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하는 실천적 입장에 섰다. 또한 종교적 가르침을 앞세워 사람들을 복종시키거나, 일상의 삶을 희생하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법(진리)이나 깨달음은 세상의 고통과 무관한 것이 될 수 없음을, 다음의 일화가 잘 말해준다. 

붓다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이다. 소를 치던 농부는 부처님께서 마을에 오신다는 말을 듣고, 법문을 들으려고 결심하였다. 그런데 간밤에 소가 고삐를 풀고 나가는 바람에 소를 찾으러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농부는 한 낮이 지나서야 소를 찾았고, 그제서야 부처님 법문을 들으러 갔다. 그는 부처님을 뵙자 공손하게 인사를 올리고 옆에 앉았다. 그의 행색을 본 부처님이 공양 책임자에게 “비구들에게 공양 올리고 남은 음식이 있는가?”라고 묻고 그에게 음식을 주게 하였다. 그리고 그 가난한 농부가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설법하셨다. 

법문이 끝난 후 비구들이 투덜거렸다. “전에는 공양시간이 지난 후면 음식이 남았는지 물어보시거나, 음식을 주라고 한 일이 없었는데 부처님이 웬일이신가?” 비구들은 가난한 농부 한사람을 위해 그 많은 사람을 기다리게 한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말씀을 들은 붓다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배고픔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법문하면 법문을 잘 들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음식을 가져다주라고 말한 것이다. 비구들아, 이 세상에 배고픔의 고통보다 더한 고통은 없다.”(법구경이야기 3)

몸의 중심은 어디인가? 라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머리다, 혹은 심장이다 말하는데, 실제 사람에게 몸의 중심은 그때그때 아픈 곳이다. 발가락 하나를 다쳐도 사람은 이를 치료하기 위해 온 몸으로 정성을 기울인다. 그렇듯이 공동체의 중심도 아픈 사람, 고통스러운 사람이다. 붓다께서는 법을 베푸는 그 현장의 공동체 안에서 배고픈 목동, 그의 배고픔을 공동체생명의 중심으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밥을 굶은 목동 한 사람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을 기다리게 하였으니 요즘 같으면 낭비나 비효율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사람들은 “한 사람이 모두를 위해서”라는 것에는 쉽게 동의하지만, “모두가 한 사람을 위해서”라는 것에는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이는 ‘너는 너고, 나는 나다’라는 단절적 생명관에 바탕하고 있다. 그러나 공동체를 하나의 생명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고통 받는 그를 돕기 위해 공동체 전체가 나서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공동체는 개인의 성숙을 돕고, 개인은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한다. 이렇게 공동체적 삶을 살아갈 때 단단한 아집, 아집으로 뭉친 자아를 떠나 자연스레 남을 보살피게 된다. 

성도 후 붓다의 하루 일과는 어떠하였을까? 초기경전인 <쌍윳따니까야>를 근거로 나라따 장로가 기록한 <붓다와 그의 가르침>에 의하면, 붓다는 탁발 공양시간 이전에는 주로 출가 제자들과 시간을 보내고, 탁발 공양을 한 이후 오후에는 공양을 올린 재가대중이나,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설법을 하였다. 밤중에는 주로 명상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때로 제자들을 지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붓다는 만나는 사람들을 진리로 이끌기 위해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붓다의 성도 후 삶 45년은 길 위의 삶이다. 매 순간순간 치열한 삶의 현장 속을 거닐면서도 붓다의 일상은 늘 자유롭고 평화로웠다. 모든 생명에게 자비로웠다. 처염상정(處染常淨), 진흙탕 연못 속에 피어난 연꽃 같은 삶이었다. 

[불교신문3297호/2017년5월17일자] 

도법스님 조계종 화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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