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이다. 꽃이 피고 새가 난다. 이 멋진 봄날, 나는 내 친구를 소개하고 싶다. 내게는 나이 많은 친구가 하나 있다. 바로 옆집에 사시는 210호 할머니다. 우리 집은 209호, 할머니 집은 210호. 여든을 넘긴 어른이다. 할머니는 귀가 잘 안 들려 사람의 입을 보고 말씀하신다. 언젠가 보청기를 왜 안 끼시냐고 하니 영 귀찮기만 하단다.

할머니는 자주 우리 집 문을 두드리신다. 우리는 어김없이 “휴대폰에 불이 깜빡깜빡해.” “문자가 와서 그런 거예요”라거나, “아들이 돈을 부쳤다는데 안 찍혔어.” “2월3일에 이십만 원 찍혀 있어요”라는 식의 대화를 한다. 또는 “아들이 냉장고 사줬는데 구경하러 와.” “우와, 멋져요”라거나, “상추 줄까?” “네, 주세요”라는 대화도 한다.

내가 내뱉는 문장을 할머니가 다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나는 주요단어를 말할 때 애써 크게 말한다. 그러면 할머니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어? 어?” 하신다. 삭막한 아파트 숲에서 우리 둘은 진심으로 좋은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저녁운동을 나서는데 할머니가 경비실 앞에 힘없이 앉아 계셨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시원엄마, 나 아파서 죽을 것 같아.” “어디가요. 빨리 같이 병원 가세요.” “병원 갔다 왔어. 그래도 아파. 하도 아프다니 할아버지가 화내서 나온 거야.” 할머니는 내 품에 안겨 어린애처럼 우셨다. “시원엄마, 나 지금이 딱 죽어도 좋을 나이같아.” 그 말씀에 이번엔 내가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 날 운동을 하지 않았다. 딱 죽어도 좋을 나이. 이생과의 이별. 아이들이 태어나고 노인들은 늙어간다. 봄에 난 싹이 가을이면 떨어지고 거름이 된다. 마침내는 떨어져야 하는 나이. 오늘 할머니가 놀러오셨다. 식탁에 앉기도 전에 할머니는 슬픈 표정으로, “어떡해. 휴대폰을 세탁기에 넣고 돌렸어.” 나는 할머니에게 소리 질렀다. “괜찮아요! 그런 건.” 그리고 속으로 덧붙였다. ‘할머니만 괜찮으면 그런 건 다 괜찮아요.’ 어쩌면 우리 모두는 “괜찮아”라는 위로에 목말라 하는 시절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이 봄.

[불교신문3293호/2017년4월26일자] 

전은숙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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