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푸르른 천년 숲에 들면 ‘도깨비’같은 사랑이 올까?

 

전나무 가득한 한국 제1숲길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더 유명 

일주문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천년 숲길은 힐링여행지로 인기

① 월정사 할아버지 전나무. 몇해 전 태풍으로 쓰러지며 고사목이 되어 전나무 숲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무서워. 너무 무섭다. 그래서 네가 계속 필요하다고 했으면 좋겠어. 그것까지 하라고 했으면 좋겠어. 그런 허락 같은 핑계가 생겼으면 좋겠어. 그 핑계로 내가 계속 살아 있으면 좋겠어. 너와 같이….” 

온 국민의 감수성을 흔들다 지난 1월말 끝난 드라마 ‘도깨비’의 명대사다. 주인공 도깨비(김신)는 흰 눈이 가득한 월정사 전나무 숲에서 가슴에 꽂힌 검을 뽑아 달라고 한다. 그 검이 뽑혀지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도 말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 연인(지은탁)은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② 월정사 중심전각인 적광전.

사랑이라는 소재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주인공들의 아련하면서도 슬픈 이야기가 브라운관을 뜨겁게 달궜다. 지극히 불교적인 내용이 많아 촬영하는 곳곳에 사찰이 많았는데 결정적인 순간을 촬영한 곳이 월정사 전나무숲길이다. 이미 국내 최고의 숲길로 각광을 받고 있는 숲길이 인기드라마 촬영지가 됨으로써 주말마다 몸살이 날 정도로 붐볐다. 

탄탄한 극본과 걸출한 배우들의 열연으로 여심(女心)을 강타해 ‘도깨비(공유) 바라기’ 현상이 일어날 정도였다. 감성 가득한 OST(Original Soundtrack, TV 드라마에 삽입된 음악)가 음원시장을 석권하며 뭇 사람들의 휴대전화 배경음악으로 저장되기도 했다. 주인공 도깨비가 읽어 내린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라는 김인육의 시(詩)도 아련한 첫사랑의 감성을 일깨우며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③ 선재길이 시작되는 월정사 일주문.

지난 3월16일 도깨비의 여운이 남아있는 강원도 평창 오대산 월정사를 찾았다. 수령이 400여년이 넘는 2000여 그루에 달하는 고령의 전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총총이 서 있다. 드라마에서 온통 눈 세상이었던 월정사 전나무 숲길에 눈은 다 녹았다. 사시사철 뿜어내는 피톤치드로 가슴까지 시원하게 해 준다. 봄빛 완연했던 오대산은 오후가 되자 돌연 서늘한 기운을 드리운다.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숲길은 장대했다. 눈빛이 형형한 수행자의 기상처럼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전나무가 도열하듯 서 있다. 반듯하게 서 있는 전나무 숲은 대대로 월정사 스님들이 가꾸어 온 숲이다. 자연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면 현재의 숲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자식을 돌보듯이 정성을 기울여 나무의 간격도 조절해 간벌도 하고, 식목도 해 조화로운 현재의 숲을 가꾸어 냈다. 엄밀히 말하면 월정사가 없었다면 전나무 숲은 애시당초 없었다. 그래서인지 포행하는 스님들과 숲이 조화를 이루며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의 정식명칭은 ‘오대산 천년숲 선재길’이다. 과거에는 일주문에서 적광전에 이르는 숲길만 부각됐으나 근래에는 월정사에서 시작해 상원사에 이르는 5km에 이르는 길을 통칭해서 ‘오대산 천년숲 선재길’로 부른다. 상원사에 봉안돼 있는 문수동자를 착안해 화엄경에 선재동자가 선지식을 찾아 나서는 유래에서 이름 지었다. 상원사로 가는 옛길 일부도 복원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생태관찰로도 새로 만들었다. 

④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숲길에도 아름드리 전나무가 즐비하다.

숲은 활발발(活潑潑)하다. 단순하게 숲이 형성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하게 살펴보면 생사가 끝없이 반복되는 모습이다. 몇 년 전 태풍으로 쓰러진 고목 ‘할아버지 전나무’가 생을 마감했고, 그 옆에 전나무 묘목이 자라고 있다. 그 숲을 헤집고 다니는 다람쥐의 먹이활동도 요란하고, 계곡물 흐르는 소리도 봄이 되어 더 커지고 있다. 

3월 중순이지만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로 향하는 길은 아직 겨울이다. 계곡에는 얼음이 아직 남아 있고 며칠 전 내린 눈이 수북이 쌓여 있다. 그늘진 길바닥에는 눈이 쌓여 미끄럽다. 오대산의 넓은 품은 좀처럼 봄을 내어주지 않는다.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가는 중간지점 즈음에 색다른 풍경을 만났다. 섶다리다. 이 다리는 나룻배를 띄울 수 없는 낮은 강에 임시로 만든 다리다. 잘 썩지 않는 물푸레나무나 버드나무로 다리를 세우고 소나무나 참나무 가지를 얹어 엮은 뒤 흙을 덮어 만들었다. 선재길 섶다리는 해마다 가을걷이가 끝난 10월이나 11월에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 겨울동안 강을 건너다니는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다리는 여름 홍수가 나면 불어난 물에 떠내려 가서 ‘이별다리’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섶다리 아래에도 얼음과 눈이 수북하다. 그 사이에 버들강아지가 빼곡이 눈을 부풀리며 봄소식을 전하고 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자연의 이치를 보여주고 있다. 

⑤ 선재길에 재현해 놓은 섶다리. 옛길의 정취가 묻어난다.

상원사에 다다른다. 사찰 입구에 아름드리 전나무가 사찰을 외호하는 신장처럼 당당하게 서 있다. 숱한 수행자들이 이 전나무 그늘을 지나 다녔을 것이다. 전나무는 얼마나 많은 수행자들을 제접했을까. 묵묵히 서 있는 그 모습만으로도 올곧은 수행자상을 일깨워주고 있다. 

다시 월정사로 내려온다. 저녁 어스름이 산그늘을 드리우며 산사는 저녁을 맞이한다. 천년숲 선재길도 어둑어둑해진다. 흔적없이 사라졌던 옛길이 복원된 길 위로 겹쳐진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오대산에서 베어 낸 나무를 가공하던 회사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회사거리’에 다다르니 제재소에서 나무를 켜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천년옛길에 스며들어 있는 숱한 사연이 길 위를 배회하고 있다. 

제법 어두워진 길 양측에 아름드리 전나무가 위압감을 준다.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며 부스럭 거리는 산짐승 소리와 어울려 두려움마져 갖게 한다. 이제 숲길 거닐기를 마쳐야 할 시간이다. 월정사 적광전 불빛이 새어나온다. 당대의 선지식이였던 탄허스님이 일필휘지로 쓴 현판이 살아있는 듯 현란하다. 

[불교신문3287호/2017년4월5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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