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은 힐링공간, 불자는 수행도량 ... 꼭 가봐야 할 도심 속 불교성지

무각사 신도들도 주지스님 기도에 동참했다. 100인이 모여 100일간 펼친 새벽기도.

올 해 들어 광주 무각사가 주목받고 있다. 연일 언론에서는 무각사와 관련해 깜짝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쏟아내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스테인드글라스로 재현한 고려불화 점안, 광주의 원로 황영성 작가가 조성한 <반야심경> 불화조성 등등이 그러하다.
하나같이 불교계는 물론 바깥사회에서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이야기이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유리에 색을 넣고 불에 구워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흔히 성당이나 교회의 창문을 장식하는 종교화가 대표적이다. 그동안 스테인드글라스 기법으로 제작한 불화는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무각사 법당에 세계 최초로 4점의 스테인드글라스 불화를 봉안하고 점안의식을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양화가가 <반야심경> 270자를 2000호 크기의 초대형 캔버스에 한자 한자 글자의 형상을 담아 그려낸 불화를 설법전에 봉안했다. 황영성 작가는 “옛날에는 그림이 글자가 되었고, 오늘은 글자에서 뜻을 찾아 그림으로 나타냈다”며 <반야심경> 불화를 소개했다.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주지 청학스님이 있다. 그런데 며칠 전, 청학스님 역시 언론에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3000일 기도를 회향한 것이다.

무각사 자비봉사단은 해마다 여름, 겨울 두차례 소록도를 찾아 한센병 환우와 가족, 의료진, 자원봉사자들에게 팥죽공양, 김장김치 나누기 등 자비실천행을 펼치고 있다.

2008년 7월 27일이었다. 무각사에 새로운 주지 스님이 왔다. 청학스님이다. 법정스님과 함께 서울의 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을 오늘의 길상사로 일궈놓은 장본인이다. 당시 스님은 오직 목탁 하나 들고 몇 해에 걸쳐 요정을 부처님 도량으로 바꾸었다.
무각사에 온 날도 그러했다. 법당에서 주지소임을 맡게 되었음을 알리는 삼배를 마치고 곧바로 목탁을 잡았다. 이렇게 시작한 기도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00일이 지났다.
당시 무각사는 얼기설기 복잡한 일로 얽혀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땅이었다. 부처님 도량이기는 하지만 무각사 대지의 소유주는 광주시였던 것이다.  
무각사가 안정되기에는 기도 1000일로는 어림없었다. 자연히 기도는 2000일을 향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법당에서 문제가 터졌다. 1972년 상무대 군법당으로 건립된 무각사는 대웅전의 서까래가 썩고, 붕괴위험에 이르렀다. 또다시 중창불사를 염원하며 3000일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군인들의 정신적 요람으로 출범한 무각사는 1994년 상무대가 전남 장성으로 이전하면서 송광사 말사로 등록했다. 무각사 인근의 군부대 훈련장은 새로운 도심이 형성됐다. 이제 무각사는 광주에서 가장 번화한 곳에 자리한 도심사찰로 광주불교를 선도하고 있다.
무각사는 크게 두 개 영역으로 나뉘어있다. 불교회관, 로터스문화관, 사랑채 등이 자리한 문화공간과 법당, 불교대학, 요사채가 자리한 수행공간이다.
수행공간은 24시간 열린 공간으로 하루 500여 명이 넘는 불자와 시민이 참배하고 자신을 점검한다. 
문화공간은 시민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고, 갤러리 전시회를 감상하고, 책을 구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템플스테이 체험과 강연회 등 다양한 문화를 공유한다.
이처럼 무각사는 번잡한 도심 속에 자리해 있지만 불자와 시민뿐 아니라 광주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힐링의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중창불사중인 무각사는 지난 2월 14일 지장전을 조성하고 지장보살과 스테인드글라스로 재현한 고려불화를 점안했다.

무각사가 불교뿐 아니라 광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우뚝 서게 된 것은 3000일 기도가 크게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무각사에서 이뤄지는 기도는 스님만의 기도가 아니다. 신도들이 하나 둘 스님의 기도에 동참했다. 새벽예불은 많을 때는 100여 명이 참여한다. 하얀 기도복으로 복장을 통일한 불자들의 새벽예불은 장엄하다. 예불에 이어 <금강경>독송으로 하루를 여는 무각사의 기운은 넘쳐난다.
기도의 공덕은 신도뿐 아니라 이웃에 퍼지기 마련이다.
절집 인심은 공양간에서 난다고했다. 도심사찰 무각사는 점심공양에 노숙자들도 함께한다.
창고로 쓰던 건물에 로터스문화관을 마련하고 북카페와 전시관을 개관했다. 로터스갤러리는 지역을 대표하는 전시관으로 국제미술 관람회인 광주비엔날레 전시도 열린다. 더욱 눈에 띄는것은 지역 청년작가 발굴사업이다. 무각사는 전시기회가 없는 무명의 지역작가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해마다 10여 명의 청년작가에게 작품 제작금을 지원하고 무료로 전시회를 열어주고 있다.
무각사는 지역주민과의 소통을 더욱 활발히 전개하기 위해 재활용 장터인 ‘보물섬’을 개장했다. 봄, 가을로 열리는 보물섬은 매주 토요일 무각사 경내 또는 사찰앞 주차장에서 재활용장터를 운영하고 있다. 보물섬에는 어린이 참여가 높아 아이들에게 재활용 교육의 현장이 되기도 한다.
무각사 신도들의 자비실천행도 활발하다. 
무각사 자비봉사단은 해마다 한센병 환우들이 생활하는 소록도를 찾는다. 소록도에 거주하는 한센병 환우와 의료진, 자원봉사자들에게 동지팥죽 공양과 김장김치 나눔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정월대보름과 여름철 복날이면 지역 어르신들을 초청해 오곡밥 나눔잔치를 펼친다.
 

광주 번화가 상무지구에 자리한 무각사가 새로운 불교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월 24일 주지 청학스님이 3000일 기도를 회향했다. 이날 설법전에서 지역 원로 황영성 작가가 조성한 반야심경 불화를 봉안했다.

무각사는 주지스님과 함께한 3000일 기도 회향을 계기로 더욱 수행에 힘을 모아가고 있다.
그 바탕은 교육이다. 불교를 알고 신행해야한다는 것이 주지 청학스님의 주장이다. 무각사에 재적한 신도는 무각사 불교대학을 마쳐야한다고 신신당부하고 있다.
군부대법당으로 출발한 무각사는 도심사찰에 걸맞는 도량으로 변신중이다. 중창불사가 한창인 것이다. 금년 말이면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게 될 무각사 대웅전과 템플스테이관은 새로운 불교성지가 될 것이다. 그곳에는 스님과 신도 등 무각사 주인공들의 혼과 열정이 담겨지기 때문이다.

    
“깨어있으면 행복합니다”
3000일 기도 회향한 청학스님 법문

지난 2월 24일 3000일 기도를 회향한 무각사 주지 청학스님

지난 2월 24일 무각사 주지 청학스님이 3000일 기도를 회향했다. 무려 10년의 세월이다. 스님은 이 기간 동안 매일 새벽, 사시, 저녁으로 나누어 하루 세 차례씩 정진했다. 스님의 기도는 <금강경>독송이 근간을 이룬다. 여기에 108참회, 염불 등 기도는 1시간 30분간 이어진다. 그동안 스님의 손에서 깨진 목탁이 서너 개에 이른다. 기도는 단 하루도 빠지거나 게으르지 않았다.
회향법회에서 스님은 ‘여러분, 고맙습니다’라며 기도의 공덕을 신도들에게 돌렸다.
그리고 초하루 법회에서 신도들에게 기도와 관련해 소감을 밝혔다.
“지난 3천일간의 기도는 저 혼자 했던 것이 아닙니다. 신도 여러분과 함께했고, 신도분들이 계셨기에 10년 세월동안 부처님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기도의 공덕이었을까. 스님은 환절기에 잔병으로 시달리기는 했지만 심하게 아프지 않았다.
그런데 스님은 뜻밖의 말을 이어갔다.
‘3000일 동안 한 것이 무엇이냐’는 무언의 압박을 받았다는 것이다. 스님은 “선인들은 백 일, 천 일간 기도하고 도를 통했다고 하는데, 저는 도통하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다”며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물론 스님은 기도와 함께 700평 규모의 문화관에 호남 최대의 지장전과 설법전을 조성했고, 지역사회 구석구석 불교가 해야 할 역할 등등 광주불교를 선도하고 있지만 ‘이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제가 3천일 동안 무엇을 했을까요. 굳이 한마디 한다면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스님은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행복하고 평안해야한다”며 ‘각자 자기 스스로의 존재 확인’을 강조했다.
스님이 지난 10년간 지켜온 부처님과의 약속은 ‘신도들과 더불어 깨침을 향한 수행’이었던 것이다.
스님은 “<금강경>을 독송하면서 변화되는 자신을 바라봤다”고 말했다.
기도 날짜가 쌓이면서 “살아있음을 느꼈고, 이 순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더 겸손하고, 더 사랑하는 마음을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스님은 “젊어서 이런 신심을 내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만 이제라도 기도의 공덕을 말할 수 있어 다행이다”고 고백하고 “내생에도 출가승이 되어 정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청학스님은 3000일 기도를 하면서 도량 중창불사를 함께 진행해 왔다. 불사를 진두지휘하던 스님에게 하루는 공사하던 이가 말했다.
“스님, 이렇게 해도 30년은 끄덕 없어요.”
“아니야, 내가 다음 생에 다시 무각사에 와서 수행할지 몰라. 그때 ‘이것을 불사라고 했냐’고 해서야 되겠는가.”
3000일 기도는 끝났다. 그렇지만 어찌 기도에 끝이 있으랴. 법문 말미에 스님은 “이제 날짜를 정한 기도는 마쳤지만 기도는 계속 이어 가겠다”고 선포했다.
계속되는 스님의 기도수행이 기대된다.

도심속에 자리한 무각사는 광주를 찾는 외국인들의 순례코스이다. 지난 2011년 세계 각 도시의 시장들이 무각사에서 사찰음식으로 만찬행사를 펼쳤다.
3000일 기도와 함께 중창불사를 펼치고있는 무각사는 지장전에 스테인드글라스로 제작한 고려불화 지장보살도를 조성하고 주지 청학스님이 점안의식을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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