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살아가면서 문득 문득 떠오르는 말이다. 무엇을, 어떤 것을, 얼마나 예전엔 미처 몰랐다는 건가? 그럼 이제는 안다는 건가? 그에 대한 답은 잠깐 미루어 놓고 중간 얘기부터 좀 하자. 

사노라면 예전엔 미처 몰랐던 일이 이제야 알아지는 일이 한 둘이 아니다. 또 알아야 할 일도 하나 둘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도 일도 말도 글귀도 돌도 나무도 바람도 물도 꽃 한송이도 풀 한포기도…. 주절이 주절이 늘어놓아도 끝이 없다.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일 줄을, 그때 그 일은 그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때의 그 말이 이런 말인줄을. 저 큰 돌덩이는 왜 저기서 꿈쩍 않고 있는지, 저 나무는 거기가 제가 있을 자리인지, 바람은 왜 일었다 가라앉는지, 파도는 왜 저렇게 밀려왔다 쓸려나가는지, 물은 흘러흘러 가는데 왜 아래로 아래로만 가는지, 바다에 다다르면 거기가 끝인지. 꽃은 왜 피고 지는지, 길가의 저 쪼끄만 풀꽃은 어디 숨어 있다가 이제야 내 눈에 띄는지….

모두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다. 시인 소월은 달을 보고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를 읊었다. 모든 사물을, 눈에 띄고, 귀에 들리고, 냄새를 풍겨 맡게 하고, 모든 맛보게 하는 것들을 싸잡아 달에다 끌어 붙여 일어나는 감흥들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 했다. 

소월의 이 시에 적힌 ‘달’을, 나는 ‘부처님’으로 바꿔놓아 보았다.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뜨는 달”은 “봄 가을 없이 늘상 있는 부처님”으로 놓고 소월이 읊은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줄을”에 빗대어 보니 그럴싸했다. 늘 부처님을 곁에 두고도 사무치게 그리워 할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으니까.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도 그렇다. 부처님 광명이 아무리 밝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니까. 부처님 말씀, 경전의 글귀, 어른의 말씀들 모두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다. 그럼 지금은 안단 말인가? 아니다. 이 말밖에 못한다. 이제야 새삼 그런 데에 의문을 갖게 될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다고.

[불교신문3276호/2016년2월25일자] 

이진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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