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가 수행...우리 스스로 ‘불교’가 됩시다.”

지난 1월20일 법장사에서 만난 퇴휴스님. 스님은 “불교가 얼마나 바르고 소중한 지혜이자 생활양식인지 주변 사람들에게 열심히 알려야 한다”며 적극적인 신행을 주문했다.

원래 법명은 법장(法藏)이다. 1998년 여름 종립특별선원 문경 봉암사에서 안거 정진했다. 어느 선배 수행자가 핀잔을 줬다. “출가한 지 30년이나 됐는데 어찌 법호(法號)가 없소?” 3개를 지어줬다. 가장 마음에 드는 ‘퇴휴(退休)’를 골랐다. ‘무사시귀인(無事是貴人)’이라 했다. 애써 부처를 구하겠다고 망상을 피우지 않으면 그 자체로 부처라는, 선가(禪家)의 잠언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언젠가는 진짜로 놀고먹고 싶어서 퇴휴를 선택했다”며 스님은 웃었다. 여하간 현실은, 새로 얻은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삶이다.

퇴휴스님은 “자신의 일생은 도심포교, NGO, 승가교육 3개의 줄기로 구성된다”고 밝혔다. 1991년 서울 창동역 인근에 방을 얻어 법장사 간판을 걸고 전법에 나섰다. 현재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상임대표다. 조계종 교육원 교육부장으로 일하면서 인재양성을 고민했고 기획했다. 얼핏 연결고리가 맞지 않는 분야들로 보인다. 그러나 스님은 “모두가 결국은 포교로 수렴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시민들을 만났고, 시민사회를 만났고 출가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정말 바쁘게 살았다. “원력을 넘어 거의 독기의 수준이었다”고 털어놨다.

10.27법난은 스님에게도 트라우마였다. 동국대 학인 시절 근현대 초유의 불교유린사건을 경험했다. 국가권력의 농간으로 불교가 하루아침에 비리집단으로 매도되고 언론에 어둡게 대서특필되는 사실에 분개했다. 무엇보다 그토록 조리돌림을 당하면서도 찍소리 한번 못내는 교단의 무능함에 가슴을 쳤다. 그래서 기득권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자생저긴 힘을 키워야 하는구나, 절감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저항할 수 있는 신도조직화에 사활을 걸었다. 은사 스님을 모시고 살던 수유동 운가사는 너무 외졌다. 그래도 중고생 법회의 부활부터 독하게 시작했다. 동네 청소년들을 절로 불러 모으기 위해 하루에 평균 200통의 전화를 돌렸다.

스님은 “처음엔 신군부가 미워서 포교를 했다”고 말했다. ‘텔레마케팅(?)’으로 모은 80명의 10대들은 ‘종자돈’이 됐다. 이들을 데리고 거리로 내려왔다. 쓰레기장에 굴러다니는 책상을 주워와 불단을 만들었다. 조계사 근처에서 3만원짜리 석굴암 부처님 액자를 사서 불단에 올렸다. 12곳의 은행에서 500만원씩 ‘분산대출’을 받았다. 지금은 중랑구 묵동으로 자리를 옮긴 법장사는 나름 어엿한 사찰이다. 종자돈들이 대학생이 되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으면서 신도는 불어났다. 어린이부터 노인들까지 3대가 한 자리에 모여 부처님을 섬기고 배운다. 포교에 관한 한, 스님은 누구보다 정직했고 성실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가 세밑 불교계를 우울하게 했다. 조사방식은 졸지에 1위 종교로 올라선 개신교마저 갸우뚱할 만큼 의뭉스럽다. 그렇다고 해도 300만 불자 감소는 너무 심각한 낙차다. 퇴휴스님의 평가는 냉철하다. “줄어들었다기보다는 허수가 빠진 것”이리라는 지적이다. “그 동안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사용해온 2000만 불자라는 수사(修辭)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통감하게 하는 수치입니다.”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스님은 우선 포교에 대한 ‘홀대’를 짚었다. “산중에 은둔하며 참선과 염불에만 전념하는 스님들이 참된 수행자라는 고정관념이 만연해 있어요.” 도시에 나와 열심히 포교하는 스님은 왠지 미덥지 못한 인상이다. “심지어 사기꾼 취급을 받기도 하는” 풍토다.

수행(修行)은 스님들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게 퇴휴스님의 지론이다. 일부일 뿐이다. “포교가 수행자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부처님 가르침을 왜 배웁니까? 극락에 가려고? 똑똑해지려고? 중생이 살고 있는 세상을 부처님의 세상으로 만들자는 것 아닙니까. 깨달음도 중요하고 수행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어선 곤란해요. 포교로 회향되지 않는 수행은 무가치합니다. 승가교육의 실패는 포교의 실패입니다. 수행은 불국정토를 위한 수단일 따름입니다. 포교가 수행입니다.”

종교인구조사에서 누군가가 불자로 집계되는 절차는 일견 간단하다. 스스로 불자라고 밝히면 된다. 불자들의 소극적이고 조용한 신행이 어느 때보다 아쉬운 상황이다. “절에 다니면서도 나는 불자라고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불자일까요? 불교가 얼마나 바르고 소중한 지혜이자 생활양식인지 주변 사람들에게 열심히 알리고 권유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불자로서의 정체성에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하려면 종단 집행부도 책임이 큽니다. 종단 조직개편이 도움이 될 겁니다. 교육원은 포교 잘 하는 스님을 대거 양성하고 총무원은 포교시스템을 떠받치는 행정지원조직으로 성격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종단의 모든 대외적 역량과 성과는 포교원에서 결집되고 회향되는 모습이 21세기 중앙종무기관의 방향입니다.”

세간의 ‘저출산’은 출세간의 교단에서도 걱정거리다. 아이들을 좀체 낳지 않으니 스님이 될 아이도 그만큼 줄어드는 추세다. 한국불교 최대종단인 조계종의 출가자 숫자는 2000년대 초만 해도 한해 400~500명 수준이었다. 이제는 200명을 채우기가 버겁다. ‘탈(脫)종교화’ 시대도 출가자 감소와 관련이 깊다.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종교가 없다’고 답한 비율이 최초로 절반을 넘어섰다. 25년 동안 도심포교에 몸담은 퇴휴스님의 경우 몸으로 느끼는 수치다.

“예전엔 절에서 경전반만 연다고 해도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한문교실 노래교실 풍물반 합창반도 인기가 좋았어요. 이제는 종교에서 제공하던 모든 서비스를 여러 산업들이 대체하고 있어요. 지적 문화적 수요를 사찰보다 훨씬 알차고 체계적으로 충족시켜주는 기관이 너무 많습니다. 장례를 준비하려면 상조회사를 찾아가고 마음이 힘들면 정신과 의사를 찾아갑니다. 다들 먹고살기 바빠서인지 교리에 대한 관심도 예전 같지 않아요.”

불교는 수행의 종교라지만 그렇다고 명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도 아니다. 스님은 “주5일제가 시행되는 순간 도심포교는 끝났다고 직감했다”고 한다. “그저 열심히만 뛰면 포교가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진단이다. 미래는 비관적이다. 그래도 내일의 영광은 오늘의 수고가 만드는 법이다. 퇴휴스님은 “교단의 중추이자 얼굴인 스님들이 다시 한 번 힘을 내야 할 때이고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일반인은 스님을 통해 불교의 가치를 견주게 마련이다. “스님들도 인간입니다. 원칙에 입각한 무소유는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도 스님들의 소유가 최소한 일반인들의 눈높이에는 맞아야지요. 외제차 타고 골프 치러 다니는 건 정말 아니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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