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규는 율장을 근간으로 제정

수방비니 정어 정법 승제 등

부처님 당시에도 제정 시행 

승가청규도 신뢰줄 수 있어 

한국불교, 중국불교, 일본불교 등의 동북아시아 불교권에서는 일찍부터 청규를 제정하여 활용하고 있다. 유독 이 지역에서 청규가 제정되게 된 배경에는 부처님께서 성불하고 교화하신 인도불교와는 기후조건과 문화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인도불교에서는 탁발로써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중국이나 한국불교에서는 이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적인 시각이 있었으며, 그밖에 기후조건과 토양 및 풍습이 인도와 다른 점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정된 청규는 중국 당(唐)시대에 백장선사로부터 시작됐다. 백장선사가 청규를 제정할 당시는 아직 총림이 만들어지기 이전이며 주로 참선수행을 하는 스님들이 율종(律宗)사찰에서 머물며 수행하고 있었는데, 서로 수행방법이 다름으로 인해 발생하는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불편을 해소하고 좀 더 선(禪)수행에 적합하도록 청규라는 제도를 통해 해결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각지에 총림이 만들어졌고 수행과 교화에 힘쓴 결과 회창법난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종사찰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중국불교를 대표하는 종파로 성장하여 지금도 그 위상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불교에서도 보조스님이 <계초심학인문>을 저술하여 후학들이 여법하게 수행자정신을 잃지 않으며 정진하도록 지도했고, 고려 말에는 <치문>이 도입되어 청규정신을 활용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불교가 크게 활기를 보이기도 했다. 근래에 와서도 선원을 중심으로 진행된 선원청규의 제정과 함께 종단의 쇄신위원회에서 청규제정위원회를 만들어 승가청규를 제정했고 현재는 포살본을 만들어 늘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 있다.

선원청규를 제정할 당시 몇 차례에 걸쳐 세미나를 열었는데, 이때 율장과 청규가 서로 관련이 없는 것으로 주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청규는 율장을 근간으로 제정되었고, 율장에서 금지한 바라제목차 가운데 소소계에 한해서 이미 부처님께서 허용하신 범위 내에서 제정했다고 볼 수 있다. 소소계가 아닌 중계(重戒)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언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 율장을 바탕으로 하지 않았거나 율장을 초월해서 만들어 진 것이 아님은 다음의 내용을 볼 때 분명해진다.

부처님 당시 청규와 같은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도록 했던 대표적인 사례가 수방비니(隨方毘尼), 정어(淨語), 정법(淨法), 승제(僧制) 등이다. 수방비니는 율장의 피혁건도에서 그 내용을 볼 수 있는데 지형이 험한 곳에서는 여러 겹의 가죽신을 신는 것을 허용하고 비구 스님이 많지 않은 곳에서는 5인의 화상으로도 수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가전연존자의 요청을 허락한 경우이다. 이러한 수방비니를 적용하여 90바일제 가운데 비구는 땅을 파지 못하게 했던 ‘굴지계’를 ‘보청법’으로 바꾸어 시행했고 보청에는 총림의 전 대중이 참여하게 했으며 일일부작일일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의 가풍도 이로 인해 이루어지게 되었다.

정어나 정법의 경우도 대계(大界)안에서는 음식물을 쌓아 두거나 조리할 수 없도록 큰 틀을 만들어 시행했는데 이로 인해 여러 가지 불편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대계 내에 정지나 정주라는 소계(小界)를 결계해서 식량을 쌓아두고 먹을 수 있도록 했으며 간단한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공간도 합법적으로 마련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인도불교에서는 매일 탁발로써 음식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정지와 정주의 필요성이 크지 않았지만 중국이나 한국불교에서는 탁발이 아닌 농사를 지어서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뿐만 아니라 농작물의 수확을 자주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청규는 부처님께서 허용하셨던 범위 내에서 기후와 토양과 풍습이 다름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여 그 환경에서 수행과 교화를 원만히 이루어 내게 하기 위해 활용된 좋은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제정된 선원청규나 승가청규가 이러한 원칙을 충분히 준수하여 제정되었기 때문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스스로는 자긍심을 갖고, 바라보는 모든 이에게는 감동과 신뢰를 줄 수 있는 모습을 만드는데 적극 활용되었으면 한다.

[불교신문3266호/2017년1월18일자] 

덕문스님 통도사 영축율학승가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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