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 평전

김택근 지음 모과나무

 

누더기 한 벌로 세상 가르친

성철스님의 삶과 사상을 통해

“삶이란 무엇인가” 가르침 전달

 

세속을 불교화 해야지

불교가 세속화되면 안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西로 가더라도

바른 길이 東이라면

동으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수행하는 사람들이 세속화되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려다

같이 익사하는 꼴이 됩니다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뱉으며, 푸른 산이 걸렸도다.” 열반송을 남기고 1993년 성철스님이 사바를 떠났다. 다비식에는 20만명의 인파가 운집해 큰 스승을 배웅했다. 김택근 작가는 “가난해서 행복했던, 그래서 거침이 없던 선승이 떠나갔다. 선승은 산문 밖으로 한걸음도 나가지 않았지만, 세상이 가야산속으로 들어왔다. 성철이 남긴 누더기 옷과 죽비를 보며 사람들은 비로소 우리 시대가 오염됐음을, 어른이 없음을 실감했다”고 표현한다.

성철스님. 1912년 경남 산청서 출생해 1936년 해인사에서 동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고 이듬해 범어사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을 역임하고, 1981년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됐으며, 1993년 11월 4일 세수 82세, 법랍 58년 원적에 들었다.

일제시대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격변의 시대를 극복하고, 한국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성철스님의 일대기가 평전으로 엮어 출간됐다. 김택근 선생이 집필하고 상좌인 원택스님의 감수를 걸쳤다. 김택근 선생은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현대문학>에 시로 등단했다. 경향신문 문화부장과 논설위원을 역임했으며, <김대중 자서전> 집필을 맡기도 했다.

평전은 성철스님의 유년기에서 시작해 치열했던 수행자 시절, 간월암과 복천암을 걸쳐 봉암사 결사를 하던 일화, 성전암서 10년간 동구불출하던 수행을 기록했다. 또 해인사에서 돈오돈수를 주장하며 한국 선사상을 일깨운 내용과 후학들을 지도한 내용 등이 생생하게 정리됐다.

“1981년 제6대 종정 취임식이 있었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았다. 종정이 없는 종정 취임식이 열렸다. 총무원장 성수스님이 주장자와 불자를 가지고 백련암으로 갔다. 백련암을 찾은 종단 간부들에게 종정 성철이 알렸다. ‘출가자에게는 출가의 본분이 있습니다. 자기 내부에 있는 진실한 자기를 만나야 합니다. 지금부터 싸우지 마시오. 싸움 하다가 타율적 정화를 당한 것이 아니오. 제발 온갖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시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종단이 짓밟힌 법난을 염두에 둔 성철스님의 가르침이었다. 종교와 정치에 대해 스님은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었다. 정치와 종교는 완전히 분리돼야 한다. 종교는 정치 이념의 산실인데, 만약 종교가 정치의 지배를 받게 된다면 이것은 국가의 큰 위협이 된다는 생각이었다.

“세속을 불교화 해야지, 불교가 세속화 되어서는 안됩니다. 승려는 세상이 아무리 서(西)로 가더라도 바른 길이 동(東)이라면 동으로 가도록 계속 빛을 발해야 합니다. 수행하는 사람들이 세속화되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려다 같이 익사하는 꼴이 되는 겁니다.”

수행자에 대한 엄격한 잣대와 달리 재가자에게는 한없는 자비보살이었다. 1981년 종정으로 내린 부처님오신날 법어는 그러한 스님의 마음을 담았다. 종단 역사상 처음 한글로 쓴 법문이었다.

“모든 생명을 부처님과 같이 존경합시다. 만법의 참 모습은 둥근 햇빛보다 더 밝고, 푸른 허공보다 더 깨끗하여 항상 때묻지 않습니다. 악하다 천하다 함은 겉보기 뿐, 그 참모습은 거룩한 부처님과 추호의 다름이 없어서, 일체가 장엄하며 일체가 숭고합니다. 그러므로 천하게 보이는 파리, 개미나 악하게 날뛰는 이리, 호랑이를 부처님과 같이 존경해야 하거늘 하물며 같은 무리인 사람들끼리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어 이듬해 부처님오신날에 내린 ‘자기를 바로 봅시다’라는 한글 법어는 불자를 뛰어넘어 많은 국민들에게 “불교가 이런 가르침이구나” 찬탄을 이끌어 냈다. 김택근 작가는 “조선 사람들에게는 조선의 글과 조선의 말이 있다고 주장한 용성스님은 한글 역경에 큰 업적을 남겼다. 그의 제자인 동산을 걸쳐 성철스님이 한글 법어를 내린 것은 불교의 대중화에 큰 업적이다”고 평가한다.

<성철 평전>은 수행자로서 성철스님의 면모에 중점을 두고 생애를 기록하고 있다. 또 스님의 중요한 사상과 법문도 정리했다. 1967년 해인사에서 100일 법문과 스님 스스로 “밥 값 했다”고 말한 <본지풍광> <선문정로> 편찬에 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무엇보다 깨달음을 구하는 수좌들에게 성철스님은 항상 문을 활짝 열어 뒀다.

“어느 가을, 한 노승이 성철을 찾아와 무릎을 꿇었다. ‘제가 깨달은 바가 있어 찾아왔습니다. 다들 스님을 찾아가 보라해서, 이렇게 세상의 끝에서 스님을 뵙습니다.’ 곧이어 법거량이 이어졌다. ‘동정일여한가’ 다그치는 성철스님의 말에 노스님은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런 노승을 성철이 주장자를 들어 내리쳤다. 성철은 다시 화두를 주었다. ‘이 늙은 놈아, 다시 공부하겠는가?’ ‘예, 스님.’ 노승은 화두를 받았다. 다시 선방에서 목숨을 내놓고 정진해야 했다. 노루꼬리만큼 남은 생에서 깨달음을 얻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노승이 걸망을 걸머졌다. 그리고 백련암 아래 가파른 길을 가만가만 밟았다. 가을 오후는 더없이 쓸쓸했다. 모두 그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성철이 버럭 소리쳤다. ‘뭣들 하는가! 정진하지 않고.’”

그 매서운 목소리와 달리 재가불자들에게 스님은 당부하고 당부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 남 모르게 남을 도웁시다”라고.

<성철 평전>은 성철스님의 일대기이면서, 한편으로 큰 스승의 삶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불교신문3266호/2017년1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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