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에 올라 세상을 굽어보니

임연태 지음/ 인북스

“이곳이 곧 화엄의 세상”

부석사 안양루, 신륵사 강월헌…

문사들이 교류하며 풍류하던

전국 22곳 정자 찾아

그들의 시 떠올리며

자연과 함께 하던 마음을 읽다

여주 신륵사 앞 남한강에 배가 유유히 지나간다. 나옹화상이 세상을 내려다보던 바위에는 강월헌이 남아 무심히 강물을 본다. 임연태 시인은 유서깊은 전국의 정자를 찾아 그 안의 문학을 세상으로 끄집어낸다.

“밝고 밝게 멈춘 듯 고요한 천 길의 물속/ 담백하고 경쾌하게 한 점 구름 드리웠네/ 내 무심한 속에 일마다 편안하노니/ 밝음 속 만상이 절로 털끝처럼 갈린다오.”

조선 중기 묵중화가 이정 선생이 고불총림 백양사 쌍계루에 올라 읊은 시다. 가을이면 쌍계루 앞 단풍나무가 연못을 붉게 물들인다. 쌍계루에서 그 경치에 취한 문사들은 저마다의 글로 찬사를 쏟아냈다. 목은 이색은 “두 물이 합류하는 곳에다 터를 정하고 누각을 세웠는데, 왼쪽 시냇물 위에 걸터앉아서 오른쪽 시냇물을 굽어보고 있노라면, 누각의 그림자와 물빛이 위아래에서 서로 비춰주는 등 실로 보기드문 승경을 이룬다”고 감상을 적는다.

불교계 언론사에서 활동해온 임연태 시인이 전국의 정자를 찾았다. 경치가 뛰어난 곳에 지어진, 유서 깊은 정자에서 임 시인은 선조들의 시를 떠올리고, 자연과 함께 하려했던 마음을 읽는다.

저자가 찾은 정자는 울진 망양정을 시작으로 삼척 죽서루, 강릉 경포대, 청풍 한벽루, 문경 석문구곡, 안동 영호루, 신륵사 강월헌, 부석사 안양루, 태인 피향정, 남원 광한루 등 22곳 명소들이다. 그 곳에서 임연태 시인은 현판과 문헌에 나오는 누정시 210여 편을 소개하며 “화엄의 세상을 보며,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길”을 생각한다.

저자가 정자를 찾은 이유는 좋은 풍광에 지어진 정자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그 안에 문사들의 자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선비들은 정자에서 만나 서로의 사상과 풍류를 주고받으며 소통했고, 그들이 남긴 문장과 시문은 ‘누정문학’이란 문학 장르를 양산했다.

“절 문 앞 노송은 쓸쓸한 느낌이요/ 동쪽 대 위 쌍탑은 드높이 솟았구나/ 나옹 비석 새긴 글은 목옹의 솜씨이고/ 후대에 쓴 읍취헌 시 또 한 절창이라/ 청풍이며 은행나무 예나 지금 그대론데/ 이름 모를 새가 울고 물고기 뛰어노네…”(김창협의 ‘벽사(沅寺)’ 중)

<농암집>에 실린 이 시는 김창협(1651~1708)이 지은 것으로 서울에서 배를 타고 신륵사에 도착한 저자가 나옹스님과 목은의 자취를 찾아보며 박은의 시를 찬탄한 내용으로 20수로 이뤄져 있다. 신륵사 절벽 위에 지은 정자, 강월헌에서 그는 옛 자취와 더불어 현실에서 자신의 무상함을 같이 시에 담았다. 임연태 시인은 신륵사 강월헌을 “바위에는 흰 물결, 탑에는 푸른 이끼”라고 표현한다. “강월헌은 남한강을 굽어보는 최적의 전망대다. 지금의 강월헌은 1974년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것이다. 기존 정자가 홍수로 쓸려가 버려서 급하게 다시 지은 것이라 한다. 난간을 두르고 마루를 깔았지만, 시멘트 정자의 질감은 투박하고 멋없다”고 설명하며 “그러나 강월헌에 오르면 정자 안쪽에 눈길을 줄 시간이 없다. 조망되는 풍경이 오랫동안 눈길을 빼앗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왜 나옹스님의 제자들은 나옹스님의 화장터였던 곳에 정자를 지은 것일까?” 그 해답을 목은 이색의 글에서 찾는다. “강월헌은 보제(나옹스님)가 거처하던 곳으로 보제의 몸은 이미 불에 타서 없어졌으나, 강과 달은 전일과 같다. 신륵사는 장강(長江)에 임하였는데, 석종이 버티고 있어 달이 뜨면 그림자가 강에 기울어져서 하늘빛, 물빛, 등불 그림자, 향 피우는 연기가 섞이어 모여드니, 강월헌은 비록 몇 천 년을 지나더라도 보제가 생존했을 때와 같을 것이다.”(이색의 ‘동선문’ 제73권 중)

이 글을 인용하면서 임 시인은 공감을 표한다. “강월헌과 나옹스님이 둘이 아니므로, 나옹스님을 다비한 그 자리에 스님은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라고. 

“우리 산하에는 절경을 절경이게 하고, 역사 속의 역사를 촘촘히 간직한 정자와 누각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 하지만 누정문학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빈약하다. 나는 다시 떠날 궁리를 하고 있다. 세상의 관심을 넓히기 위해….”

저자 임연태 시인은 경북 영주 출신으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을 마쳤다. 2004년 월간 <유심>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청동물고기>, 기행집으로 <절집 기행> <히말라야 행선 트레킹> 등이 있다.

[불교신문3264호/2017년1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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