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마지막 희생자 지현 양 엄마

매주 흥부네서 아침공양 봉사 펼쳐

1월9일이면 참사 발생 1000일째

건강악화에도 진실 규명 앞장서

 

세월호 마지막 희생자 황지현 양의 어머니 신명섭 씨가 지난 12월14일 시흥 흥부네책놀이터에서 자원봉사자로서 아이들을 위한 아침공양을 만들었다.

2014년 4월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오는 9일이면 1000일을 맞이한다.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당시 7시간 행적과 침몰 원인 등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세월호 문제도 사회적 이슈로 부각했다. 현재까지 세월호 마지막 희생자인 고(故) 황지현 양의 어머니 신명섭(법명 진명심)씨는 세월호 진실 규명을 위한 바쁜 행보속에서도 매주 수요일마다 아이들을 위한 아침공양 자원봉사를 통해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조금씩 극복해 나가고 있다.

지난 12월14일 이른 시간인 오전7시께 시흥 시화초등학교 옆 ‘흥부네 책놀이터’에는 불이 켜졌다. 안산에서 함께 차를 타고 온 자원봉사자인 신명섭, 법은행 보살은 앞치마를 두른 뒤 곧바로 20인분의 떡국을 준비하느라 손놀림이 바빴다. 사골 육수는 법은행 보살이, 후식인 식혜는 신명섭 보살이 각각 집에서 만든 뒤 내놓았다. 이들은 달걀로 지단을 부치고 김장김치도 썰어서 정갈하게 담아냈다. 특히 이들은 만두는 먹지 않는 아이의 이름을 욀 정도로 아이들의 입맛과 기호를 꿰뚫고 있어 만두는 별도로 삶는 세심함도 잊지 않았다.

7시25분이 되자 흥부네 책놀이터를 운영하고 있는 원돈스님(시흥 대각사 주지)도 우유 2통과 딸기, 키위를 안고선 나타난 뒤 아침공양 준비를 거들었다. 7시50분께 “아이들이 올 때가 됐는데”라는 스님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안녕하세요”라는 반가운 인사말과 함께 아이들이 하나 둘 책놀이터를 찾았다. 아이들은 정성이 가득담긴 아침공양을 마친 뒤 “잘 먹었습니다”라는 감사인사를 건넨 뒤 곧바로 등교하거나 책놀이터에서 남아 책을 더 읽기도 했다.

이날 자원봉사자로 나선 신명섭 씨는 현재까지 세월호 참사 마지막 희생자인 황지현(안산 단원고 2학년 3반)양의 어머니다. 황지현 양은 참사 발생 197일만인 2014년 10월29일 오후 295번째 희생자로 시신이 수습됐다. 진도 팽목항에서 주인공 없는 생일상을 차렸던 황 양의 부모는 자신의 생일날 가족 품으로 뒤늦게 돌아온 지현 양의 영가를 시흥 대각사에 안치하고 49재도 지냈다.

신 씨는 200일 남짓 진도 팽목항 인근 체육관에 머물면서 결혼 7년만에 어렵게 얻은 늦둥이 외동딸을 잃은 크나 큰 정신적 충격에다가 양 무릎 연골이 찢어지고 당뇨, 고혈압도 생기는 등 자신의 건강마저도 최악의 상황에 맞닿았다. 당뇨와 고혈압은 몇 달 뒤 치유됐지만 무릎 연골은 진통주사와 약으로 힘겹게 아픔을 치유하고 있다.

심신의 건강이 좋지 않은데다가 매주 수요일마다 이동시간만 1시간30분씩 걸리는 흥부네 책놀이터 아침공양 자원봉사에 나오는 이유는 단순했다.

진도 팽목항까지 찾아와 희생자의 극락왕생과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던 원돈스님을 비롯한 수많은 세월호 참사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에 조금이나 보답하기 위해서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우리 가족 모두 열심히 살았고 이대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로 인해 산산조각 났다.

시신 수습 후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린 신 씨는 2015년 10월부터 매주 수요일 아침마다 책놀이터를 찾아 아침공양을 제공하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해서 식혜(1.5L 3통)와 김 볶음 반찬도 자원봉사 전날 직접 만들어오고 있다. “진도에 머물다보니 정말 고마운 분들이 많더군요. 그 분들 덕분에 ‘이 세상이 돌아가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특히 매일 아침마다 공양을 해주고 아이들을 돌보는 원돈스님을 지켜보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한 게 벌써 1년이 훌쩍 넘어섰네요.”

신 씨는 자신이 긍정적인 성격이라 아프지만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미로서 어떻게 딸을 먼저 보내고 잘 살 수 있겠냐’ ‘남편이 1년 남짓 실직상태이지만 이제 돈을 더 벌어서 뭐 하겠냐’ ‘아직도 친구 같았던 지현이가 옆에 있는 것 같다’ ‘절에 다녀도 상처가 다 없어지진 않더라’고 말할 만큼 크나큰 아픔을 씻어 내기에는 이른 상황이다.

참사 발생 1000일을 앞두고 있지만 적지 않은 유가족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고 여전히 시신마저 수습 못한 9명의 실종자 가족들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선체 인양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신 씨는 자신 또한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기 위해 서울 광화문광장 분향소를 정기적으로 찾고 촛불집회에도 빠지지 않고 참가하고 있다. 지현 양이 친구들과 함께 안치돼 있는 평택 서호추모공원도 1, 2주마다 찾고 있다.

신 씨는 아직은 마음의 위안을 되찾지 못해 책놀이터 아이들이 예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공양중인 아이들에게 말 없이 다가가 고기를 덜어주고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오늘도 공부 열심히 해”라고 건네는 인사말에서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묻어 나왔다. 대각사 주지 원돈스님은 “자신의 전부와도 같았던 외동딸을 잃은 슬픔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도 “자원봉사를 통해 조금이나마 위안을 찾아갈 수 있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불교신문3263호/2017년1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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