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기만 할 뿐 고마운 줄 모르고…”

“안녕하세요. 요즘 들어 제가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요. 나아가서는 사람들이 저를 너무 막 대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직장에서나, 친구 관계에서나, 전반적인 인간관계에서 그렇게 느껴집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늘 친절하고 예의바르게 대하려고 하고요. 또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많이 채워주려고 합니다. 외로워 보이는 친구에게는 먼저 술도 사주면서 다가가고, 일적인 부분에서도 부족한 이들에게 도움을 많이 주려고 하고요. 사람들 힘들어하는 얘기도 적극적으로 잘 들어주며 상담도 해주고, 맛있는 것도 자주 사와서 직장동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는 등, 사람들을 위해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 삶에서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연봉도 괜찮고 나이에 비해 좋은 자리에 있거든요. 그러한 포지션에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도 제 주위의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을 해주기 위한 동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건데요. 요즘 들어 다 회의가 듭니다. 사람들은 저한테 받기만 할 뿐 고마운 줄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제가 뭘 받으려고 도와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인지상정이라고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어야 할 텐데, 자기들 필요할 때만 저를 찾을 뿐 진짜 제 곁에 있는 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자기들을 위해 사는데 왜 저를 이렇게 홀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삽화=용정운.

안녕하세요. 질문자님은 사람들을 위해 많은 것들을 해주시는데, 오히려 사람들은 질문자님을 소외시키는 것 같아 불만스럽게 느끼시는군요. 사람들이 무례하고 막 대하는 것처럼 느껴지시니 화도 나실 것 같고요. 

그렇다면 질문자님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대해지기는 원치 않으신다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질문자님의 말씀에 따르면 적어도 질문자님이 사람들에게 대해지기를 원하는 모습은, 막 대해지지 않고 소중하게 대해지는 사람, 사람들에게 고맙게 대해지는 사람, 필요할 때만 옆을 찾는 것이 아니라 늘 옆을 찾게 되는 사람, 소외되지 않고 함께 있고 싶은 사람 등으로 보입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질문자님이 사람들로부터 받고 싶으신 것입니다. 질문자님은 사람들로부터 받고자 하는 의도가 없으신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것을 정확하게 받기 위해 사람들에게 주고 계신 것입니다. 때문에 현재 원하던 그것을 받지 못하니 삶이 불만족스러워지고, 사람들에게 실망도 하게 되시는 것이죠.

우리가 무엇을 받고 싶다는 것은 즉 우리가 목이 마르다는 것입니다. 물의 필요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목이 마른 자는 물을 가진 자에 대해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정직한 원칙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자주 이 원칙을 호도하곤 합니다. 물이 필요한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우리 자신이면서 갑의 입장에서 물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의도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타인을 조작하고, 통제하며, 조종하려 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돈이 필요해 보이는 것 같은 타인에게 다가가 우리가 돈을 줄 수 있으니 그 대신 타인이 우리 자신을 중요한 존재로 대해줄 것을 종용하는 식이죠.

여기에는 타인을 우리의 뜻대로 다루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뿌리깊은 착각이 담겨 있습니다. 공부나 재산의 축적과 같은 개인의 노력으로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신념처럼, 타인의 마음 또한 개인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입니다. 이 착각은 타인의 존귀함을 살짝 망각하게 하고, 오히려 타인이 우리를 위한 도구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우리가 함부로 쓰고 있는 망치나 톱 같은 도구가 만약 인격을 갖게 된다면, 우리에게 과연 고마움을 느낄까요? 오히려 우리와 멀어지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우리가 타인을 도구로 삼을 때 소외는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입니다.

지금 이러한 얘기들이 가슴 아프게 들리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질문자님은 소외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눈치채신 것입니다. 가슴아픈 소외는 질문자님에게 질문자님의 진짜 소망을 알려줍니다. 질문자님의 진짜 소망은 사람들과 정직하게 연결되고, 그 관계 속에서 친밀감을 느끼며,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을 본인의 필요를 채워줄 도구로 쓰거나, 그러기 위해 본인 자신을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줄 도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정직한 을의 입장에서 그 필요를 고백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질문자님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질문자님이 사람들을 필요로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백하는 자는 자기 자신의 중요성을 드러내기보다는 고백되는 타인의 중요성을 드러냅니다. 이것이 고백하는 을의 아름다움입니다. 참 아름다워서 누구나 항상 곁에 두고 보고픈 그러한 아름다움입니다. 그렇게 원하시던 바처럼 항상 사람들의 곁에 아름답게 계실 수 있는 질문자님이십니다.

[불교신문3256호/2016년12월10일자]

임인구 실존상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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