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스님] 서울 성림사 주지 광용스님

서울 성림사 주지 광용스님.

“괴로운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괴로운 나로부터 탈출이 우선”

 마음 아픈 이들 위해 

‘자살예방센터’ 운영

“관대한 태도는 결국 

 나를 위한 덕목입니다

 재주 많으면 더 고생…

 일을 잘 하는 사람이

 더 많이 하는 게 이치
        
 더 많이 가진 자가

 더 많이 베푼다는

 마음으로 사세요

 그래야 속 편합니다”


 어느 정신과 의사가 저술한 <자존감 수업>이란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내용을 떠나서 일단 제목부터 무척 마음에 든다는 게 다수 독자들의 평가. 이는 그만큼 자존감 결핍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성림사에서 자살예방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광용(廣鎔)스님은 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 소지자다. 자애로운 엄마의 풍모가 인상적이다. 스님의 견해에 따르면 자존감 또는 자아존중감이란 ‘주체성과 관계성의 원만한 조화’라고 정리할 수 있다. 부처님이 말한 중도(中道)는 심리학적 범주에서도 적용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스스로 가진 재능을 한껏 발산하는 동시에 그 재능을 타인을 위해 기꺼이 보시하면서 얻어지는 긍정적 감정이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아도 될 만한 ‘존재’라는 확신이라 불러도 좋다. 반면 자존감이 없다는 건 ‘존재감’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유일하게 가치와 명분을 구하는 동물이다. 그게 문명을 만들고 전쟁을 만든다. 살아야 할 의미가 없다고 자살을 하는 행태도 이와 맥락이 닿는다. ‘나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은 ‘제 손으로 목숨을 끝내겠다’는 생각의 초입이다. 주체성이 무너져도 문제지만 관계성이 무너져도 문제다.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죽을 맛이다. 
 2005년 이후 대한민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매년 유지하고 있다. 청소년 자살률도 1위이며, 20대 사망 원인 가운데 절반이 자살이다. 가난해서 외로워서 늙고 병들어서 왕따를 당해서, 해마다 1만4000여 명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넌다. 혹자들은 ‘자살할 용기로 더 열심히 살아야지’라며 가뜩이나 절통한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한편으론 죽을 목숨을 살려내는 일이니, 자살예방은 가장 직접적이고 위대한 보살행이다. 성림사 자살예방센터는 일종의 ‘자비의 전화’다. 광용스님은 수화기 너머의 서글프고 다급한 목소리를 다독이면서 친절히 상담해주고 조언해준다. “전화는 자주 걸려오느냐”고 물었다. “전화할 힘만 있어도 그나마 다행입니다. 마음의 병이 정말 심각한 사람들은 전화할 의욕마저 잃어버린 상태죠.” 오죽하면 죽었겠느냐고 말해야 옳다.  

 광용스님은 중증의 우울증 환자를 숱하게 접했다. “30대 초반의 정치부 기자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종교적 신념과 더불어 ‘나는 정직하고 성실하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남자였다. 그러나 그야말로 세속성의 끝을 보여주는 정치판에 밤낮없이 몸담으면서, 신념은 매일같이 배반당했고 정직과 성실은 미련과 무능으로 매도됐다. 관계성이 깨지면서 주체성이 무너진 격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함께 하기 싫은 사람들과 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느냐는 막막함은, 사람을 끝내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게 마련이다.

 스님은 거의 초죽음이 된 그에게 권투를 권유했다. 우선 부정적 감정의 과잉을 빨리 털어버려야 했던 까닭이다. 100일 동안의 108배기도 역시 충실히 이행했다. 스님은 이와 같은 동적인 치료법뿐만 아니라 정적인 방법도 사용했다. 단 10분이라도 시간이 날 때마다 이른바 ‘멍 때리는’ 것이다. 생각을 없애는 연습을 반복하다보면 나쁜 생각도 조금씩 소멸된다. “나쁜 생각에 가속도가 붙으면 거기에 몰입하게 되고 기어이 갇히게 됩니다. 상활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거죠. 결국 ‘나의 생각‘이 곧 ’나‘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치유의 시작입니다.” 

 너무 순수하고 착해도 탈이다. 태생이 더럽고 치사한 사바세계에 좀처럼 적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들은 자의식이 강한 성격인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쪽으로 발현되면 엄청난 실력과 창의성으로 나타나지만, 나쁜 쪽으로 발현되면 세상과의 갈등과 불화에 빠집니다. ‘이렇게 훌륭한 나를 왜 인정해주지 않나’라는 억울함과 ‘왜 저러고들 사나’라는 멸시감이 축적되면서 점점 세상과 멀어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재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문제는 이런 ‘나’는 혼자이고 저런 ‘남’은 부지기수라는 점이다. 압도적인 쪽수 차이로 인해 절대 이길 수가 없다. 

 광용스님의 통찰은 이 대목에서 빛을 발했다. “생각이나 몸뚱이가 아니라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나로 여기라”는 주문이다. ‘지금 이 순간이 곧 나’라는 자각이 문제를 푸는 열쇠라는 격려. “나를 사랑하듯 나의 현실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남들이 나를 오해하거나 비난한다고 해서 원통해하고 좌절하기만 한다면, 이는 자기를 자기가 해치는 꼴입니다. 무엇보다 ‘괴로운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괴로운 나’로부터 탈출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나를 대상화해서, 멀찍이 떨어져서 나를 바라시기 바랍니다. 내가 모르고 저지른 잘못과 오판이 보일 테고, 궁극적으로는 이 메마르고 각박한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현명한 해법이 떠오를 것입니다.” 

 아픔을 가장 잘 이해하는 자는 의사일 것이다. 하지만 공감은 아팠던 자만의 몫 아닐까. 자식 많은 집의 딸로 태어난 스님은 아래로 동생 셋이 어려서 죽었다. 시체를 거적에 둘둘 말아서 묻어주러 가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가혹한 인생무상은 스물을 갓 넘긴 처녀를 출가로 인도했다. 당신 또한 서른 살 무렵에 시련을 맞았다. 새벽예불을 하는데 이유 없이 자꾸 눈물이 나고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됐다. 출가자의 삶은 신선의 삶인 줄로만 알았는데,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방황하던 와중, 법당에 모신 불상의 눈과 우연히 마주쳤다. “마치 ‘네 마음 다 알아’라고 위로해주는 눈빛이었어요. 오랜 고민거리가 눈 녹듯 사라지는 신비한 체험을 했습니다. ‘괜히 성상(聖像)이라고 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지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단다. 마음도 변한다. ‘마흔앓이’가 유행이다. 종국 선종의 제2조 혜가가 눈보라를 뚫고 달마에게 달려가 마음의 병을 씻어달라고 호소한 것도 마흔 살 때였다. “30대든 40대든 50대든 누구에게나 고비가 찾아옵니다. 왜 사나 싶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지요. 하지만 40대가 되어 30대를 50대가 되어 40대를 60대가 되어 50대를 되돌아보면 왜 내가 그때 그토록 힘들어했나, 웃으면서 우스워하게 됩니다.” 세월을 이기는 고통은 없다. 그러므로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경책. 

 마음이 아파서 병원을 찾는 이들이 연간 60만 명에 이른다는 전언이다. 남을 물어뜯어야만 내가 덜 물어 뜯긴다는 가치관으로 중무장한 현대인들이다. 공생(共生)은 허울이다. 모두가 모두에게 가해자 아니면 피해자다. 이승이 냉혹할수록 내가 자비로워야만 한다는 게 스님의 지론이다. 증오의 불길은 나만 태운다. “관대한 태도는 남을 위한 것 같지만 결국 나를 위한 덕목입니다. 재주가 많으면 더 고생하는 법입니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이 일을 더 많이 하는 게 이치이지요. 더 많이 가진 자가 더 많이 베푼다는 마음으로 사세요. 그래야 속 편합니다.” 그래야 또는 그나마. 

지난 11월28일 성림사에서 만난 광용스님. 지적이면서도 자애로운 어머니의 풍모가 인상적이었다. 

■ 광용스님은…

 지원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73년 소림사에서 대은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1979년 해인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봉녕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동국대 불교학과 및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불교상담개발원 이사를 지냈으며 현재 성림사 자살예방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불교신문3256호/2016년12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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