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복하다, 박복하다’ 하니…

전생에 선업을 짓지 못했다는 뜻이니

사성제 법문으로 선업을 짓게 하시네

지혜가 으뜸가는 사리불 존자에게는 제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라빈주(羅頻周). 라빈주 스님은 계를 지키는데 누구보다 열심이었고 언제나 정진하였습니다. 하지만 마을로 탁발을 나갔는데 밥을 얻지 못했습니다. 엿새째가 되도록 밥 한 숟가락도 얻지 못하고 빈 발우로 절에 돌아왔는데, 그러다 이레째에 이르러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도반 스님들이 걸식해서 가지고 온 음식을 주었지만 그때마다 느닷없이 새가 날아와서 그 음식을 낚아채갔습니다. 그러자 사리불 존자가 목건련 존자에게 말했습니다.

“그대가 커다란 신통력으로 이 음식을 잘 지켜서 저 스님이 먹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목건련 존자의 신통력은 어느 누구도 방해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신통제일이라 부처님께서도 찬탄하셨으니까요. 목건련 존자는 음식을 가지고 쓰러져 있는 라빈주 스님 앞으로 무사히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음식을 막 라빈주 스님 입에 넣어주려 할 때 눈을 의심할 정도로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음식이 진흙덩어리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사리불 존자도 탁발한 음식을 제자인 라빈주 스님에게 먹이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일까요? 굶주린 스님이 그 음식을 받아먹으려고 입을 벌리는 순간 입이 저절로 봉해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부처님이 나서셨습니다. 부처님이 음식을 그의 입에 넣어주시자 놀랍게도 라빈주 스님은 무사히 음식을 받아먹을 수 있었습니다. 라빈주스님이 아니라 부처님의 복덕이 한량없는 덕분이었습니다. 스님은 음식을 먹고 나서 마음에 기쁨이 샘솟았고 부처님을 향한 믿음과 존경심이 더욱 커졌지요. 그런 라빈주 스님을 향해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괴로움을 벗어날 수 없다.”

 

이렇게 괴로움을 통렬하게 인식하는 것(苦聖諦)에서 시작하는 사성제를 들려주시자 그 자리에서 라빈주스님은 번뇌를 모두 벗어버리고 그 마음이 잘 풀려서 아라한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잡비유경>에도 실려 있는데 ‘라빈주’가 아니라 ‘라운주(羅云珠)’로 등장합니다. <잡비유경>에서는 이 비구가 음식을 얻지 못한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벽지불의 음식을 빼앗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악업에 대한 죄로 아귀의 세계에 태어났고, 오랜 세월을 괴롭게 윤회해왔습니다. 이후 아귀의 몸을 버리고 인간 세상에 태어났지만 역시 오백 세를 굶주림의 과보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부처님이 나신 세상을 만났고 바로 이때가 ‘라운주’ 스님이 마지막 윤회의 삶을 살던 때였다고 합니다.

 

내용도 거의 비슷합니다. 목련 존자가 라운주 스님을 가엾게 여겨 음식을 발우에 넣어주었는데 큰 새가 채어가 버렸고, 사리불 존자가 걸식한 음식을 주자 역시 발우에 담기기 무섭게 흙덩이로 변해버렸고, 대가섭 존자가 걸식한 음식을 주자 그가 입에 넣으려는 순간 입이 봉해버려 음식 넣을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때 부처님께서 음식을 베푸셨는데 부처님의 대비력으로 인해 그 즉시 입이 열려 음식을 먹을 수 있었는데 그 맛이 아주 좋았다고 합니다.

<대지도론> 제30권에서 라빈주 스님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모든 불보살님들은 중생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주고 있지만, 받는 쪽이 공덕을 짓지 못했기 때문에 그걸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박복하다, 박복하다’라고들 말하는데, 이 말은 전생에 선업을 짓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부처님과 보살마하살은 중생의 소망을 다 들어주려는데 이쪽이 받을 그릇이 되지 못하니, 누굴 탓하겠습니까.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선업을 짓고 복을 쌓아야하겠습니다.

[불교신문3255/2016년12월7일자]

이미령 전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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