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

김송호 지음/ 물병자리

삶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맺어가는 너와의 관계…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은 신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우열이 있을 수 없다

종교와 과학이 인류에게

제시해야 할 점은 

인류와 생명의 조화와 행복 

“불교에서 말하는 궁극의 실재는 신이나 브라흐만이 아니라 열반이라는 정신상태다. 서양의 기독교가 일상생활과는 별개의 개념으로 종교와 신을 취급하는데 비해, 동양에서 종교는 인간사를 다루는 철학이나 일상에 녹아있는 생활양식이다. 즉 신에 대한 숭배보다 일체로서의 조화를 이루며, 동시에 사람들의 성공적인 삶을 돕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의 저자 김송호 씨는 서울대와 카이스트 석사, 미국 퍼듀대 공학박사를 받은 공학도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적극적인 신앙활동을 했다. 하지만 “마음의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불교와 유교, 이슬람 등 다양한 종교를 접하면서 무릎을 쳤다. “서양에서 말하는 종교와 동양의 종교가 개념이라는 출발점부터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과학자이면서 종교철학에 관심을 가져온 김송호 씨는 ‘종교는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결론을 낸다. 그리고 “종교는 지금 대립이 아니라,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에 치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미얀마의 불상.

저자는 여전히 가톨릭 신자지만 “신을 포기하면 신앙의 기반이 흔들리기 때문에 억지를 써서라도 그 주장을 반박하려고”하는 논쟁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내가 증명하고 싶은 신은 기독교의 인격적인 신이기도 하고, 힌두교의 브라흐만이 될 수도 있고, 불교 도교에서 말하는 열반이나 도와 같을 수도 있다. 신이 없다는 무신론자들의 주장도 포용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과학적인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그리고 진화론의 입장에서 본 종교, 기도의 참다운 의미, 죽음이란 무엇이며, 지옥이나 천당의 뜻은 무엇인지, 인공지능 알파고가 가져온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기독교인들은) 불교는 합리적인 과학과 상당히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양자물리학은 오히려 불교가 상당히 과학적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반야심경> 구절이다. ‘형체가 있는 것도 실체가 없는 것과 같으며, 실체가 없는 것도 형체가 있는 것이다’라는 의미다. 이 구절의 범어 원문은 ‘이 세상에 있어 물질적 현상에는 실체가 없는 것이며, 실체가 없기 때문에 바로 물질적 현상이 있게 되는 것이다. 실체가 없더라고 그것은 물질적 현상을 떠나 있지는 않다’고 말한다. 양자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도 사실은 에너지 덩어리일 뿐, 우리가 생각하는 물질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에 대해서도 저자는 일침을 가한다. 창조론으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이 존재한다는 주장에 얽매이지 말라는 주장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생물학의 부분은 심층생태학이 주장하듯 “삶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맺어가는 너와의 관계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은 신이며,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열이 있을 수 없다.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한 성당의 그림.

이런 주장을 통해 저자가 도달하는 결론은 “과학의 시대에 종교가 필요한가?”라는 점이다. 종교의 필요성을 저자는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서 찾는다. 일례로 극심한 스트레스의 결과로 분출되는 묻지마 범죄의 해결법을 종교가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에 사회적 스트레스를 완화해주던 종교의 역할이 줄어든 것이 묻지마 범죄 증가의 한 요인이다. 과학의 발달로 종교의 비합리적인 면이 부각되면서 종교를 불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종교를 현대인의 사고에 맞게 과학적으로 재조명해야 사회적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종교 본연의 임무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류, 특히 서양에서는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는 논쟁을 지루하게 이어왔다. 더불어 과학의 발달은 서구 종교학자들의 논쟁에 ‘유리한 근거’로 인용되면서 왜곡현상도 발생했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대립이 필요하지도, 중요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종교와 과학이 인류에게 제시해야 할 점은 “내가 옳다”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인류와 생명의 조화와 행복” 등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기 때문이다.

[불교신문3253호/2016년11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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