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 넘어도 목탁잡고 칠정례, 새벽 3시 축원·정근 이어지고…

1926년 병인생 ‘조계산호랑이’
올해도 어김없이 동안거 결제
​​​​​​​날마다 새벽3시 목탁집전 예불

예불을 마친 활안스님이 법당 뒤 고고하게 서있는 수령 800년 쌍향수 앞에서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새벽 1시20분, 어김없이 승보종찰 송광사의 산내암자인 천자암이 깨어난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도량석 목탁 소리가 울리기 때문이다. 동안거를 하루 앞둔 지난 13일 새벽도 그랬다. 범종이 울리고 어둠속에서 법당을 향해 호랑이 한 마리가 성큼성큼 들어서더니 목탁을 잡는다. 천자암 조실 활안(活眼)스님이다. 1926년 병인생으로 올해 세수 91세다. 호랑이띠에 태어나서인지 상호가 호랑이 상이다. 

호랑이 스님. 그렇다. 무섭다. 게으르거나 잘못된 공부를 하는 수행자에게는 마른하늘에 벼락 치듯 한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스님을 찾는다. 누구라도 천자암에 오면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다. 공부가 얼마나 됐는지 점검해보는 문답형 시험이다. 처음 스님을 만나면 주눅이 들고 만다. 눈에서 광채가 일고, 입은 일자로 굳게 닫혀 있는 모습이 어김없는 호랑이다.

스님이 먼저 묻는다. “몇 걸음에 왔는가?” “….” “그것도 모르니 귀신이네. 뒤처리하는 데는 등신이고.” 그러면서 박장대소를 한다. 영락없이 인자한 옆집 할아버지다. 어찌 보면 호랑이가 토끼를 데리고 장난을 치는 듯하다. 그런데 알 듯 모를 듯한 스님과의 문답에는 뭔가가 있다. 

분명히 눈밝은 선지식의 가르침이건만, 그것을 모르겠다. 이 의문이 화두가 되는 순간 등골에서 소름이 밀려온다. 이것이 공부구나. 이때 다시 스님은 여지없이 호랑이가 되고 만다. 이렇게 50년 가까이 조계산을 지키고 있어 활안스님은 조계산 호랑이로 불리고 있다.

새벽 3시, 예불이 시작됐다. 대중이라고 해야 큰 스님과 상좌들 셋. 마침 동안거 결제에 앞서 서울과 전주에서 신도 몇몇이 함께 했다. 목탁을 든 활안스님이 법당 중앙에 자리잡고 예불이 시작됐다. 칠정례에 이어 독경이 시작되고 천수다라니를 수없이 반복한다. 끊임없이 축원과 정근이 계속되고, 여전히 활안스님은 목탁과 요령을 바꿔든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탁소리만 들으면 기도를 패기있는 젊은 스님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듯하다.
 

활안스님의 손을 떠나지 않는 목탁은 다 닳았어도 여전히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낸다.  

몇 달 전, 상좌 도문스님이 천자암에 올라왔다. 그도 처음에는 은사 스님이 호랑이라는 것을 모르고 출가했다. 한치도 흐트러짐 없는 스님을 따라 정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새벽 1시부터 일어나야하는 것이 초짜 스님에게는 힘들었다. 어디 그뿐이랴, 무슨 운력은 그리도 많은지… 한시도 쉴 틈이 없었다. 계를 받고 일찍 은사품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중국, 미국 등지에서 정진하다 귀국한 것이다.

“밖에 나가보니 은사 스님의 수행이 수승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행자에게 조석예불은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듯 생활이어야 합니다. 새벽에 하는 염불은 하늘을 향한 외침이면서 내부의 부처님을 만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은사 스님이 그리워졌습니다.” 그토록 힘들었던 새벽 1시 기상이 공부라 생각하니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 됐다. 일주일에 하루라도 조석예불을 집전하겠다고 청했다. 무엇보다 새벽 어둠에 노스님이 발이라도 헛디딜까 염려스러웠다. 

한 달 전, 도량석 목탁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예불집전은 어림없었다. 그래도 감격스러웠다. 노스님이 평생을 놓지 않았던 도량석 목탁이지 않던가. 도문스님은 은사 스님이 했던 새벽 1시20분 올림목탁 소리를 천자암의 가풍으로 삼아 끊이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한다.

가을을 맞은 조계산 새벽기운이 차갑다. 그러나 법당안의 기도 열기는 더해갔다. 활안스님은 여느 스님과 달리 특별한 축원을 올린다. 먼저 유주, 무주 고혼은 물론 일제징용, 한국전쟁 희생자 등 모든 영가들의 천도를 기원한다. 그리고 삼라만상 모든 생명들의 평안을 축원한다. 그때마다 내림목탁과 함께 불보살님과 신장에게 수없이 절을 한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한 달에 한 두번은 천자암을 찾는다는 양경호 씨는 흐르는 땀을 방지하기 위해 이마에 띠를 두르고 절을 한다. “큰스님의 목탁소리는 리듬감과 몰입감이 강해 힘을 받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가뿐해져 저절로 힐링이 됩니다.” 새벽 4시30분. 목탁소리가 멈췄다. 대중 모두 좌복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는다. 이렇게 새벽예불이 끝났다. 

활안스님의 정진력은 수행자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졌다. 많은 후학들이 법거량을 하러 천자암에 올라온다. 하루는 젊은 스님이 찾아왔다. “스님, 저는 매일 새벽에 2시간씩 목탁치며 기도하는데 삼매에 듭니다.” “그래, 그러고 난 다음은 뭐 해?” “…아침 공양하지요….”

우물쭈물하는 젊은 스님에게 활안스님이 물은 것은 목탁칠 때만 삼매에 드는 것이 아니라 목탁을 놓았을 때도 삼매에 드느냐는 경책이었다.
 

 스님은 “새벽에 하는 염불은 하늘을 향한 외침이자 마음속 부처님을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했다. 지난 13일 새벽 정진현장.  

예불을 마치고 법당 뒤로 돌아서자 고고하게 서있는 쌍향수(천연기념물 제88호)가 어슴푸레 자태를 드러낸다. 800년 전,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중국의 왕자이자 제자인 담당국사와 함께 머물면서 심었다는 전설을 담고 있는 신목(神木)이다. 두 그루의 곱향나무는 마치 제자가 스승에게 예를 갖추듯 서있다. 다시 보니 구순의 활안스님이 부처님에게 매일 예를 올리는 듯하다. 이제 활안스님의 뒤를 이어 제자들이 예를 올려야 할 일이다.

천자암은 재가자를 위한 ‘적반하장(寂反下暲) 하자’는 명상 프로그램을 준비중이다. 고요(寂)한 가운데 돌이키고(反) 내려놓아(下) 나를 밝히자(暲)는 명상이다. 활안스님이 강조하는 ‘단박에 밝혀라’는 공부를 1박2일 동안 체험하면서 수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도는 도문스님이 맡는다. 

도문스님은 “활안 큰스님의 가르침을 체계화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데 혼신을 다하겠다”고 한다. 사제지간의 훈훈한 기운이 조계산을 더욱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활안스님은…
해방되던 1945년 순창 순평사로 출가, 1953년 월산스님을 은사로 승적에 공식으로 이름을 올렸다. 1958년 통도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이후 상원사, 칠불암, 범어사, 용화사 등 전국 제방선원에서 정진했다. 특히 오대산 적멸보궁과 북대에서 정진할 때 보여준 구도열정은 지금도 후학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송광사 천자암에서 정진하며 수행가풍을 세우고 있다. 예불, 천도재, 운력, 참선으로 이어지는 용맹정진이다. 새벽 1시20분이면 어김없이 도량석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하고 있다. 90세의 노구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손수 조석으로 예불을 집전한다. 해마다 100일 기도 때면 하루 10시간 넘게 꼿꼿이 서서 사분정진을 한다. 그러다보니 젊은 납자들이 스님을 찾았다가 정진을 따르지 못하고 떠나버리기 일쑤다. 스님은 1999년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으로 선출됐으며, 현재는 명예의원이다.

[불교신문3251호/2016년11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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