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 중흥 ‘호암의 후신’       

 

和光染跡 德洽一道

卓然出羣 無心如雲

封山補寺 遺像肅敬

有功有勳 永世芬芳

지혜를 감춘 중생의 자취로/ 덕은 도를 윤택하게 하고/ 탁월하고 특출하나/ 무심하기가 구름과 같다.// 산에 들어 절을 보살폈기에/ 모습을 남겨 공경하고/ 공로와 충훈이 있으니/ 영원히 빛나리라.

 

倚天長劒兮生鐵氣鋼 年老矍鑠

照塘靈臺兮古鏡光涵 髮踈䰐鬖

行不束樸兮 比棗柏

切堪上石兮 似護巖

秖樹入晦 曇花浮紅

篆香微籠綉龕

하늘을 지탱하는 장검에는 생철의 기강으로/ 나이가 들어도 정정하고/ 연못에 비치는 영대에는 옛 거울에 빛이 잠기고/ 수염이 성글게 흩트러졌다.// 오가는데 걸림이 없어 조백에게 비교되고/ 기꺼이 윗돌을 감내하니 호암과 같다.// 숲 우거진 어두운 곳에 들어가니 우담발화 붉게 피고/ 전단향이 은은하게 감실에 감돈다.

 

선암사에 모셔진 철경영관(鐵鏡永寬, 1819~1889) 스님 진영에 실려 있는 두 편의 영찬이다. 첫 번째 영찬의 찬자는 함명태선(函溟太先, 1824~1902)이며 두 번째 영찬의 찬자는 예운혜근(猊雲惠勤, 19세기 말~20세기 전반 활동)이다.

진영 주인공 철경스님은 환성지안의 후손으로 함월해원-완월괘홍-한봉체영-화악지탁-화담경화-수월묘행(水月妙行)-고경성윤(古鏡性潤)의 법맥을 계승했다. 

스님은 17세에 선암사에서 독서하다 발심해 재윤(在允)스님에게 출가했다. 이후 침명스님에게 가르침을 받고 수행에 뜻을 두어 지리산 칠불암, 연곡사 서굴, 설악산 봉정암에서 염불정진했다. 이후 선암사로 돌아와 사찰의 폐해를 혁파하고 승풍을 높이는데 진력을 다했다. 1859년에는 승도의 뜻을 모아 도승통(道僧統) 문제를 혁파하고 1866년에는 흥선대원군을 찾아가 선암사 인근 사찰림을 보호하기 위한 봉계(封界)를 허락받았다. 이런 철경스님의 행보는 18세기에 선암사를 중흥한 호암약휴(護巖若休, 1664~1738)에 버금가기에 스님의 꿈에 사미가 나타나 “호암의 후신”이라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철경스님의 삶은 두 스님이 지은 영찬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철경스님과 시대를 같이 한 함명스님은 봉산보사(封山補寺)를 칭송하는 찬문을 남겼고 함명스님의 3세손인 예운스님은 호암스님과 같은 기개로 선암사를 지켜낸 철경스님을 추모하는 글을 지었다. 

[불교신문3244호/2016년10월29일자] 

해제=정안스님 설명=이용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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