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 최고 포교사는 성철 큰스님
 
스스로 하게 일러주며 몸소 실천
 
내면 놓치지 않고 일과 챙기게 해         
 
신심과 원력과 수행이라는 명제를 가지고 포교일선에서 좌충우돌하며 전법활동을 한다. 그런 가운데 지금껏 닦아온 살림살이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현장이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포교현장의 이해부족과 눈높이의 차이로 나타난다.
 
해인사 백련암의 가풍을 아는 불자들은 다 안다. 절과 기도에서 출발해서 절과 기도로 마치는 것이 기본이다. 능엄주 예불에다 아비라 기도라는 특별한 의식은 너무나도 생소한 나머지 ‘사이비 신앙’ 같다는 반응까지 보였다. 호계합장에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라고 하자 ‘아줌마 꼼짝 말고 가만 있어봐’로 들린다나? 여하튼 도량을 일구고 반연되는 신도 하나 없는 그야말로 ‘생출’로 시작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다.
 
일일이 이해를 돕기 위한 강의를 수차례나 해봐도 무반응이다. 헛웃음이 공허함을 더할 때 마음의 결정은 ‘통합 예불’이라는 기도발심을 일으키게 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방편인 셈이다. 예불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도량이 서고 포교의 첫 발판이 되기에 예불 속에 모든 기도법을 익히게 한 것이다.
 
능엄주, 아비라 기도, 108배, 1000배, 3000배…. 예불이 익숙할 때 쯤 수도사는 홀로서기는 할 수가 있었으나 대중 스님들과는 멀어져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무렵 대중처소를 전전하며 걸망살이 때 알고 지내던 도반 스님으로부터 한통의 반가운 전화가 왔다. 만남이 정해진 날 약속장소로 달려가는 심정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오랜만에 대중 스님들과의 담소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도심포교에서 나(我)라는 아상과 고립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도착한 장소에는 나와 같이 불려나온 스님들로 북적였다. 담소에 웃음이 넘쳐나고 고민도 토로하고 포교에 대한 여러 정보들도 공유하며 밤은 깊어갔다. 
 
이렇게 모인 것이 ‘부산 전법도량’의 시발점이 됐다. 스님들과 신도님들이 모여 각 사찰 운영의 프로그램도 들어보고 견학도 하면서 부족분을 채워 나가며 운영의 묘미도 늘어만 갔다. 순수포교가 바탕이 된 것이다. 함께하는 공동체 역할을 익히고 홀로서기에서 벗어나 함께하는 우리라는 대중심을 포교의 일선에서 배우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 나에서 너로 그리고 우리라는 공동체 속에서 나만의 방식이며 전유물이라는 격차를 깨고 함께하는 포교가 된다면 한걸음 앞서가는 참포교가 될 것이다.
 
지금도 나에게는 많은 숙제가 남아있다. 그러나 어려워하지 않으며 피하지도 않는다. 이제는 포교일선의 많은 도반 스님들과 이해하고 익혀가는 ‘모두’가 있기 때문이다. 나름 매뉴얼도 정립하고 억지에서 논의로 이끌어 내며 신도와 스님들의 가식 없는 모습을 갖춰가는 지금이라면 언제라도 포교하는 자리에 사람들은 모여들 것이다. 
 
지금도 생각한다. 불조께서도 그러셨지만 근세 최고의 포교를 하신 그 분을. 성철 큰스님…. 그 분은 억지를 내세우지 않으셨으며 이끌려고도 하지 않으셨으며 스스로 하게끔 일러주신 분이다. 몸소 실천하셨으며 그렇게 하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 스스로에게 물어 내면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일과를 챙기게 하셨으며 이미 열반에 드신 이후에도 모두에게 가르침이 이어져 가는 여실함을 보았다.
 
포교는 신뢰를 바탕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서로를 의지한다는 것은 신뢰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며, 믿고 맡겼을 때 가장 큰 포교가 되는 것이다. 쥐지 말고 내주어라. 포교의 일선에서 그들의 힘은 무궁무진하다. 
 
[불교신문3242호/2016년10월22일자] 
일철스님 부산 수도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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