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영국사 주지 청원스님 

“화두정진만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어울리며 보살피는 일이 자기수행…
 
시류에 휩쓸려 다니면 
 
끝내는 시류의 노예가 되고 말아”  

 
“심오한 교리 장구한 역사 이전
 
불교의 이상은 만물의 행복일 것”
 
10월30일 ‘은행나무 당산제’로 
 
부처님 가르침 전하는 축제 열어 

 

영국사에서 청원스님을 만난 때는 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8월5일,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기 한참 전이다. 스님은 “참다운 지혜를 얻으려면 일상에서 중심을 잃지 말고 늘 깨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북 영동 천태산에 위치한 영국사(寧國寺)는 신라 제30대 문무왕 8년(668)에 원각국사(圓覺國師)가 창건했다. 본래 이름은 국청사였으나 고려시대 홍건적의 난을 겪으며 이름이 바뀌었다. 외적에 쫓겨 수도인 개경마저 떠나야 했던 공민왕은 국청사에 숨어들어 국태민안을 기도했다. 그는 끝내 개경을 탈환하고 환궁했다. 현재 절을 중심으로 높이 3.5m의 석성지(石城地)가 남아 있다. 
 
영국사의 명물은 은행나무다. 1000살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는 31m며 가장 두터운 부분은 둘레가 11m다. 가지가 늘어져 곳곳을 철제 지지대로 받쳐야 할 정도다. 1970년 4월 천연기념물 제223호로 지정됐다. 커다란 몸집은 신비롭기도 하다. 나라에 전쟁과 같은 변고가 일어나는 조짐이 보이면, 울음소리로 미리 위험을 알린다는 전설도 있다. 가을이면 웅장한 황색으로, 단풍으로 즐기러온 참배객들을 맞는다. 
 
영국사 주지 청원(靑願)스님은 이 은행나무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펼친다. 매년 10월말 지역주민들을 초청해 ‘은행나무 당산제’를 연다. 영국사를 지켰고 나라를 지켰던 천태산 산신들에게 지내는 제사이자 축제다. 시낭송과 노래와 연주로 사람들의 안녕을 빌고 각자의 소원을 격려한다. 금년엔 오는 30일이 당산제가 열리는 날이다. 은행나무가 내뿜는 ‘천년의 숨결’ 안에서 모두가 흥겹고 정다운 날이다. 청원스님은 “심오한 교리와 장구한 역사를 논하기 전에, 불교의 궁극적인 이상은 만물의 행복일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寧國)’의 파수꾼다운 말로 들렸다. 
 
스님은 올해 은사(조계종 원로의원 월서스님)의 은사인 금오스님을 기리는 일로 바빴다. ‘금오태전(金烏太田) 선사 연구’를 제목으로 한 논문으로 동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원스님이 본 금오스님은 “근현대 한국불교사에서 가장 치열한 삶을 살아온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모범을 보여주면서 출가납자들에게는 출가수행자의 본분사를 잊지 말 것을 강조하였고 재가신자들에게는 가장 현실성 있는 도덕적인 삶의 실천을 가르쳐 주었다”고 평했다.
 
금오스님에겐 불교정화운동이 가장 지고한 도덕이었다. 대처승으로 대변되는 왜색불교를 청산하고 청정비구승의 전통을 복원하기 위한 대열의 맨 앞에는 금오스님이 있었다. 논문에선 “보살도로서 승단의 가풍을 바로잡고 법통을 세워 삼보정재를 수호함과 아울러 모든 사찰을 명실상부하게 수도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종단 풍토의 정화에 대한 투철한 안목과 신념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정화운동을 통해 자기수행과 세상의 변혁이라는 가치를 동시에 닦았다. 
 
“선사의 교단 정화운동은 단순한 교단 정화운동을 넘어서 참된 수행자의 모습과 출가자로서의 철저한 자기반성, 참선수행의 여건과 정신의 확립 등을 수반한 것으로 선사로서의 진면목이었기 때문에 선사에게 자리이타 참선수행은 이타수행의 정화불사와 다른 것이 아니라 ‘금오’라는 한 개인에게서 내면과 외면 양면으로 펼쳐진 상구보리였고 하화중생의 모습이었다.” ‘심청정(心淸淨) 국토청정(國土淸淨)’이라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맑아야 집단 전체가 맑아지는 법이다. 
 
논문은 단순히 문중(門衆)의 최고 어른을 띄우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청원스님은 금오스님이란 개인을 통해 인간의 본보기를 탐구하려 노력했다. “선사는 일상성을 강조하는 조사선(祖師禪)을 기반으로 열반의 획득과 불성(佛性)의 해명을 중요시하였다. 때문에 선사의 법문에는 일상에서 깨침을 실현하는 모습이 잘 드러났고, 본래의 청정한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 그대로 부처님이었다. 이것은 곧 본래의 청정한 마음이 바로 깨달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본래의 마음을 회복함으로써 욕심과 분노와 미망 같은 엇나간 마음을 극복하는 것. 청원스님은 이것을 “자유”라고 봤다. 
 
“자유의 획득은 선사의 몇 가지 행위로 드러났다. 첫째는 본래심의 실천이었고, 둘째는 연기(緣起)이고 무상(無常)이며 무아(無我)의 실천이었으며, 셋째는 일체의 경계에 대하여 자유로운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었고, 넷째는 일상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떨어뜨릴 때, ‘나만의’ 무언가를 찾을 때, 자유는 순식간에 방종으로 전락한다. 
 
“일상에 충실함으로써, 상대에 대한 존경과 배려의 하심(下心)으로 일관함으로써, 급기야 ‘나’라는 주체와 ‘남’이라는 객체가 합일되어야만 진정한 자유가 발현됩니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대하더라도 그것을 증오하거나 그것에 동요하지 않는 마음. 세상으로부터 이탈하지 않고 기꺼이 섭수(攝受)하는 마음. 그것이 본래심 아닐까 합니다.” 논문을 통해 완전한 영국(寧國)이 이뤄지는 논리에 대해 차근차근 짚은 셈이다. 
 
논문에선 장광설을 뱉어냈지만, 청원스님은 매우 과묵한 편이었다. 출가 동기를 묻자 “중학교 때 해인사에 놀러갔는데 예불하는 스님들이 멋있어서”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절은 가난했지만, 가난한 대로 놓아두는 편인 듯 보였다. 물론 무뚝뚝하다기보다는 고요했다. 깊은 생각에 빠진 것인지 화두에 푹 잠겨 사는 것인지…, 여하튼 침묵은 불편하지 않고 일견 반가웠다. 


 
스님을 영국사에서 만난 당시는 ‘푸른 눈의 수행자’ 현각스님의 한국불교 비판이 불교계 안팎으로 이슈가 됐던 때다. 가뜩이나 뜨거웠던 여름에 불을 질렀다. 현각스님은 외국인 수행자에 대한 푸대접과 기복신앙의 만연을 근거로 제시하며 한국불교의 전근대성을 주장했다. 종단 집행부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은 이를 호재로 삼아 또 한 번 저주의 화살을 날렸다. 그러나 ‘역대급’ 무더위가 기어이 물러나듯, 결국엔 잠잠해진 소동이다. 청원스님은 “어찌 보면 한 스님이 개인적인 SNS로 격정적인 감정을 털어낸 일에 불과했는데, 언론이 너무 호들갑을 떨었다”며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청원스님은 제5교구본사 법주사 선학승가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해 서울노인복지센터 관장으로 일한 경험도 갖고 있다. “화두정진만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어울리며 보살피는 일이 곧 자기수행”이라는 말에는 금오스님의 가르침이 비친다. 일상에 충실해야만 삶이 흔들리지 않는다. 스님은 선(禪)을 공부하면서 얻은 가장 값진 지혜는 ‘깨어있음’이라고 밝혔다. 
 
“어떤 문제건 간에, 이렇게 보면 이렇게 보이고, 저렇게 보면 저렇게 보입니다. 시류에 휩쓸려 다니면, 끝내는 시류의 노예가 되고 말아요. 좀 덤덤해집시다. 그리고 나부터 바로 봅시다.” 영국사는 충북 영동군에 있지만 옥천군에 더 가깝다. 또한 옥천은 충북이지만 대전광역시에 더 가깝다. 이걸 몰라서, 한참을 헤매고 에두른 뒤에야 절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낭패에 빠지게 마련이다. 
 
■  청원스님은…  

1982년 월서스님을 은사로 부산 범어사에서 사미계를, 1990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해인사 승가대학,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조계종립 승가대학원을 졸업했다. 동국대 강사, 수덕사 승가대학장, 법주사 승가대학장, 서울노인복지센터 관장, 제14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다. 현재 영국사 주지이자 제5교구본사 법주사 선학승가대학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불교신문3240호/2016년10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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