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을 비판하고 싶다면<上> ‘윤리적으로 우위에 서야’

승가 내부서 해결 할 문제 두고

비판 활동에 골몰하는 엘리트들

자기검증부터 해야 하지 않는가

 

조계종 국제교류위원회 위원인 김종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가 최근 본지에 ‘스님들을 비판하고 싶다면’이라는 주제의 기고문을 보내왔다. 기고문 요약본을 2차례에 걸쳐 지면에 게재하며 전문은 인터넷 불교신문에 살펴볼 수 있다. 

불교계는 의외로 소란과 소동이 많은 곳인데, 사람들은 그 까닭이 스님들의 수준이 낮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과거에는 분명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여전히 불미스런 일들을 저지르는 스님들이 있으나, 스님들의 수준은 여러 면에서 향상됐다. 그런데도 불교계에 소란과 소동이 과거보다 더 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 가운데 하나를 이제는 재가불자들, 특히 사회적 엘리트 재가불자들에게서도 찾아보아야 할 때이다.

불교계의 사회적 엘리트들은 긍정적인 활동들을 통해 불교의 발전을 도모하기보다는 불교계의 잘못에 대한 비판활동에 골몰하는 이들의 모습이 훨씬 두드러진다. 특히 조계종의 스님들과 관련해 모든 일들에 대해 비판적일 뿐 아니라 비판의 도가 한도를 넘어서는 경우들도 많은데, 스님들 일반이 재가불자들로부터 그렇게 비판받아야 마땅하며, 또 이들이 이렇게 비판할 위치에 있거나 자격이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스님들에 대한 비판내용은 주로 파계와 일탈, 사치 등에 관련된 윤리적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스님들이 윤리적 비난을 받게 되는 근본 원인은 스님들의 윤리적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지켜야 할 계율의 수준이 높은 데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스님들이 스님들답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이는 매우 정당한 비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스님답기 위해서는 일반인이 따라 할 수 없는 고도의 윤리적 지침인 계율을 실천해야 하는데, 이를 언제 어디서나 완벽하게 실천하기는 극히 어렵다. 또한 이것은 스스로 지키고 승단 내부에서 확인돼야 할 것이지, 자신들의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재가자들이 감시할 일은 아니다.

윤리적 비판이란 어디까지나 보편적이거나 최소한 상호적 기준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스님답지 못한 스님들은 자신을 위해서나 승가와 불교, 사회를 위해서도 승복을 벗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가 사회 일반의 윤리 기준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라면, 또 일반 불자들도 흔히 하는 행위라면 재가불자들이 비판에 나설 일은 아니다.

승단이 자정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에 재가불자들이 나서는 것이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승단의 자정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재가불자가 나선다고 해서 자정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승단을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사부대중이라고 하고 승단과 재가자는 서로 의지하지만, 승단이 재가자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재가자가 승단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양자간에 상호 협력적 관계가 존재하지만 그 관계는 윤리적 의무관계에 토대를 둔 것이 아니다. 스님이 스님답지 않고, 승단이 승단답지 않다면 재가자들은 스님과 승단과의 관계를 청산하면 그만이지, 스님다움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스님들 중에는 극도로 타락한 스님들이 있고, 승단의 자정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윤리적 비판은 사실에 대한 비판과 다르다. 윤리적 비판은 윤리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이 분명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스님들에 대해서 비판적인 사회적 엘리트 재가불자들은 먼저 윤리적 자기검증부터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은 비정규직과 실직자로 가득 찬 사회에서 좋은 직장에서 많은 임금을 받으면서 스님들보다 훨씬 호사스럽게 사는 사회적 특권층들이다. 사회적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은 먼저 자기반성부터 할 일이다. 본인이 특권을 누릴 만큼 훌륭한 능력과 도덕적 자질을 갖추었는지를 생각해 볼 일이다. 사회적으로 혜택받은 환경에서 태어난 덕분에 처음부터 남들보다 앞서 있었거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지위를 얻기 위해 누군가에게 아부했거나, 연줄을 활용했거나, 자기의 능력을 지나치게 포장을 했거나 한 적이 없었는지, 지금도 그러고 있지 않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썩을대로 썩은 이 사회에서 이런 반성을 거친 연후에 스님들을 비판할 만한 자신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반성을 생략한 채 일반인들보다는 훨씬 도덕적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설정해 놓은 매우 높은 수준의 도덕적 기준에 도달하지 못해 허점을 드러낸 사람들을 비판할 일은 아니다.

[불교신문3236호/2016년10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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