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월정사 승방 너럭바위서 함께 공양도 하고…

나무자재 없어 ‘시멘트 불사’

현지 주민이나 외국인 오면

함께 예불하고 반야심경 읊어

역사 전공 스님 친절한 안내도

 

내금강 표훈사 대웅전 불사중

지장보살 탱화 ‘너덜너덜’ 상태

더디지만 조금씩 복원하는 추세

함경북도에 있는 개심사. 개심사에 원래 모셨던 주불은 보현사로 이전됐고, 1800년경 제작된 칠보산 지역사찰 유물들이 대거 개심사에 보관돼 있다.

단체로 ‘북한사찰순례와 문화유적답사’를 다녀왔다. 미국에서 출발하여 인천공항과 북경비행장을 거쳐 평양 순안비행장으로 들어갔다. 이번 순례는 지난 8월30일부터 9월12일까지 13박14일간 이뤄졌다. 참가자는 뉴욕, 워싱턴 DC, 캘리포니아 주, 네바다 주 등지에서 합류한 9명이었다. 지난 2005년 22명이 처음 참가한 이래 2013년, 2015년 그리고 올해가 4번째다.

이번에 방문한 사찰은 평양의 법운암, 묘향산 보현사, 원산의 명적사, 고산의 석왕사, 금강산의 신계사, 표훈사, 정양사, 마하연터와 불지암, 묘길상, 칠보산의 개심사, 구월산의 월정사, 사리원의 성불사 등이다. 이중에서 원산의 명적사와 고산의 석왕사, 그리고 칠보산 개심사는 처음 방문했다.

표훈사 판도방에는 ‘공사중’이라는 푯말이 붙어 불사중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북한은 원산과 금강산 지역을 관광특구로 지정하여 이 지역을 관광지로 가꾸고 있다. 여기에 갈마비행장, 마식령 스키장, 송도원 해수욕장과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있다. 그리고 사찰로는 고산 석왕사와 원산 명적사가 있다. 북한의 관광은 명승지 관광을 하면서 민족문화유산을 함께 보여주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명적사와 석왕사, 그리고 표훈사 등이 대대적인 복구작업을 하거나 공사중이었다. 9월3일 명적사와 석왕사를 차례로 방문했다. 명적사 입구에 4기의 부도와 부도비가 있었다. 사진에서조차 볼 수 없었던 부도들이었다. 명적사에 도착하여 강혜관 관리원으로부터 명적사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북한 국보유적 105호인 이 명적사는 원래 고구려 때 세워져 1669년에 중수되었고 그 후 1771년과 1869년에 대보수를 하였다고 한다. 건물이 11채 였는데 한국전쟁 때 9채가 폭파되어 지금은 대웅전과 극락전만이 남아있다. 대웅전은 포식 건물로 두공의 짝도리 겹처마로 용과 봉황새 조각이 아주 볼만하다고 설명했다. 크기는 앞면 3칸(11m), 옆면 3칸(7.5m), 밖 7폭 안 9폭의 두공 건물이고 문의 문양은 통나무를 깎아서 만든 연꽃, 매화, 국화,모란 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1985년에 새로 단청을 하였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상태는 좋아 보였다. 필자는 불상이 없는 대웅전을 처음 보아서 좀 당황스러웠다. 우리는 스님도 없고 불상도 없는 이 절에서, 가지고 간 향을 땅에 꽂고 필자가 목탁을 치며 반야심경을 봉독을 하였다. 앞으로 3년 정도 지나면 불상도 모시고 제대로 된 사찰의 모습을 갖출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국보유적으로 지정돼 있는 금강산 명적사의 경내 모습

석왕사는 고려 우왕 때인 1386년 이성계가 무학대사에게 귀의하여 응진전을 1년반에 걸쳐 건립했다. 석왕사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원찰이라 1394년에 53채의 건물이 있을 정도로 큰 사찰이었고 27명의 조선 왕들이 이곳을 다녀갔다고 안내 강사는 소개하였다. 강사의 소개에 의하면 1394년 석왕사는 53채의 건물이 있었는데 1951년 6월13일 폭격으로 대부분 건물이 폭파되었고 오직 1394년에 세운 조계문만이 파괴되지 않았고 호지문은 1952년에, 불이문은 1995년도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강사에 의하면 3년 전 부터 공사를 하고 있는 대웅전은 나무를 구하기가 어려워 시멘트로 공사를 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크기는 208평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큰 규모인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우리 일행이 방문하였을 때에도 어둑어둑한 속에서 많은 일꾼들이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이 공사를 시작한 후에는 남한 사람이나 해외동포들의 방문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한다.

평양 법운암에서 주지 스님이 탑에 관해 설명하는 모습.

9월4일에는 내금강의 표훈사를 방문했다. 표훈사에서는 주지 청학스님과 젊은 백운스님 등 2명의 스님이 있었다. 주지 스님에 의하면 현재 표훈사는 공사중인데 비가 와서 대웅전인 반야보전의 오른쪽에 빗물이 샌 자국이 보였다. 이 스님들과 함께 반야심경 독경을 하고 예불을 했다. 금강굴을 지나 만폭동 계곡으로 들어가 법운암, 마하연터, 묘길상을 보러갔다. 마하연 터를 둘러보고 난 후 근처의 불지암과 칠성암을 가보았다. 불지암에는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찾는 사람도 거의 없고 안에는 불상을 비롯한 아무것도 없이 썰렁한 기운이 나오지만 이 불지암에서 1903년 용성스님이 동안거를 지냈고, 회명스님 또한 1935년 만일염불회를 조직하여 봉행하기도 하였다는 유서깊은 암자였다. 오고 가는 길에 안내 강사와 많은 이야기를 하였는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지난 6월25일부터 7월25일까지 한 달간 교수, 학자 등 세계문화유산조사단 21명이 금강산 전 구간을 북한의 안내인들과 함께 조사를 했는데 자신도 안내를 맡았다고 한다. 개성에 가면 선죽교, 고려박물관이 2013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었다는 안내 표지판이 있는데 조만간 묘길상을 비롯한 금강산의 많은 유물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될 것 같다.

9월6일에는 칠보산 개심사를 방문하였다. 칠보산은 외칠보, 내칠보, 해칠보로 되어 있는데 개심사는 함경북도 명천군의 내칠보 개심대 지역에 있다. 칠보산을 설명하는 강사에 의하면 칠보산에는 7개 사찰과 20개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7개 사찰은 개심사, 금정사, 의정사, 성림사, 중암사, 성덕사, 은봉사가 있었는데 한국전쟁 중에 폭격으로 모두 없어지고 오직 개심사만이 전쟁 피해없이 남아있다. 개심사 주지 덕수스님이 우리 일행을 맞이하였다. 전임 주지 광법스님의 제자라고 하는데 주지직은 10년이 지났다고 한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다는 덕수스님은 설명을 알기쉽게 잘했다. 법당에는 탱화가 있었는데 왼편의 지장보살 탱화는 너덜너덜한 상태로 되어 있어 수리가 시급한 상태였다. 스님의 안내로 부도가 있는 곳으로 가서 부도와 부도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우리가 약 1시간 여 머무는 동안 30여 명의 여학생들이 교사와 함께 사찰을 방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함경북도에는 개심사와 쌍계사 2개의 사찰이 있는데 미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쌍계사는 갈 수 없다는 통보를 미리 받았다. 이외에도 원래 가려고 했던 백두산과 명사십리 해수욕장, 통천의 총석정 등은 현지에 도착한 뒤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대부분 군사시설과 관련이 있거나 도로사정 때문이다.

9월10일에는 구월산 월정사를 방문하여 1년 만에 주지 스님과 반갑게 해후했다. 예불도 함께 하고 세상사 이야기도 많이 했다. 이 스님은 원래 공대에서 공부를 해서인지 물레방아를 이용해 전기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기온이 떨어지더라도 1년 중 11개월을 물레방아로 전기 사용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밤에 전기불도 쓰고 TV 시청도 한다고 한다. 승방 뒤쪽 너럭 바위에서 식사를 하다가 그 부근에 우연하게 아름다운 부도와 비를 볼 수 있었다. 월정사를 나와 구월산 관광을 하다가 한 자리에 있는 원정사 5층탑과 사적비, 구월리 부도 등을 우연하게 볼 수 있어 즐거운 여행이었다.

1995년 이래 20년간 5번 방문하면서 본 북한은 도로 사정은 전과 같지만 전기 사정은 많이 좋아졌고, 주민들의 체격도 커졌다. 의상도 화려해지고 평양에는 자동차가 아주 많아졌다. 호텔에서는 절에서 쓰는 요령이 팔리고 있다. 스님들도 삭발을 하였으며 중국인 관광객이 넘쳐난다. 변하는 북한에서 종교에도 조금씩 문호를 개방할 것이다. 민간인들의 교류가 많아지면 긴장이 완화될 것이고 평화무드가 조성될 것이다. 필자는 내년에도 참가단을 모집할 것이다.

[불교신문3235호/2016년9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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