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한 후 형님은 바다로 갔다

해군으로 구축함 함장을 했다

형님이 평생 지키던 독도…

지금은 독도를 축소한

모형 섬 집을 지어놓고

화가가 돼 그 섬에 살고 있다 

9월 중순경이었을 것이다. 열 살 무렵으로 기억한다. 추석이 가까워오고 바람이 몹시 불고 흐린 어느 날이었다. 별로 할 일이 마땅찮던 아이들이 동네 골목 구석에 모여들어 늘 하던 대로 무슨 놀이를 구상하던 중 누군가 이렇게 험상궂고 늦은 날 해수욕을 했다는 기록을 세우자며 바다로 가자고 했다.

10여 명 정도의 아이들은 바로 동의를 했고 입은 그대로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어린 축에 들었다. 형님도 있었다. 형님은 당시 초등학교 6학년쯤은 되었을까. 십리 길을 걸어 해수욕장으로 갔다. 검은 구름이 낮게 깔린 철 지난 바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파도는 거칠게 부서지고 있었다. 태풍이 몰려오고 있는 것 같았다. 바닷가 아이들이라 대부분 수영에는 자신 있었지만 워낙 파도가 험해 그냥 돌아가자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잠깐만 들어갔다 나오자고 했다.

나는 누구보다도 재빨리 옷을 벗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바다는 무릎 정도밖에 차오르지 않았다. 파도가 세차게 해변을 강타하고 물살이 매우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파도가 치면 물속에 빠졌다가 물결이 밀려가면 수심은 무릎 정도에서 세차게 빠져나갔다. 얼마정도 뛰어 들어가던 나는 순간 파도가 파놓은 물웅덩이에 빠졌다. 파도가 덮치고 바로 물 몇 모금을 삼켰다. 파도가 밀려가면 물은 무릎을 조금 넘는 정도였지만 세찬 물살에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몇 걸음 나왔는가 싶었는데 높은 파도가 몰아치고 파도에 덮여 나는 점점 깊은 바다로 빨려들어 갔다. 발버둥 치면 칠수록 파도에 휩쓸려 들어갔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았다. 파도에 빨려 들어가며 피스톤처럼 오르락내리락 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서너 명 정도 물에 들어와 있었고 나머지는 옷을 벗다말고 마냥 바라보고 서 있는 것이 얼핏 보였다. 그 바다에 혼자 떠 있었다. 멀리서 광주리를 흔들며 여자가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의식을 잃었다. 몸은 풀리고 편안해져 갔다. 그 순간 무언가 흐릿하게 미끈한 감촉을 느꼈다. 나는 내가 어떻게 해변에 나오게 됐는지는 기억이 없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모래사장에 물을 몇 번 게워낸 뒤였다. 나는 백사장에 오랫동안 누워 있었고 올챙이처럼 배가 불렀다. 아이들이 빙 둘러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고 형님이 보였다. 뱃속을 다 비워낸 뒤에야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가 허우적대는 것을 보고 모두는 혼비백산 벗고 있던 옷을 다시 입고 바다에 이미 들어와 있던 아이들은 황급히 뛰쳐나가고 형님이 바로 뛰어 들어온 것이었다. 형님의 말로는 내가 형님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나를 형님은 몇 번 더 물을 먹이고 힘을 빼 놓은 다음 나를 잡고 헤엄쳐 나왔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형님의 수영 실력은 대단했다. 형님이 나를 구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이지 아찔하다.

성장한 후 형님은 형님의 꿈대로 바다로 갔다. 바다에서 평생을 보냈다. 조국의 바다를 지키는 해군으로서 구축함 함장까지 했다. 형님이 평생 지키던 독도, 지금은 독도를 축소한 모형 섬 집을 지어놓고 그 섬에 살고 있다. 화가가 된 형님은 진정한 바다사람이고 영원한 멋쟁이 해군이다. 독도, 섬은 살아 있고 형님은 지금도 섬을 지키고 있다. 이맘때의 바다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형님, 덤으로 살고 있는 나는 언젠가 형님과의 멋진 시화전을 꿈꾸고 있다.

[불교신문3233호/2016년9월14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