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총림 해인사 향적스님

 

 

청년희망 캠프 성공리 개최

고뇌하는 청춘들 휴식 제공

 

도량에 ‘북카페’ 조성했더니

‘해인사의 오아시스’ 생겼다

젊은층 관광객들 인기 만점

해인사 주지 향적스님은 기다리는 불교가 아닌 먼저 다가서는 불교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청년들이 찾는 해인사를 만드는 노력을 쉼없이 펼치고 있다.

 

지난 8월18일 가야산 해인사에는 20~30대 젊은이들이 대거 모여들었다. 흔치 않는 일이었다. 해인사는 승가대학 학인 스님들이 방학을 맞아 산에서 내려갔고, 해제를 마치고 수좌들도 선원을 비워 가야산이 조용할 시기였지만 뜻밖에도 젊은 청년들이 찾아왔다. 이 날은 해인사에서 주관하는 1차 청년희망캠프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청년희망캠프는 진학 취업 연애 결혼 등 청년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고민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기 위해 해인사가 마련한 특별한 템플스테이였다.

1차에는 71명이 지원했다. 남녀 지원자 수는 비슷했고 생각했던 것처럼 청년들은 취업 문제로 인해 많은 고민을 안고 있었다. 이미 취업을 한 젊은이들 역시 고민이 끝나지 않았다. 8월25~27일 열린 2차 캠프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최종 120여 명이 참석했다. 청년희망캠프는 청년들에게는 휴식과 재충전을 시간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해인사는 교계 안팎에 불교가 앞으로 가야할 길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사회에는 신선한 충격을, 청년들에게는 새로운 생각을, 불교계에는 뚜렷한 방향을 던진 주인공은 해인사 주지 향적스님이었다.

1차 캠프가 시작되는 날 신나는 표정으로 젊은 손님들을 맞은 스님은 환영식에서 짧지만 강렬한 인사말을 남겼다. “2박3일 동안 좋은 친구들과 사귀고, 가야산에서 끈기와 도전을 배우는 값진 경험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회식이 끝나고 해인사 북카페로 자리를 옮겨 인터뷰를 했다. 북카페에 들어서면 책이 있고 차가 있으며 그림 등 작품이 있다. 북카페에서는 작가와 대화도 열리고, 그림 전시회도 열린다. 지난해 말 문을 연 이 곳은 주지 스님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든 해인사의 명소다. 주지 스님이 북카페를 만든 가장 큰 이유는 “해인사를 찾는 관광객이나 신도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서”다. 해인사는 계속 위로 향해서 걸어가는 구조다. 일주문에서부터 점차 위로 향하는 길을 따라 걸어온 관광객과 신도들은 보경당이 있는 경내에 발을 들여놓으면 숨을 헐떡이면서 쉴 곳을 찾는다. 그런데 어디를 둘러보아도 쉴 곳이 없다. 잠시 쉬었다 대적광전, 판전으로 올라가려 해도 경내에는 나무 한 그루 없다. 주지 스님이 구광루 자리에 북카페를 만든 이유는 앉아 쉬는 공간이 필요해서다. 의자 하나만 놓으면 쉴 수 있지만 스님은 이왕이면 책 읽고 그림을 감상하거나 아니면 불교관련 공예품 등을 둘러보고 살 수 있는 문화가 흐르는 공간으로 꾸몄다. 스님의 ‘배려’는 맞아떨어졌다. 해인사를 찾은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 등에 북카페를 칭송하는 글을 올렸다. 이들은 북 카페를 ‘해인사의 오아시스’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주지 스님은 지난 봄에는 시내로 내려갔다. 청소년들에게 인기있는 래퍼 ‘아웃사이더’를 초청해 합천여고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그 날 공연에서 스님은 학생들에게 “해인사가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을 보유한 세계적인 명찰이지만 여러분들이 주변 친구들을 소중히 귀하게 여겨야하듯 우리도 우리 이웃인 합천분들을 귀하게 여긴다”며 “어른들은 해인사의 소중함을 알고 찾아오는데 젊은이들이 오기에는 스님들도 준비가 안돼 있고 학생들도 낯설어 하길래 산중의 스님들이 여러분들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북카페, 합천여고 아웃사이더 공연, 청년희망캠프는 모두 주지 향적스님이 품고 있는 같은 주제, 동일한 문제인식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그것은 바로 ‘배려’ ‘관심’ 이다. ‘손길’이다.

향적스님이 그려가는 해인사는 과거와는 달라 보인다. 지금까지 해인사는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갈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해인사는 ‘사찰 중의 사찰’이다.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이 있고, 한국불교의 중심이며 자존심이다. 누구나 한 번은 만나고 싶어하지만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높고 먼 곳에 있는 사찰이다. 그런데 해인사를 비롯 그 어느 산사도 이제 제발로 찾아오는 대중들만 바라볼만큼 한가롭지 못하다. 불교 뿐만 아니다. 젊은이들이 열광하던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다. 종교가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종교적 권위의 상실, 낮은 출산율, 풍족한 삶은 출가자 수를 현저하게 떨어트렸다. 수십명의 행자가 새벽 공양을 짓던 해인사의 풍경은 이제 흑백사진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향적스님은 급격하게 달라진 시대에 대처하기 위해 ‘차출’ 된 듯 서두르지 않으면서 서서히 새로운 시대를 대비해가는 것이다. 스님은 “대중들이 오기만 바라고 있으면 노보살밖에 만날 수 없다. 노보살들은 절에 와서 기도하는 것이 편하다. 그렇게 평생을 절과 함께 했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가만히 있으면 오지 않는다. 문화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청년들의 욕구, 그들의 문화적 감수성을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 캠프에 참가한 청년들은 말했다. “해인사를 꼭 오고 싶었다. 와서 지친 마음을 좀 쉬고 싶었다.” 그런데 올 기회가 없었다. 시간도 없고, 이 먼 곳까지 올 차비도 없었다. 무엇보다 와서 무엇을 할지 뚜렷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SNS에 무료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심지어 서울에서 절까지 데려다 준다는 소식이 떴다. 방학을 맞아 집에서 뒹굴던 대학생, 수없이 떨어져 더이상 부모 볼 면목도 없던 취업준비생, 비정규직 직장을 전전하던 임시직장인, 해인사와 아무런 인연이 없던 청년들이 손쉽게 가야산문을 두드렸다. 스님은 어떻게 해야 이 청년들을 산사로 불러오는지 정확하게 알았고 정부와 사회 그리고 언론이 적극 나서 도울 것임도 간파했다. 그 계획은 적중했고 모두 좋아했다.

그러나 향적스님은 이 모든 ‘배려’ ‘다가섬’을 불교세력을 넓히고 유지하려는 의도된 목적 아래 두지 않는다. 그냥 읍내 학생들을 위해, 고민하는 청년들을 위해 함께 아파하고 손을 내밀 뿐이다. 만약 포교를 의도했다면 신부 목사를 멘토로 초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캠프에는 혜민스님 외에 유수상 거창 중촌교회 목사, 천주교 대구대교구 정홍규 신부 등 다른 성직자가 청년들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대화했다. 향적스님은 불교의례도 하지 않았다. 템플스테이 최고 ‘히트작’이라는 발우공양도 하지 않았다. 주인이 청년이고 해인사는 단지 공간만 제공한다는 ‘배려심’이 이번 캠프의 핵심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님은 “청년들을 위로하는 것이 캠프의 가장 큰 목적인 만큼 종교적 색채를 배제했다”고 말했다. 불교는 자연과 더불어 존재하고 서로 의존하는 관계의 종교임을, 자신도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연기적 관계에 놓여있음을 청년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마음을 나누면서 깨달았다. 내가 마음을 열고 내가 먼저 다가가면 상대방도 나를 향한 문을 열고 받아들임을 알았다. 단지 기회와 장소만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은 불교에 흠뻑 젖고 행복해했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1980년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해인>지 초대편집장을 역임한 해인사 주지 향적스님은 불교신문사 사장을 지낸 언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프랑스 수도원에서 1년여간 기도와 묵상 묵언수행을 하는 등 서양종교의 수행과 문화를 체험한 독특한 이력을 지닌 스님은 당시의 경험을 담은 책 <깨달음에는 국경이 없다> 한국어판과 불어판을 펴냈으며 2014년에는 60여편의 한시를 해석한 <선시읽기>를 출간하는 등 인문학적 소양을 두루 갖췄다.

스님은 동서양 문화가 만나고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며 불교와 사회가 만나는 새로운 종교 예술작품을 준비중이다. 세계적 수준의 종교작품을 선보일 야심찬 그 계획은 해인사를 또다른 경지로 올려놓을지 모른다. 향적스님의 ‘젊은 해인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불교신문3231호/2016년9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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