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 의무 다하라는 말로는 마음 못돌려요

“얼마 전 유명감독과 여배우의 불륜 기사를 보았습니다. 평소에 좋아했던 감독이라 그걸 보고서는 너무나 화가 나서 친구들과 한참을 얘기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친구들이 제게, 어차피 연예계 일인데 네가 너무 흥분하는 것 같다고 하길래 순간 찔끔해서 말을 멈췄어요. 사실 친구들에게도 부끄러워서 말을 안하고 있는 부분인데, 그 감독 얘기가 실은 제 얘기로 느껴져서였던 것 같아요. 전 지금 서른 중반에 남편이랑 결혼한지 이제 7년이 지났습니다.

안정적이고 자상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서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고요. 아직 아이는 없습니다. 그런데 1년 전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난 일이 있어요. 그리고 저한테는 정말 자신을 다 채워주는 좋은 사람이 생겼다며 이혼을 요구하기도 했고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얼마나 괘씸하고 화가 나던지요. 그러면서도 이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울며불며 매달리기도 하고,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기도 하며, 어떻게든 남편의 마음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1년이 지나 함께 사는 모습을 보면 이제 더는 예전같은 부부 사이가 아닌 것 같아요. 서로 각 방을 쓰며 그저 할 일을 분담해서 하는 사무적인 파트너와 같은 느낌입니다. 남편 마음은 여전히 그 여자에게 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아마 그럴 거예요), 이제 더는 저를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관계로 계속 산다는 건 저도 행복하지 않고요. 그렇다고 남편을 그 여자에게 보내, 그렇게 자기네 둘만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는 건 더 용납할 수 없어요.

너무 뻔뻔하고 이기적입니다. 저를 짓밟고 자기네들만 행복해진다는 건요. 남편의 마음이 정말로 저에게 돌아와 예전같은 관계가 되는 게 제가 원하는 모습인데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남편분이 결혼생활에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고 다른 여자에게로 마음이 향해 짓밟힌 기분을 느끼시는군요. 그래서 화도 많이 나시고 속상하실 것 같습니다.

남편분의 외도에 대해 짓밟힘을 경험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짓밟힘이란 눌리고 무시당하는 거죠. 무엇이 무시당했을까요? 아마도 질문자님이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다하셨던 정성과 최선, 책임감, 성실성, 배우자만을 바라봤던 한결같음 등과 같은 많은 노력들일 것입니다. 질문자님은 그렇게 결혼생활의 유지를 위해 많은 것들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오셨습니다. 그런데 남편분은 그런 노력을 함께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들을 무시한 채 다른 여자를 찾게 되었으니 얼마나 억울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저희는 이 사실도 함께 드러내야 할 것 같습니다. 질문자님의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질문자님이 짓밟혔다고 경험하시는 그 강도와 동일한 만큼의, 저희가 위에서 함께 살펴본 강도 높은 최선의 노력이 필요했다는 사실을요. 즉, 힘이 많이 들었다는 얘기입니다.

‘결혼생활이라는 게 원래 누구나 힘들지만 상호적으로 그런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게 아니냐?’라고 물으신다면, 그 말이 전적으로 맞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분은 그렇게 힘든 것이 전적으로 맞는 결혼생활을 포기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는 정말로 힘들었다는 것이죠.

물론 질문자님께서 힘들게 만드신 것은 아닙니다. 질문자님과 똑같이, 남편분 또한 결혼생활을 통해 본인의 어떠한 소망을 이루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들인 힘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소망의 충족치보다 힘이 더 많이 들어간다고 경험되기에 멈추고 싶어한 것뿐이고요. 그렇게 보자면, 남편분 또한 결혼이라는 것에, 아무리 힘을 들여도 잘 도달되지 않는 거대한 소망을 품고 계셨다는 것이죠.

너무나 잘 경험하신 것처럼, 남편분을 책임과 의무라는 대의로는 결코 붙잡을 수 없습니다. 마음은 원래 그런 당위적 의무사항들로는 잡을 수 없어요. 마음은 마음의 소망을 들어주는 이에게만 기꺼이 스스로 붙잡힙니다.

그렇다면 질문자님께서 관심을 가지셔야 할 지점은, 남편분이 결혼생활에 대해 품고 계셨던 그 거대한 소망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일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채울 수 없어, 결국은 다른 여자와의 관계에서 채우고자 꿈을 꾸었던 그 소망이 무엇인지를요. 남편분이 단순히 의무감에의 상기 때문에 집을 나가지 않으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다른 여자와 또 같은 공동생활의 관계에 들어가도, 자신의 거대한 소망이 채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어렴풋이 알고 계신 까닭일 것입니다.

우리가 자의적으로 우리에게서 떠난 마음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들리게는 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이 들리면 우리는 그 마음의 소망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소망이 내 것처럼 너무나 소중하고 애틋하게 느껴지면, 우리는 그 소망을 기꺼이 들어줄 수 있게 됩니다.

바로 그때가 우리에게서 떠나갔던 마음이, 자신의 소망을 들어줄 이가 이 세상에 출현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스스로 돌아올 채비를 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불교신문3222호/2016년7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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