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존재는 거칠 게 없다

생명이 없다고 여기고 사니

무슨 남의 눈치를 보며

이익과 명예에 탐심을 낼까

옳은 일에 몸을 사르는 것조차

대수롭지 않을 테다

스님은 그렇게

세상 번뇌에 물들지 않으면서

번뇌에 뛰어드는 존재다

경남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꽃상여가 나갔다.

마을 청년들이 상여를 매고, 상주는 지팡이를 짚고, 삼베옷을 입고 뒤따랐다. 머리에는 삼베 관을 썼다. 직계 가족인 여성들도 검은 치마에 흰옷으로 상여를 따랐다. 옛날처럼 상여머리에서 상엿소리꾼의 요령소리와 구슬픈 만가는 없었다. 따라서 상여를 매고 가던 상여꾼들의 후렴을 넣는 구슬픈 상엿소리도 없었지만, 흔들리는 꽃상여 곱기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었다. 상갓집 사람들은 마을 어귀에서 노제를 지내며 고인이 살았던 이생과의 작별을 대신 고하고, 선산으로 힘겨운 걸음을 옮겼다. 바람에 앞서가던 붉은 깃발이 펄럭였다.

전남 진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상갓집에서 잔치처럼 돼지를 잡고, 술을 내면 마을 사람들은 북장단과 장고가락에 맞춰 춤도 추고, 꽹과리도 울렸다고 한다. 사람들은 슬픔 속에서 오히려 흥을 일으켜 망자나 남은 가족들을 위로했을 터였다. 이제는 보기 힘든 독특한 장례문화가 되었다.

도반에게 꽃상여 봤다는 얘기를 했더니, 자신도 속가의 부모님을 위해 며칠 전 수의를 장만해드렸다고 한다. 살아계실 적에 수의를 해드리면 오래 사신다면서 환히 웃는다. 출가한 수행자지만 자식의 도리인 부모님 걱정마저 아예 놓고 살겠는가. 이 또한 지극한 보살심의 단면이 아니겠는가 싶었다.

수의 얘기를 하고 보니, 내게도 수의 옷감이 있었다. 벌써 5년이 된 삼베 열 필이 보자기에 그대로 싸여 있었다. 5년 전 용지암에 있을 때, 마을 할머니 한 분이 보따리를 들고 내게 찾아오셨다. 자식들이 수의를 하려고 삼베 원단을 끊어 왔는데, 그 양이 많아 수의를 하고도 넉넉하게 남더라는 것이다. 고민하다가 물을 들여 스님 승복으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는 유모차를 밀면서 후들거리는 발걸음으로 오셨는데, 차마 법당에 올라갈 힘이 없어 밖에서 부처님께 합장을 하고 나를 부르셨다.

그렇게 할머님이 풀어놓은 보따리는 고급삼베였다. 모시 원단도 넉넉하게 함께 가져오셨다. 먹물을 들여 승복을 해 입고 여름을 시원하게 나셨으면 하는 할머님의 바람이었다. 할머님의 정성을 생각해서 승복을 해 입어야 했지만, 그 비용이 고급 옷값만큼이나 드는지라 차일피일 미뤘던 게 5년이 흘렀다. 올해도 그냥 지나갈 참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원고료를 적잖이 받은 게 있어서 큰 맘 먹고 옷을 맞췄다. 남은 원단으로 도반의 적삼도 하나 맞췄다. 나의 작은 회향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중은 어차피 수의를 입고 사는 존재다. 중의 가사를 다른 말로 ‘분소의(糞掃衣)’라고 하는데, 죽은 시체를 감쌌던 천을 빨아 입은 것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죽은 자를 감쌌던 천을 입고 사는 중은 세상에서 이미 죽은 존재로 사는 사람이다. 죽은 존재는 거칠 게 없다. 생명이 없다고 여기고 사니 무슨 남의 눈치를 보며, 이익과 명예에 탐심을 낼까. 옳은 일에는 몸을 사르는 것조차 대수롭지 않을 테다. 그렇게 세상 번뇌에 물들지 않으면서, 번뇌에 뛰어드는 존재다. 어차피 수의 한 벌 입고 사는 존재니까.

그런데, 기도를 하다 “나는 아직도 벌겋게 살아 숨 쉬는구나!” 하는 절절한 반성 하나 문득 얻는다.

[불교신문3221호/2016년7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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