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심과 연민이 폭력의 악순환 끊는다

희망적인 대승계 가르침 실천하면

원한 키워 보복하는 일도 그치고

‘불성’에 대한 안목 갖춘다면

스스로 목숨끊을 까닭도 없어져…

전 세계적으로 종교적인 이유나 인종·이념적인 이유로 인해 연일 각종 테러로 수 명에서 수십 명이 살해되거나 부상당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폭력으로 키워진 각종 원한은 또 다른 원한을 낳는다. 외적인 폭력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일이 살해라면 스스로 의지에 의해 목숨을 끊는 일은 자살이라 할 수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각종 폭력으로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죽이는 일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모두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대승계법의 하나인 <범망경보살계>에서는 설사 부모를 죽인 원수라 할지라도 원수 갚고자 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 보살심이라고 했다. 원한으로 원수 갚고자 하는 마음을 쉬지 않으면 원한은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9·11테러사건 이후에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악의 뿌리를 뽑기 위하여 많은 전쟁을 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많은 생명이 희생되는 모습을 보며 2003년 봄에 홍콩을 방문했을 때 정공(淨空)법사를 비롯한 중국 스님들이 전쟁으로는 테러를 근절시킬 수 없으니 다른 방법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고 미국 백악관에 조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불교가 세계평화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로 크게 부러웠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폭력과 살해의 악순환을 끊는 일은 안정된 마음으로 사안의 근본원인을 직시하고 자비심과 연민으로 용서하며 화해할 때 가능해 질 것이다.

자살의 경우도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운 병에 걸리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을 찾지 못하거나, 우울증·조울증 등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이 죽음에 이르도록 한 경우가 적지 않다. <사분율장>을 참고로 보면 살인계(殺人戒)를 제정하는 연기부분에 부정관 수행의 부작용으로 자살을 원하고 죽여주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살해하는 일이 발생한다. 부정관(不淨觀)은 욕망을 다스리기 위해 육신의 더러움을 관찰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의지해서 초기 승가는 수행을 했고 그 인연으로 육신을 싫어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부정관 수행을 통해서 육신에 대한 무상함을 절실히 느낀 나머지 스스로 죽기를 희망하거나 죽음을 찬탄하기도 했고, 스스로 칼을 구해 목을 베거나 독약을 먹기도 하며 심지어는 서로 목숨을 해치는 일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부작용을 알게 된 부처님께서는 부정관에 대한 대안으로 수식관(數息觀)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는 방법을 지도하셨다. 수식관은 산란한 마음을 집중시키기 위해 들숨과 날숨에 마음을 집중해서 숨이 들어올 때는 숨이 들어오는 일에 집중하고 숨이 나갈 때는 숨이 나가는 일에 집중해서 번뇌를 끊는 방법이다.

부처님께서는 자살사건에 대하여 “어찌하여 비구들이 칼을 구해 자살을 하고 죽음을 찬탄하고 자살하기를 권한단 말이냐! 비구이거나 사람이거나 혹은 사람을 닮은 이들이 고의로 남의 목숨을 빼앗거나 칼을 주어 죽음을 권하거나 찬탄하여 죽게 한다면 그들은 더 이상 승가와 함께 할 수 없는 바라이죄를 범한 것”이라고 살인계의 계목을 제정하셨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 터전 위에서 무엇을 성취할까를 생각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어떤 마음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너무도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바라밀실천을 서원한 보살심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어떠한 조건도 성립하지 않는다. 모두가 무량한 발전이 가능한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대승계의 특징 중의 하나인 삼취정계 가운데 섭선법계와 섭중생계를 실천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바탕으로 삶을 살아간다면 일상 모두가 무량한 공덕을 쌓는 일이 되고, 대립과 갈등을 풀어내는 일이 되므로 스스로의 삶을 포기할 그 어떤 조건도 성립되지 않는다.

이렇듯 적극적이고 희망적인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실천하는 사회가 된다면 원한을 키워 원수 갚고 보복하는 일도 그치게 되고, 스스로 구족한 불성(佛性)에 대한 안목을 갖춘다면 소극적인 삶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발생할 까닭이 없어진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널리 유통되어 이 땅에 오래도록 그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교신문3220호/2016년7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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