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감기 전까지 경전 품에 안고…

 

“보살, 꿈은 꿈일 뿐이야!” 나는 엄마의 얼굴을 외면한 채 센 어투로 말했다. “그래도 스님! 꿈이 너무 선명해서….” 엄마의 말에 나는 또다시 쏴붙이듯 말했다. “그럼 부처님이 거짓말 하셨을까봐? 지옥과 극락이 없겠어요? 뭘 그런 걸 갖고 사사를 떠세요?” 출가 후 늦은 나이에 대학을 마치고 1990년대 초 경주 안강의 한 산골 토굴에서 1년간 살았었다. 그때 모친은 ‘스님으로 사는 딸’을 돕겠다고 1년을 함께 했다. 절도 아니고 암자도 아니었다. 맨땅에 콘테이너를 세워놓고 작은 부처님 한분 모시고 살았다. 그곳에서 오늘처럼 백중을 맞았다. 신도라고는 산골에 할매 서너분과 모친 뿐이었다. 그래도 나물을 삶아 진수를 마련하고 과일 몇 개 사올리고 백중 지장기도를 했다.

‘콘테이너 법당’에서 백중기도를 하려니 부처님 앞에 죄송한 마음도 앞섰지만, 부처님 향한 신심 만큼은 지금보다 더 지극했던 것 같다. 어머니가 꿈이야기를 하신 날도 바로 백중날 아침이었다. 새벽녘 백중기도를 모실 때 어머니는 ‘스님 딸’의 목탁소리를 들으면서 그런 꿈을 꾸셨지 싶다. 어머니의 꿈얘기는 지금도 생생하다. “스님! 진짜 지옥과 극락이 있는지, 넓은 마당같은 곳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지. 마치 일제강점기 순사같이 생긴 사람 몇몇이서 무슨 장부책을 들고 높은 소리로 호명하면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 나뉘어서 자기 갈 길을 가는 거야. 하늘로 가는 사람들은 인물도 좋고 옷도 깨끗하게 입고 웃으며 가는데, 어느 수렁같은 데로 가는 사람은 표정이 참말로 안좋더라고.” 여기까지 신나게 이야기를 하시는데 나는 어머니의 말씀길을 확 잘라냈다. “쓰잘데기 없는 소리 그만 하시고 공양이나 하세요. 다 사사스러운 중생심에 꿈을 만들어 내는 거라니까요!”

내 어머니는 1960년대 내가 입산하기 전부터 불심 돈독한 불자셨다. ‘약도화’라는 불명을 받을 정도로 신심이 남달랐다. 천수경이니 법성게를 구성지게 외우시는 것을 들으면서 자랐다. 어머니는 스님이 된 딸에게 종종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도 스님이 되고 싶었는데, 입산하는 길을 몰라서 스님이 되지 못하고…. 다음생에는 스님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내가 무슨 복에….”

모친은 유난히 ‘스님 딸’인 나에 대한 애정이 컸다. 내가 뱃속에 있을 때 태몽으로 봐서 아들인줄 알고 속내로 기대를 엄청 하셨다고 한다. 세 번째 또다시 낳은 딸에게 실망한 마음에 소홀히 키우셨다는 자책감으로 언제나 마음 한켠이 아프셨나 보다. 그런 딸이 입산출가하자 마음에는 더욱 짠하고 애틋한 마음이 자리잡았을지 모른다. 어머니는 입산하고 처소를 옮길 때마다 나를 찾아오셨다. 목련존자님께서는 어머님을 구제하기 위해 지옥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스님인 나는 엄마에게 어찌 그리도 냉정하고 차가웠을까. 살아계셨을 때 좀더 따뜻하게 잘 해드리지 못한 것이 내내 후회로 남는다.

어머니는 생전에 이런말을 입버릇처럼 하셨다. “스님, 부모가 과수원 사준다고 할 때 얼른 받아서 좋은 절이라도 지어야지, 나중에 늙고 병들면 어떻게 살려고?” 나는 그때도 공부에 염사(念死)가 깊어서 절을 짓겠다는 생각이 아예 없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절이 필요하면 부처님이 계시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부처님께서 마땅히 지어주시겠지요.” 그때도 당돌하게 말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생애 마지막까지 아들댁에서 살면서 경전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책장에 손때가 묻어나도록 주야로 기도만 하셨다고 한다. 이 땅의 모든 어머니의 삶은 승속을 떠나 오직 자식걱정으로 점철돼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어머니의 쉼없는 기도원력이 마중물이 되어 지금 이곳 마포 성림사가 중창됐다.

스님이지만 나도 몸이 아프면 이 나이에도 엄마가 보고싶다. 힘든 일이 생기면 유독 더 그립다. 나이가 들수록 부모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이제 철이 들은 것일까. 백중날이 오면 그날 아침처럼 장황한 꿈이야기를 펼쳐놓았던 엄마가 더욱 생각난다.

[불교신문3215호/2016년7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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