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지 71주년을 맞았다. 우리나라 성인의 기대수명이 평균 82.3세이니, 한 사람의 인생 전체와 견주어도 별반 차이가 없을 만큼 오랜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일제강점기의 한(恨)을 풀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비롯해 원폭피해자, 강제동원 피해자 등이 대표적인 이들이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반인륜적 범죄피해자로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고령에다가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와 배상을 촉구해왔다. 특히 위안부 할머니와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펼치는 수요집회가 1236회를 넘어섰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문제해결에 가장 앞장서야 할 한일 양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위안부 문제가 타결됐다고 합의했지만 법적 책임부분이 명확하지 않은 데다가 ‘불가역적’ 등의 표현까지 써가며 더 이상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고 해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기도 했다. 게다가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 23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사업에 대한 내년도 예산을 전액 삭감한다고 밝혔다.

세계기록유산 등재사업을 위해 올해 4억4000만원을 배정했음에도 6개월이 흐른 지금까지 단 10원도 집행하지 않고 있다. 강 장관은 그 이유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정부가 아닌 민간이 추진하는 게 기본정신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는 지난 2013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위안부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사업을 추진해 온 여성가족부의 정책과도 정면 배치되는 모순점을 안고 있다. 전임 여성부 장관들이 등재사업 추진계획을 수차례 밝혀오는 등 야심차게 추진해 왔던 게 사실이다. 지난해 12월 한일 외교장관 회담 이후 입장이 180도 바뀜으로써 ‘이면합의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기시다 일본 외무상은 사실상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사업 추진 여부가 한일 외교장관 회담의 합의 이행과 연관성이 있다고 언급해 왔다. 피해국이 가해국의 눈치를 보고 있는 형국이다.

강은희 장관의 정부차원의 등재 중단 발표일인 23일에도 한 명의 할머니가 전날 밤에 별세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이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41명에 불과하다. 더 이상 일본의 눈치를 볼 게 아니라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아픔을 외면해선 안 될 일이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할머니들이 살아 계실 때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아낼 수 있도록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 전환을 재차 촉구한다.

[불교신문3213호/2016년6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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