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

기록물 유네스코등재 예산삭감은

역사 지우기로 밖에 볼 수 없어

미집행 여가부 예산 다시 찾아야 

한국 정부가 스스로 역사와 인권에 눈감으려 한다. 올해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추진 사업으로 확보된 예산을 집행하지 않고, 내년도 예산안 편성과정에서 사업지원비 4억4000만원을 전액 삭감한 것은 한국 정부의 위안부 역사 지우기로 밖에 볼 수 없다. 피해자들과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주도는 처음부터 한계를 갖고 있었다. 첫째, 정부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를 충분히 갖고 있지 못했다. 민간이 보유했던 자료가 더 많은 상태였다. 둘째 그동안 민간에서 자료를 확보하고 전문성을 갖춰 주도해왔던 등재 사업을 연구소조차 갖추지 못한 정부가 주도하겠다고 주장한 것은 누가 봐도 일회성 성과주의였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셋째, 일본의 방해 로비와 저지를 피하고 전 세계인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민간 중심의 공동 등재를 해야 한다.

이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13년부터 유네스코 등재사업을 주도했다.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들은 위안부 피해자의 참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한 유네스코 기록물 등재 사업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했다. 관련 예산도 편성했다. 별도의 추진팀도 꾸릴 정도로 의욕적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한일 위안부 합의문이 발표되면서 정부는 180도 태도를 바꿨다.

이 때문에 이번 예산 중단은 정부의 무책임과 성과주의 정책의 한계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또한 지난해 있었던 한일 위안부 합의안 발표 이후 정부 스스로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사업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피해국인 한국 정부가 가해국 일본 정부의 눈치를 보는 꼴이 됐다.

등재 주체인 한국과 중국 등 피해 8개국의 시민단체 14곳이 연대한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한 국제연대위원회’는 지난 1일 “위안부 피해자가 용기를 내 과거 사실을 알린 게 정의를 향한 첫걸음이었다는 점을 기리고자 11개국 자료를 모아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라는 이름으로 등재를 추진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국제연대위는 피해자 증언 기록을 비롯해 위안부 운영 사실을 증명할 사진과 녹음테이프, 문서 등 2700여 건을 등재 신청했다. 위원회 측은 내년 10월 세계기록유산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제 정부 지원 없이 등재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내년 10월 등재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사무실 운영비, 국제 세미나 및 전시회, 자료 보완, 등재 홍보 등의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데 예산이 갑자기 삭감되면, 재정적 어려움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제연대위원회 한국위원회에서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민간이나 각 단체가 등재 사업을 위한 모금을 분담하는 것을 논의했다.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은 2016년 집행되지 않은 여가부 예산을 찾아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에 대해 나치 전범들의 죄를 묻는 국제재판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며, 폴란드 등 유럽 각국에 실재했던 유태인 강제수용소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대로 보존돼 전쟁의 참혹함을 상상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 반전·평화운동의 살아있는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우리는 상기해야한다.

[불교신문3213호/2016년6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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