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 / 파리의 부처님오신날

파리 길상사 주지 혜원스님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불자들과 함께 한 모습.

세계 곳곳에서 부처님 탄신일을 맞이하며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일요일인 지난 15일 프랑스 파리 길상사 야외 정원에서도 100여 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한 가운데 소박한 봉축 행사가 열렸다. 오색의 청정한 연꽃등이 휘날리며 경내를 장엄했다.

매달 두 번 열리는 일요 정기법회에 맞춰 사찰에 나오시는 불자님들과 함께 법당 안의 연꽃등을 조금씩 새롭게 만들어 왔다. 주중에는 홀로 기도정진하며 틈틈이 정원을 가꿔 왔다. 이렇듯 몇 달 전부터 차근히 준비해온 부처님오신날 봉축 행사는 화창하고 따뜻한 봄날의 햇살까지 한 몫 더 해 줌으로써 봉축 행사는 더욱 여법하게 치를 수 있었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에는 예전보다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함으로써 봉축법요식 자리가 더 빛냈다. 봉축 행사는 아기 부처님을 목욕 시키는 관불의식과 삼귀의 등의 불교 의식으로 시작됐다. 길상사 연혁 보고, 봉축 법문, 그리고 첼로와 피아노 이중주로 마련된 봉축 축하연주 등이 뒤이어 펼쳐졌다. 봉축행사 후에는 불자들이 정성껏 준비해 준 공양물로 정원에 둘러 앉아 점심공양을 나눴다. 공양 후에도 프랑스 현지인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꽃등 만들기 체험 강습을 통해 간단하게나마 한국불교전통문화를 체험하는 시간도 가졌다.

파리 길상사는 1991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프랑스에서 재가불자들의 모임이 창단되면서 시작됐다. 이 모임을 기점으로 프랑스 땅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 정진할 수 있는 여법한 도량을 마련하자고 서원했다. 법정스님께서 중심이 돼 불자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모았으며, 쓰러져가는 집을 여법한 부처님 도량으로 단장했다. 이같은 노력을 통해 1993년 10월 10일 길상사라는 이름으로 개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올해로 개원 23주년을 맞이하는 길상사는 프랑스에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많은 불자님들이 법정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정신을 계승하고자 힘을 모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법요식 당일 오후, 뜰 한켠에 지금은 폐가로 남아있는 소림헌 건물을 보면서 잠깐 상념에 잠기게 됐다. 소림헌은 법정스님께서 직접 이름을 지으시고 생전에 이 곳을 찾으실 때마다 묵으셨던 공간이기도 하다. 소림헌을 바라보니 법정스님과 스님께서 병상에서 보내주신 편지 구절이 떠올랐다. “그 곳을 다녀온 사람들마다 아주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 스님께 고마운 마음입니다. 나도 건강이 좋아지면 그 곳에 한번 다녀올까 합니다. 오래 계시면서 길상도량을 잘 가꾸어 주기 바랍니다.” 이 편지 구절은 허약한 체질인 본인이 언어와 문화가 낯선 땅에서 홀로 누룽지를 끓여 먹으면서 이어가고 있는 학업과 포교활동을 접고 당장이라도 귀국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큰 버팀목이 되어 줬다. 특히 이 도량이 창건 당시의 본래 정신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위로하며 경책의 채찍이 되어준 구절이기도 하다.

이 도량이 한국교포들에게는 타향살이의 어려움을 인내할 수 있는 마음의 귀의처이자, 프랑스 현지인들에게는 아름다운 한국불교문화를 접할 수 있는 배움의 터전일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부처님 법의 꽃비가 풍성히 내릴 수 있는 시절인연이 머지않아 도래하길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다시 한번 발원해 본다. 또한 부처님오신 날을 맞이해 세계 곳곳에서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교민들과 불자들이 각자 살아가는 곳에서 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나는 속 뜰을 일구어 가시길 간절히 발원한다.

[불교신문3204호/2016년5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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