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 원하는 대로 얻었다고 정말 행복할까

실상 모르면 욕심에 얽매이게 돼

버리는 즐거움 또한 알기 어려워

재물은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

바르게 구해 써도 집착 없어야… 

<중아함경> 행욕품에 급고독 장자가 “세존이시여, 세상에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몇이나 있나이까?”라고 여쭙는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에 욕심 없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욕심 자체보다는 행태에 대한 물음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인지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거사여, 세상에 욕심 부리는 사람이 대략 열 가지가 있다” 하면서 일일이 열거합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만일 법답거나 법답지 않게 재물을 구해 타인에게 이바지 하지도 않고, 자기도 쓰지 않고, 또한 베풀어 복도 짓지 않으면 이것은 다 악(惡)이 있나니 욕심 부리는 중의 최하이니라.” 또 “만일 법답게 재물을 구하여 자기 스스로 수고로이 얻은 것을 남에게도 주고, 또 자기도 쓰면서 널리 베풀어 복까지 지으면 이것은 다 덕(德)이 있나니 욕심 부리는 중의 최상이니라.”

어떤 자는 욕심을 부리는데 규칙(法)도 아니요 도리(道)도 없이 재물을 구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법답고 도로써 재물을 구하려 할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재물을 구하는 수단과 목적에 대한 이야기로 수단이 올바르지 못하다면 욕심에 끌려 다닐 것이고, 목적이 바르다면 욕망을 다스릴 것입니다. 오욕에서 재물욕심의 설명을 보면 ‘사람은 재물로써 몸을 기르는 밑천으로 삼기 때문에 그것을 욕심내어 구해서 좋아하고 집착하므로 버리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재물을 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입니다. 그렇다고 막상 원하는 대로 되었다고 해서 정말 행복할까 하는 부분에서 현명한 사람은 아마 미소 지을 것 같습니다. 뭐든지 있는 만큼 번뇌가 따르기 때문인데 없으면 없어서 걱정, 있으면 있어서 걱정하는 것이 소유에 대한 우리들의 고민이 아닐까 합니다.

<불설대아미타경>에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합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므로 빈부귀천 남녀노소가 한결같이 걱정하는 것은 재물이어서 생각을 거듭할수록 마음에 부림(使役)을 당해 잠시도 편할 때가 없으니, 밭이 있기에 밭 걱정, 집이 있기에 집 걱정, 우마 따위의 가축과 의식(衣食) 세간(什物)도 걱정거리 아님이 없다. 귀인이나 부호라 할지라도 이런 근심은 있게 마련이니, 그것이 마음에 맺혀 뜻대로 살지 못한다. 또 빈궁하면 늘 가난에 쪼들린 나머지 밭이 없으면 밭이 있었으면 하고 걱정, 집이 없으면 집이 있었으면 하고 걱정, 우마 따위의 가축과 의식 집물이 없으면 그것들이 있었으면 하고 걱정하는 바, 마침 하나가 있으면 다른 하나가 결여하여 아등바등하며 쉴 때가 없게 마련이다. 이렇게 살아가므로 진노에 빠져들어 재물을 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뇌 속에서 벗어날 때가 없는 것이니 정말 딱한 일이다. 이제 말하노니, 세상 일 중 좋은 것을 택해 부지런히 실천하도록 하라. 애욕이나 영화는 영구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언젠가는 떠나게 되어 있다.”

내용을 가만히 보면 재물이 있으나 없으나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생심은 대체로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을 더 좋아할 것입니다. <심지관경>에 “만약 출가하여 계를 지키지 않고 세상의 쾌락을 탐하여 정견(正見)을 잃고 사견(邪見)의 숲에 빠져든다면, 무수한 사람을 이끌어 함정에 빠뜨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若人出家不護禁戒 貪着世樂毁佛戒寶 或失正見入邪見林 引無量人墮大深坑)”고 할 정도로 무소유를 지향하는 수행자에게도 소유욕은 절제하기 어려운 번뇌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욕에서 재물뿐만 아니라 이성, 음식, 명예, 수면과 모양이나 빛깔(色), 소리(聲), 향기(香), 맛(味), 감촉(觸)의 구별이 있는바 각자의 성향에 따라 좋아하는 것이 다를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거움 가운데 으뜸(所樂之處 心即染著)이라 합니다. 소리에 재미를 느낀다면 그것이 제일이라 할 것입니다. 만약 재미가 없다면 분명히 애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도 이와 견주어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애를 쓰면서 집착하더라도 때가 되면 사라지는 것이 이치입니다. 이것을 <심지관경>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령 목숨이 백 살을 채우며 칠보(七寶)가 갖추어져 온갖 쾌락을 누린다 해도, 염라대왕(閻魔)의 사자가 이르면 무상(無常)을 면하지 못한다(假使壽年滿一百歲 七寶具足受諸快樂 琰魔使至不免無常).”

[불교신문3203호/2016년5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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