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가 오늘이 생일이라요”

태어난 시까지 부처님과 같아

어머니는 줄곧 걱정이 많으셨다

여자가 너무 큰 날에 태어나면

어려운 일이 많다는 것이

어머니의 상식이었다

 

그래서 열 살 때까지

생일날이면 어김없이

나를 절에 데리고 가셨다 

거리에 꽃처럼 어여쁜 등(燈)이 줄줄이 매달려 있다. 5월은 허공도 꽃밭인 모양이다. 저기 저렇게 화사하게 걸려있는 것은 꿈이요 희망이요 소망인 것이리라. 그렇다. 소망이 걸려있으니 꽃의 향기와 또다른 인간 내면의 향이 등마다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듯하다. 무슨 날이 오고 있나보다.

무슨 날일까. 잊으려 해도 결코 잊지 못하게 거리마다 등이 걸려 고개를 들어 올리며 우러르며 다시 풀리지 않는 소망을 비는 그런 큰 날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날을 기다리며 마음을 돋우고 그날이 지나가면 다시 마음을 간추리는 것은 이미 우리는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허공 꽃들에 향기가 나는 것은 단지 소망이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향기는 자비와 용서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나의 지복을 위한 등이 아니라 누구에겐가 자비를 베풀고 용서를 비는 그 마음의 향이 등에 실려 꽃향을 피우는 것이리라.

부처님오신날인 음력 사월초파일은 나의 생일이다. 태어난 시(時)까지 부처님과 같아 어머니는 줄곧 걱정이 많으셨다. 여자가 너무 큰 날에 태어나면 어려운 일이 많다는 것이 어머니의 상식이었다. 어머니는 열 살까지 생일날이면 어김없이 나를 절에 데리고 가셨다. 한국전쟁 때를 제외하곤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 당시 부처님오신날엔 절에서 어르신들이 바가지에 산나물을 넣어 밥을 비벼먹었는데 어머니는 내 액운이라도 팔아버리듯 할머니들 틈새에서 큰소리로 말하셨다.

“야가 오늘이 생일이라요.” 그러면 어른들이 밥 한 숟가락씩을 내 바가지에 쏟아 부었다. “많이 묵어”라고 하시면서…. 그리고 “아가! 복 많이 받아라”고 덕담을 해주기도 했다. 아마 그 복덕이 오늘까지 이어져 내가 밥은 안 굶고 집을 지니고 사는 것인지 모른다.

어릴 땐 초파일이 생일인 것이 부끄러웠다. 절에 가야하는 부담 또한 싫어지는 이유가 충분했다. 그러나 과연 어머니 상식처럼 여자는 큰 날에 태어나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인공지능이 인간을 끌어가고 있는 시대에 여자운운이 어울리지도 않지만 생일날이 되면 어머니가 딸의 미래를 걱정한 이유는 단지 무슨 액운이라도 당할까 염려 때문이리라.

‘여자가 괘씸하게 부처님생신에 태어나다니…’라고 호령이라도 치실까 걱정하신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큰 날에 태어났으므로 액운마저도 놀라 달아나거나 그런 액운쯤 쉽게 날려버릴 수 있는 내적인 힘을 가동하는 운전능력이 주어졌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아름다운 소망의 등이 너울대는 거리를 걸으며 나는 말한다. ‘어머니! 내 인생의 모든 고통은 실로 생일 때문은 분명 아니었어요. 그거 하나는 확신합니다. 어머니!’

일흔이 넘은 생일을 맞으며 열 살까지 절에서 절밥을 얻어먹은 그 행운이야말로 오늘 나를 존재하는 정신적 힘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할머니들이 내 바가지에 밥 한술씩 떠주신 그런 행운은 누구나 받는 것이 아니다. 큰 날에 태어난 내가 너무 부러워 누군가가 슬쩍 나쁠 것이라고 흘린 거짓부렁이가 분명하지 않을까.

[불교신문3199호/2016년5월4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