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강원도 고성

동해안 최북단 고성 겨울바다

화진포엔 이승만, 김일성 별장

금강산 뵈는 통일전망대 ‘눈길’

 

한국전쟁 격전지였던

고성 금강산 건봉사서

부처님께 극락정토 기도 

1998년 11월 동해항에서 금강산으로 떠나는 배가 출발했다. 분단 50년만에 꿈에 그리던 금강산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2003년부터는 고성에서 육로로 금강산을 향하는 길이 열린다. 금강산 관광에 시작된 후 조계종에서도 불교성지인 금강산에 신계사를 복원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에 많은 노력을 했다. 2000년대 초반 금강산 신계사에서 통일연등을 달며 앞으론 보다 쉽게 남북이 왕래하며 점점 통일이 가까워질 것이라고 믿었었다. 

새벽 여명이 밝아 오자 멀리 떠나 있던 고깃배들이 동해 최북단의 대진등대를 길잡이 삼아 항구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해안가를 향해 달려오던 배에서 해녀들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다에 풍덩 뛰어든다. 바닷가 철책에선 군장병이 순찰에 나선다. 갈라진 반도 최북단 고성 대진항의 추운 겨울 새벽풍경이다. 지금은 한적하기만 한 고성엔 몇 해 전 까지만 해도 아침 일찍 금강산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고성은 남북갈등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국전쟁 후 남북이 분단될 때 고성군도 반으로 갈라졌다. 고성군의 주요도시인 고성읍과 장전읍은 북측에 있다.

또 다른 분단의 아픔을 갖고 있는 화진포로 향한다. 새벽에 내리던 안개비가 싸라기눈으로 변했다. 먼저 들른 화진포해수욕장. 고운 모래사장, 낮은 수심, 송림 등으로 유명한 곳이다. 여름엔 붐볐던 바닷가는 겨울엔 황량하기만 하다. 차가운 파도만 철썩인다.

해변 바로 뒤에는 동해 연안에 형성된 석호(潟湖) 가운데 최대 규모인 화진포가 자리하고 있다. 호수의 둘레는 16km에 달한다. 이 곳 화진포에는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의 최고 권력자인 이승만 대통령과 김일성의 별장이 있다. 고성지역은 한국전쟁 당시 수복된 곳으로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7월27일 휴전 협정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을 찾는다. 그것을 기념해 별장이 세워졌다. 한국전쟁 이전엔 김일성 가족이 이후엔 이승만 대통령이 이 곳에서 휴가를 보냈다. 두 별장은 불과 700m 떨어져 있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금강산까지는 25km도 되지 않는다. 비로봉을 비롯해 일만 이천 금강산 화엄만다라를 다시 보고 싶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금강산 건봉사로 향한다. 싸라기눈이 건봉사로 향하면서 제법 굵은 눈으로 변한다. 지난 밤 지역뉴스에서 들었던 영동지역 가뭄을 생각하면 반가운 눈이지만 건봉사로 향하는 길이 쉽지 않다. 군사지역임을 알려주듯 앞 쪽에 군장병을 태운 일명 ‘60트럭’이 천천히 눈길을 달리고 있다. 마지막 미끄러운 고갯길을 힘들게 내려와 건봉사에 도착했다. 만해스님의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지>에 따르면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 7년(520년)에 아도화상이 창건, 이후 도선국사가 중수했고 고려 말에는 나옹스님이 중수했다고 한다.

건봉사에는 등공탑비가 있는데 만일(萬日), 약 27년을 넘게 염불정진을 하는 염불만일회가 신라시대 이곳에서 시작됐으며 782년에는 염불만일회에 참가했던 31인이 아미타불의 가피를 얻어 육신을 버리고 극락왕생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 등공탑비가 세워져 있다. 또한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때 의승병을 기병한 호국도량이며 왜군으로부터 찾아온 부처님 진신치아사리가 모셔져 있기도 하다. 기둥 네 개로 세워진 일주문인 ‘불이문’과 아름다운 홍교(虹橋)인 건봉사 능파교(보물 제1336호)도 유명하다.

불이문을 지나 절을 향해 오르면 왼편에 제법 큰 터가 있다. 그곳에 극락전이 있던 자리이다. 보물로 지정된 능파교는 대웅전 지역과 극락전 지역을 연결하는 다리였다. 한국전쟁 전에 642칸과 보림암 등 18개 부속암자를 거느렸던 대찰이었지만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건봉산 전투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나 1994년 대웅전, 팔상전 등이 복원되었고, 지금도 사찰복원이 계속되고 있다. 능파교를 지나 건봉사 대웅전에서 예전 금강산 신계사에서 통일연등을 걸 때와 같은 기원을 해본다. 건봉사를 나서는 데 사찰입구에 만해스님의 시비가 눈에 들어온다. 님은 갔지만 님을 보내지 않았던 만해스님의 ‘사랑하는 까닭’이 새겨져 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불교신문3175호/2016년2월6일토요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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