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린다는 것

와시다 기요카즈 지음 김경원 옮김불광출판사

편지를 쓴다. 가슴 설레는

상상은 시간과 더불어

부풀어 오른다

날이 밝자마자 쏜살같이

우체통으로 달려단다

우편배달 시간은 아직 멀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실시간으로

메일이나 문자를 주고 받는다

생각할 시간도, 상대방의 글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기다린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이다. 통신의 발달이 우리에게서 기다림의 미학을 빼앗은 것은 아닐까. 사진은 사찰 북카페에서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불교신문 자료사진

“응, 어디야?” “거의 다 왔어.” 전자기기의 발달은 현대사회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사회로 만들었다. 과거 만남을 위한 시간을 정할 필요도 없이, 그때 그때 휴대전화로 연락을 주고 받는 사회가 된 것이다. 편리함이 좋기만 한 것일까. 일본 오사카 대학 총장을 역임한 와시다 기요카즈 교수는 “기다림이 없어지면서 사람들은 감수성을 잃고, 기도와 인내를 잃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기다린다는 것을 잃어버린 사회. 숨가쁘게 달려야만 하는 사회 이면의 담론을 담은 책이 <기다린다는 것>이다.

휴대전화, 이메일이 우리에게 앗아간 대표적인 문명은 ‘편지’다. 과거 편지라는 매체는 연인들의 애를 태웠다. “편지를 쓴다. 가슴 설레는 상상은 시간과 더불어 부풀어 오른다. 겨우 설렘을 가라앉히고 잠자리에 든다해도 날이 밝자마자 쏜살같이 우체통으로 달려간다. 우편배달 시간은 아직도 멀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실시간으로 이메일이나 문자로 편지를 주고 받는다. 생각할 시간도, 상대방의 글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즉흥적으로 답을 보낸다.

와시다 교수는 기다림의 행위를 지금과 구분해서 설명한다. “지금 뭐해?” “지금 갈께”처럼 지금은 조금 전 과거, 잠시 후 미래를 포용한 현재의 상태를 말한다. 반면 기다림은 희망을 내포한다. 기다리는 자체로 스스로를 열어두는 행위라고 저자는 말한다. “기다림의 시간은 우연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우리에게 가져온다. 상대를 기다리면서 갖는 설렘이나 희망과 같은 것이다. 만약 상대가 오지 않을 것을 확신한다면 희망이나 신뢰를 갖고 기다리지는 않는다.”

저자는 기다림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여러 형태를 소재별로 묶어 설명하고 있다. 초조함과 예감, 냉각, 생략, 대기, 교착, 퇴각, 방기, 권태와 공전, 반복 등의 소재다.

“기다림을 지탱해 주는 것은 우선 희망이다. 그 희망이 산산이 부서졌을 때, 그럼에도 기다름을 다른 형식으로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왜일까. 모든 희망의 징조를 단념한 뒤에도 기다림을 스스로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왜일까.” 저자는 그 행위의 이유를 기도에서 찾는다. “실존하는지도 모르고, 답이 없는 상대를 향해 끊임없이 전하는 수취인 없는 편지”같은 기도를 통해 무엇을 얻고 있는가. 그것은 어쩌면 스스로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은 아닐까.

“이처럼 받아줄 곳이 없이 기도하는 사람은 동시에 자신의 존재가치를 믿을수 없게 된다. 반면 기다림을 갖고 있는 사람은 희망을 통해 스스로 마음을 열어가는 방법을 체득한다”는 저자는 기다림을 불편해하지 말고, 오히려 잘 관찰하는 태도를 지니라고 조언한다.

독이 들어간 카레라이스를 먹은 사람들 대다수는 카레 냄새가 살짝 나기만 해도 구토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는 고기 굽는 냄새나 모기소리에 힘들어 한다.(트라우마의 의료인류학)

이런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들에게 저자는 조언한다. “세계를 다시 물들이라”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보다 희망을 지니고, 기다림을 통해 스스로를 완성해 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충고다. 기다리는 습관은 그러한 감수성을 높여주는 좋은 훈련이다. 와시다 교수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일, 어쩔 수 없는 일,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에 대한 감수성을 우리가 언제 잃어버린 것일까. 자신을 초월한 무언가를 따르는 마음가짐을 상실한 원인은 기다림의 철학을 잃어버린 까닭이다”고 진단하고 “천천히 가는 삶, 기다리며 사는 삶을 살라”고 젊은 세대를 향해 말하고 있다.

[불교신문3174호/2016년2월3일수요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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