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

백금남 지음 / 쌤앤파커스

“당신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 불교의 불이(不二)·연기적 사고관을 잘 보여주는 이 한마디, 바로 유마거사의 말이다. <유마힐소설경>에 나오는 유마힐 거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재가 제자로 중인도 바이샬리의 대 자산가였다. 그는 세속에 살지만 불교의 교리에 정통하고 수행이 깊었다. 또한 자비를 실천한 사상가의 삶을 살았던 유마거사는 부처님의 제자들에게도 존경을 받은 인물이다.

백금남 소설가가 유마거사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소설 <유마>를 펴냈다. “내가 지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지옥의 중생 하나라도 건지겠다는 서원,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며 보살정신을 높이 들며 대중불교의 서막을 연 사람 유마를 오랜 시간동안 안고 있었다”는 저자는 “이제야 유마를 소재로 소설을 썼다”며 “이 작품을 쓰기위해 노력했던 세월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수십편의 불교소설을 써온 중견작가가 가장 애착을 느끼며 썼다는 <유마>의 내용은 무엇일까.

“유마가 아무리 말솜씨가 뛰어나다 해도 그는 일개 거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손님 접대를 이렇게 한다면 아무리 큰 그릇이라하더라도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리자는 좁은 집에 의자조차 권하지 않고 문수보살을 보자마자 논쟁을 벌이는 유마가 못마땅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유마가 사리자를 향해 돌연 물었다. “좀 전부터 앉을 자리를 찾고 계신 모양인데 의자가 필요하십니까?” 사리자가 답했다. “솔직히 그러합니다. 나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그러합니다.” “그러시군요. 사리자여, 그대는 이곳에 법을 구하러 오신 건가요? 아니면 의자가 필요해서 오신 건가요?” 말 같잖은 소리에 사리자는 눈을 크게 떴다. “대덕이여,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어떻게 제가 여기에 의자가 필요해서 왔겠습니까?” “그렇겠지요. 법을 구하는 사람은 몸과 목숨을 탐내지 아니하는데, 하물며 앉을 자리이겠습니까. 그러면 아시겠군요. 진리를 구하는 사람은 붓다에게 집착하여 구하지도, 스님들에게 집착하여 구하지도 아니합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그 길을 닦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왜냐면 진리에는 무의미한 희론은 없으니까요.”

이야기의 초점은 10대 제자와 유마의 만남, 그리고 논쟁이다. 고요한 수행처가 아니라 시끄러운 시장바닥을 수행처로 삼아야 한다는 유마는 부처님의 10대 제자와 논쟁을 하며, 그들 한명 한명을 논파해 간다. 그 안에 불교의 가르침이 녹아 있는 소설이다.

유마는 논사이면서, 대승의 사상을 갖고 있었다. 반면 당시 부처님의 제자들은 자신이 깨닫지 못하면 남도 건질 수 없다는 소승의 성향이 강했다. 부처님은 제자들의 근기를 간파하고, 한명씩 유마에게 보내 논쟁을 하게 한다. 소승이 대승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유마를 통해 만들어지는 대목이다. 미륵보살마저 유마에게 논파 당하자 부처님은 마지막으로 문수보살을 유마거사에게 보낸다. 문수보살은 다른 제자와 달랐다. 그는 불법의 요의를 문자로 세울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였다. 결국 두 사람의 논쟁은 시작되고, 결국 같이 부처님 앞으로 나간다. 

백금남 소설가. 1985년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해 <십우도> <출가> <칼의 어록> <관상> 등의 소설을 통해 불교문학을 이끌어 오고 있는 중견 소설가다. 삼성문학상과 대원문학상, KBS문학상, 민음사 올해의 논픽션상(2003) 등을 수상했다.불교신문 자료사진

“그대가 진정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다면, 소승과 대승을 뛰어넘는 그 완전한 깨달음을 제게 보여 주십시오. 그렇다면 저는 오늘 그대에게 했던 질문을 모두 거두고 무례함을 사죄드릴 것이며, 이제라도 진심으로 그대의 경지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유마야, 나를 의심하거나 시험해서는 안된다. 너는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 붓다의 여여한 경지를.” 이 말을 끝으로 부처님은 침묵했다. 오랜 침묵의 끝에 유마거사가 일어나더니 두 신발을 벗어 머리에 얹고는 자리를 떠났다. “누가 저 산 넘어 반야검을 가져오너라.” 유마가 떠나고 나자 부처님은 한마디 말을 남기고 법상을 내려왔다.

결국 이 일화를 통해 교학이 중심이던 불교가 선으로 돌아서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소설은 결론으로 향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난존자는 유마와 부처님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부처님이 입멸하고, 다시 세월이 흘러 유마거사의 소식을 듣는다. 유마는 그 날 이후 가난하고 핍박받는 이들을 위해 힘쓰다가 역병 들린 환자들이 버려진 계곡에서 그들과 함께 하다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백 작가는 “유마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 다만 그가 권위주의적인 붓다의 교단에 도전한 인물로, 스님도 아니요 브라만 계급도 아니었다는 정도가 전해진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면 유마는 배고픈 이에게 먼저 빵 한조각을 주어야 했던 인물”이라고 평가하며 “이 소설이 불교의 진정한 가르침을 대중에게 알리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소설 유마, 300여 쪽 분량의 글이 단숨에 읽히는 것은 백금남 작가의 필력이 곳곳에 녹아있는 까닭이다. 또한 한국불교의 지향점을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 소설이다.

[불교신문3172호/2016년1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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