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왕이 패망하는 백제를 위해 대군을 이끌고 큐슈로 온 것은 남편의 나라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 백제 멸망 때 일본에 등장한 천황의 팔각릉은 오늘날 일본 황실이 백제 무왕의 후손임을 증명하는 비밀코드였다.”

2009년 1월 익산 미륵사지 서탑 정비과정에서 사리를 봉안한 사연을 적은 사리봉안기(금판)가 나왔다. 이를 통해 백제 무왕에게는 자신이 신라에 가서 데려온 선화공주 외에 다른 왕후인 사택왕후가 있었고, 이 탑이 639년에 세워졌다는 연대가 밝혀지게 됐다. 그런데 이 무렵 일본에서도 왕(서명천황)이 백제천 옆에 궁궐을 세우고 절을 만들고 탑을 세운 것으로 나오는데, 그때가 익산 미륵사 서탑을 세운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당시 백제에서는 대란이 일어나 왕의 어머니와 왕자, 공주들이 추방된다. 이후 일본에서 천황부터 증손자에 이르는 천황들의 무덤이 팔각이라는 장식을 두른, 전혀 다른 무덤이 조성됐다.

<일본 천황은 백제 무왕의 자손>의 저자 이동식 씨는 각각 별개로 생각되던 일련의 사건 속에서 의자왕의 집권, 왕의 어머니의 추방, 팔각릉의 조성 등이 서로 연관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륵사 서탑에 사리를 봉안한 사택왕후와 그 아들, 공주 등이 의자왕에게 밀려 일본으로 망명했으며 이들은 당시 일본을 지배하던 호족 소가 씨를 대신해 왕권을 차지한 이후 자신들의 출신을 장엄화하기 위해 팔각릉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무덤을 쓴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는 곧 현 일본의 천황가가 바로 백제 무왕의 후손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한 저자는 KBS에서 역사방면 전문기자로 활동한 언론인으로 역사 다큐멘터리 제작을 담당했다. 저자는 2009년 미륵사 서탑 사리봉안기의 발굴기사 이후 일본에서의 움직임을 추적해 마침내 7세기에서 8세기 한일 두 나라 역사가 이렇게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음을 밝혀냈다. 저자는 “일본의 팔각릉이 백제와 이렇게 연결된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제 백제 역사가 올바르게 복원되면 일본 역사도 제대로 살릴 수 있고 우리 고대역사도 되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불교신문3162호/2015년12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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