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는

지금 누려야할 행복을

유보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짜여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을

만끽할 수 있도록

사회분위기와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늘을 소중히 여기고 행복하게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이 노인인구 대비 48.1%로, OECD국가 중 최하위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노인빈곤율이 높을까요? 그것은 우리나라 노인들이 젊었을 때 자신의 행복을 남에게 저장하거나 미래에 저장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행복을 남에게 저장한 대표적 사례는 밤새워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벌고, 그렇게 번 돈을 몽땅 자식교육에 투자한 경우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식이 출세하면 그때 자신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자식이 출세해서 행복해진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식에게 모든 것을 투자하느라 노후대비를 하지 못해 노후를 빈곤과 질병 속에서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식교육을 위해 자식을 부인과 함께 외국으로 내보내고 혼자 국내에 남아 죽어라고 돈을 벌어 교육비를 송금하면서 자신의 행복을 자식에게 저장하고 살아가는 기러기 아빠들이 많다고 합니다.

다음은 자신의 행복을 미래에 저장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금 이대로는 행복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미래의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라고 믿는 것들을 얻기 위해 안달복달합니다. 이러한 삶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계속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처럼 고단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심적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연간 약 1만5000여 명이 자살하고 있으며,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0.4명으로, 이는 부끄럽게도 OECD국가 중에서 1위입니다. 새벽별을 보고 출근을 했다가 자정 무렵이 돼 퇴근합니다. 휴일도 없이 일하며, 오늘 누려야 할 행복을 미래에 저장한다고 해서 미래에 가서 그만큼 더 행복해질까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실재로는 그렇지 않고 행복은 유보하는 그 순간 사라져 버립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오늘 이 순간의 행복을 유보하도록 강요하고, 사회구조 역시 지금 누려야할 행복을 유보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짜여 있습니다.

경제성장으로 부유한 나라가 되려는 것은 부유한 나라가 되면 국민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GDP기준으로 세계경제력 규모 15위에 달하는 우리나라가 국민행복지수에 있어서는 세계 145개 국가 중 75위에 불과할까요? 특히 청소년들의 행복지수는 이보다도 훨씬 더 낮은 것일까요?

그것은 직장인이든, 자영업자든,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든, 학생이든 계층과 직종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유보하고, 신기루와 같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피 튀기는 경쟁에 몰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풍조는 경제개발시대의 관성이 아직도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는 주객이 전도된 아주 비정상적인 현상입니다. 이제 우리도 선진 여러 나라처럼 ‘저녁이 있는 삶’을 가져야 합니다. 정시에 퇴근해 아내와 아들딸과 함께 단란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주말은 가족여행을 하며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 이것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분위기와 구조가 바뀌어야 합니다.

[불교신문3158호/2015년12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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