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잠긴 아버지

한승원 장편소설/ 문학동네

가난을 대물림 받고

고난의 시대 건넌 아버지가

갈 길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던지는 메시지’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삶을 살아볼 권리가 있다

6·25 전쟁 직후 인민군이 장악해 ‘모스크바’로 불린 장흥군 유치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남로당 골수분자였던 김오현의 아버지는 퇴각하는 인민군을 따라가지 못하고, 빨치산이 돼 죽음을 맞는다. 뒤이어 어머니와 할머니, 네 명의 형들이 아버지에게 숙청당한 사람들에게 잡혀 죽는다. 그 와중에 간신히 살아남은 할아버지와 오현은 외가로 몸을 피해 힘든 삶을 살아간다.

그런 오현에게 시대는 순응하며 살아야 할 곳이다. 친구들에게 조롱을 당해도, 옆집 노총각이 아내를 추행해도 자신을 원망할 뿐이다. 그에게 유일한 희망은 큰아들 일남이다. 그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심장과 간과 쓸개가 아리고 시리는 것을 참아가며” 고층빌딩 유리창을 닦고, 백화점에서 피에로 복장을 하며 돈을 번다. 그러던 중 유치면 빨치산 토벌대장이었던 노인 박장수를 만나면서 김오현의 삶은 급변한다.

한승원 작가가 장편소설 <물에 잠긴 아버지>를 펴냈다. 이데올로기 대립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살아야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죽고 죽이는 현장을 생생히 기억하며, 시대의 불운을 저항없이 받아가며 살던 힘없는 아버지의 삶을 통해 존재의 가치를 조명한 작품이다.

김오현의 삶은 타자의 눈에는 불행했다. 대물림 받은 가난을 극복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만, 사회는 그런 그에게 희망을 전해주지 않았다. 오로지 그의 희망은 하나, 자식이었다. 11명의 자식을 낳아가며 무력한 시대를 나름대로 극복하려 했던 오현. 그가 가장 애정을 쏟았던 일남은 결국 사법고시에 실패한다. 나중에 할아버지의 이력 때문에 연좌제에 막혀버린 것이었음을 알게 되고, 이후 자신의 삶을 찾아간다. 또 일남을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동생들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삼순이는 스포츠댄스 강사 노릇을 했고,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던 팔남이는 나랏돈으로 유학을 갔다. 칠남이는 한 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시도 쓰고, 소설도 쓰더니 출판사에 다니며 제 밥벌이를 했고, 이순이는 제가 다니는 백화점 영업팀장하고 결혼해 딸 낳아 키우고, 육남이는 군대 갔다 나와서 원양어선 타러 갔고, 오남이는 호텔 주방일 하면서 함께 일하는 여자와 살고 있고, 사남이는 동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일순이는 팔당댐 옆에서 매운탕집 하는 남자하고 살고 있고…” 

소설가 한승원 선생이 최근 장편소설을 펴냈다. <물에 잠긴 아버지>는 근래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 시대 아버지의 모습이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일남이만 봉이고, 나머지는 닭으로 여겼던 오현은 “자식들이 다 제 갈 길을 잘 헤쳐 나갔다”고 회고한다. 이런 설정을 통해 한승원 작가는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삶을 살아볼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인물들이 애달프고 불운할지언정, 결코 불행하지는 않다.

또한 한승원 작가의 눈에 6·25전쟁은 끝난 전쟁이 아니다. 아직도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갈등도 엄연히 현존하고 있다. 그런 모든 조건을 한 작가는 포용한다. 그리고 삶이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 것인가를 잔잔하게 조명한다.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에게 꼭 한권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한승원 작가는 1939년 전남 장흥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목선>으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연꽃바다> <원효> <초의> <피플붓다>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한국불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불교신문3150호/2015년11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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