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장대종사 열반2주기 추모세미나

스님과 일본유학 동행 홍윤식 교수

스님의 청빈한 삶·사상 생생한 증언

천태학·선학에 관심…포교현장 접목

젊은 시절 무진장스님이 루마니아 망명작가인 <25시>의 저자 콘스탄틴 게오르규 신부와 기념촬영을 한 장면.사진제공=무진장불교문화연구원

 

“무진장스님과의 첫 대면은 1960년 아폴로 11호에 탄 루이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디디던 날이었다. 당시 조계사에는 달 착륙 광경을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있었는데, 마침 문을 열어놓은 스님의 방사를 보니 수많은 불교장서가 있었다. 불교세계관에 대한 의문을 풀고, 불교는 어떤 모습으로 대중과 만나야 하는지 스님 생각이 궁금해졌다.” 홍윤식 동국대 명예교수는 무진장불교문화연구원(원장 진관스님)이 무진장 대종사의 열반 2주기를 맞아 지난 11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연 추모세미나에서 이같이 밝혔다. 발제자로 나선 홍 교수는 ‘현대불교의 전개와 무진장스님’이라는 논문을 통해 당시 스님이 어떤 강의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런 학문적 바탕을 현대불교 발전에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대해 조명했다. 홍 교수는 스님과의 첫 만남 이후 스님 장서(藏書)가운데 관심 끄는 것들을 골라 빌려보기도 했고, 책을 선물받기도 했다. 이런 인연이 이어져 두 사람은 일본유학 길도 함께 떠나게 된다.

홍 교수에 따르면 무진장스님은 특히 천태학(天台學)과 관련된 저서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 천태학에 대한 문헌이 있으면 무엇이든 구해오라고 부탁해 상당부분 구입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스님은 어떤 이유로 천태사상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일까. 이와 관련해 홍 교수는 “우선 스님의 평소 생활태도에서 살필 수 있다. 이는 다름 아닌 철저한 평등사상의 실천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천태사상의 법문을 일반 기저에 깔고 포교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며 “스님의 철저한 평등사상과 무소유의 실천은 천태사상의 제법실상(諸法實相)을 구현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또 스님이 선학(禪學)에도 깊은 관심을 지니고 현대불교에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쏟았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스님은 <금강경>에 천착해 선종에 정체성을 확립하려 했다”면서 “동시에 천태사상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선종의 잘못된 폐습에 선교융합(禪敎融合)의 정신을 확립하려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홍 교수는 “절대평등사상의 실천과 무소유는 무진장스님이 오늘날 사부대중에게 몸소 보여준 현대불교의 방향성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라며 “구호에 머무는 현대불교 구현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불교를 스스로 구현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날 추모 세미나는 현대 한국불교의 새로운 포교 지평을 연 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논의하기 위해 열렸다. 발표자로 나선 동국대 명예교수 법산스님은 ‘<금강경>과 무진장스님의 불교사상’이란 발표를 통해 상(相)이 없는 실천을 강조한 스님의 삶과 사상을 고찰했다. 무진장스님이 평생 대중들에게 강의했던 대표적인 경전 또한 <금강경>이다. 깨달음의 세계를 여실하게 말하고 있는 경전이자 체험의 세계가 그대로 표현돼 있는 경전이기 때문이다. 무진장스님이 청빈한 삶 그 자체를 살아갈 수 있었던 것도 <금강경>의 사상을 실천한 것이었다.

법산스님은 “무진장스님이 설한 가르침은 <금강경>에 대한 이해나 목표가 아닌 모두가 <금강경>의 도리를 깨닫도록 하는 선지식으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고 있다”며 “알음알이에 떨어지지 않도록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항상 무소유와 무집착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불교신문3137호/2015년9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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