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아닌 열정적인 가슴으로

추구하는 기도는 승속최상 가치

 

이론공부가 가지는 한계 보완

신심 얻으면 진일보 원동력

부산 중심 서면에 지금은 불지사라 부르는 통도사부산포교원을 맡아 개원 할 때 나는 30대 초반이었다. 공군 법사를 마치고 통도사 승가대학에서 공부한 인연으로 대형 포교원을 맡은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나 자신을 위한 기도였다. 그때 서울 대성사 주지 소임을 보면서 은사 불심도문 큰스님께서 지도해 주신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가 생각났다. 그래서 매월 양력 1, 2, 3일 밤 자시에 시작한 이 기도가 23년을 이어오고 있다.

신도들을 위한 기도가 아닌 나를 위한 기도로 시작했지만 신도들의 동참을 허락했다. 그래서 신도축원도 기도비도 없었고 다만 공양미 올리는 것이 전부였다. 100여 명으로 시작된 기도가 2년 사이에 1000명이 넘었고 공양미도 40여 가마니가 올려졌다. 새벽1시에 마치다 보니 그 시간이면 절 앞에 택시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이렇게 되자 다른 절들이 하나둘 다라니 기도를 하기 시작하더니 주변 도시로까지 퍼져갔다. 참 고무적이었다.

은사 스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엄격한 원칙으로 진행되었다. 목욕재계 후에는 화장실도 안가고 음식은 가리고 외출도 가급적 삼가했다. 외국 갈 일정도 조정할 만큼 생명처럼 생각했다. 시작과 끝나는 시간은 칼처럼 지켰고 몰입해서 외우다 보니 속도는 최고 50초에 한번 독송할 정도였다. 눈으로 읽어서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때로는 처음 오는 신도들이 너무 빨리 한다고 불만이지만 몇 번 하다보면 금방 동화 되어 버렸다. 다라니가 익어질 때면 그 소리가 장관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소소한 영험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도에 빠지는 달에는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기는 등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각자가 느끼는 작은 변화가 기도의 묘미를 더해 갔다. 때로는 기도의 열정과 기운에 이상한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도 더러 나타났다. 몰입된 기도 광경은 ‘신심의 도가니’였다. 차차 신도들 간에 자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기도에 빠질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공양미가 쌓여가자 어떻게 사용해야 공덕이 될까도 고민이었다. 먼저 운영하던 복지관에 10가마니씩 보냈다. 방앗간에도 쌀로 떡값을 줬다. 그래도 남는 쌀을 10가마니씩 저금을 해서 북한에 보내기로 했는데 회향을 하는 달에 IMF가 터졌다. 100가마니를 팔아 모은 돈으로 북한이 아닌 실직자를 위한 무료급식을 시작했다. 그 급식은 어르신을 대상으로 지금도 이어오고 있다.

절에서는 법회와 수행이 중요하다. 정기법회의 법문이나 일상의 쉬운 강의를 통해 부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실천해서 마음의 평안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거기에 상식을 넘어 머리가 아닌 열정적인 가슴으로 추구해 가는 기도는 승속 간에 최상의 가치다.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공부가 가지는 한계를 기도로 보완하고 신심을 얻는다면 다시 진일보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무슨 기도를 해야 하느냐고. 나는 이렇게 답한다. 무슨 기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기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관음기도를 하든 신중기도를 하든 다라니를 하든 어떤 마음으로 임하고 지속성을 가지느냐에 따라 가피는 오는 것이라고.

[불교신문3133호/2015년9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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