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 집에 귀신이 있나봐요

“중학생 남자애를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2년 전에 이혼을 해서 혼자 애를 키우고 있고요. 의지할 사람도 딱히 없어서 힘이 들지만, 그래도 아이 생각하며 정신 바짝 차려야지 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 때문에 걱정이 많아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애가 등교거부를 한지 4개월이 넘었어요. 애를 억지로 학교에 데려가려고만 하면 거품을 물고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곤 합니다. 그러면서 학교에 가면 누가 자길 죽인다고 했다면서 이상한 얘길 합니다. 애 방에 이상한 그림이나 부적 같은 것들도 붙어 있고요. 하루는 자다가 잠깐 깼는데 애가 제 옆에 서있는 거예요. 깜짝 놀라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어떤 무서운 여자가 마루에 서있는 걸 꿈에서 봤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상한 얘기하지 말고 자라면서 그렇게 넘어갔는데, 한번은 제가 야근을 하고 늦게 와서 현관문을 열었더니 까만 그림자 같은 게 획 하고 아이 방으로 들어가는 걸 봤어요. 마치 애를 해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방에 들어갔더니 아이는 자고 있더군요. 또 한 번은 밤에 애가 창문을 보다가 저기 어떤 여자가 자기를 죽이려고 오고 있다고 그러는 거예요. 밖엔 아무 것도 없었는데 말이죠. 이런 일들이 반복되니 저도 지치고 섬뜩합니다. 집에 정말 뭐가 있는 거 같고요. 이런 것도 상담으로 도움 받을 수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여쭤봅니다.”

안녕하세요. 직장도 다니고, 아이도 돌보고, 주변의 도움 없이 홀로 모든 일을 하셔야 되니 정말 힘드시겠어요. 질문자님은 본인께서 정말로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의지할 곳은 없고, 아이는 말을 안 듣고, 몸은 지쳐가고, 얼마나 억울하고 속상하시겠어요. 화도 많이 나실 겁니다. 왜 나만 이렇게 힘겹게 고생하며 살아야 하는지 원망도 생기실 수 있을 거고요. 혹시라도, 아이에게 미운 마음이 드실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화내도 괜찮고, 원망해도 괜찮습니다. 질문자님이 뭔가를 잘못했다거나, 아이가 싫어서 그러신 게 아니잖아요. 너무 힘들어서 그런 것뿐인데요. 이렇게 힘든 질문자님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데, 어떻게 화나지 않고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괜찮습니다. 질문자님은 단지 지금 힘드신 것뿐입니다. 누군가가 현재 힘들어한다는 사실은 문제나 잘못이 아닙니다.

만약 질문자님이 길을 걷다가 무거운 짐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시겠어요? 너무나 측은하고 안쓰럽게 느껴지시지 않겠습니까. 그의 삶이 참 슬프게 느껴지시지 않겠습니까. 그의 땀을 닦을 수건 하나라도, 음료수 하나라도 기꺼이 그에게 건네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함께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바로 이것입니다. 한 인간이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라는 것입니다. 질문자님이 힘든 삶을 살고 계시다는 것 또한 참 슬픈 일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본인의 삶이 얼마나 슬픈지를 한번 가슴 깊이 느껴보세요. 그리고 스스로를 충분히 슬퍼해주세요.

아이를 해치려는 귀신이 질문자님의 집에 있는 것 같다고 하셨죠. 우리는 누군가를 왜 해치려 할까요. 자신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지는 대상을 없애면 힘들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즉, 그 귀신도 질문자님처럼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존재입니다. 질문자님처럼 슬픈 존재입니다. 아이를 위협하고 해치려 하는 건 결코 아이가 미워서가 아닙니다. 그만큼 자신이 지금 힘들다고 슬픈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잊힌 마음들, 우리에게 소외된 마음들이 귀신이 됩니다. 질문자님이 경험하신 귀신의 정체는 바로 슬픔입니다. 질문자님과 아이의 삶이 얼마나 안쓰러운지, 얼마나 슬픈지를 가슴 깊이 느끼시며, 슬픔을 이해하는 그 따스한 손길로 질문자님 스스로와 아이를 가득 품으실 때, 이제 더는 그 어떤 존재도 질문자님의 가정을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불교신문3132호/2015년8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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